“대통령의 뜻이라면 KBS를 청와대에 헌납할 분이다.”, “한마디로 반(反)언론, 반(反)공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고대영 KBS 사장후보를 검증하기 위해 검증단을 꾸렸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가 악평을 쏟아냈다.
그럴만 했다. 검증단이 12일 발표한 '검증보고서'에 기록된 그의 행적들을 보면 불공정, 편향성, 폭력 등이 눈에 띄었다.
그간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내용들이 다수였지만 한 권에 모아보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고 후보자가 사장이 되면 안 된다는 새노조의 염려가 기우(杞憂)라 할 수 없었다.
권오훈 위원장은 고 후보자에 대해 “‘공영방송 파괴자’, ‘불공정 편파방송 종결자’, ‘KBS 창립 이래 역대 최고 불(不)신임률 기록한 본부장’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다”며 “(고 후보가) 사장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 보고서를 통해 최종 확인했다”고 했다.
검증단장을 맡은 함철 부위원장 역시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사장 후보로 제청될 수 있는지, 선임 과정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정권에 예속됐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씁쓸해했다.
새노조는 지난달 27일부터 15일간 검증단을 꾸리고, 고 후보에 대해 크게 3가지(▲불공정 방송 ▲도덕성 ▲리더십)로 나누어 검증을 했다. 함 부위원장은 “검증 결과는 크로스 체크를 통해 사실 확인을 했으며, 전언만 나온 것은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과만 보면 고 후보자는 불공정하고, 리더십이 전무했으면,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KBS 새노조 권오훈 위원장(우), 함철 부위원장(좌). (사진=KBS새노조 제공)
◇ 불공정 방송고 후보자는 보도총괄팀장, 보도국장, 해설위원실장, 보도본부장 등 KBS 보도본부의 핵심보직을 맡은 인물이다. 이력만으로 따지면 나름 승승장구한 엘리트이다, 하지만 내부, 특히 기자들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그가 편파·불공정 보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검증보고서에 적힌 몇몇 대표적 사례를 적어봤다.
1) 용산참사 축소·편파 보도 (2009. 1 / 보도국장)
보도국장 부임 한 달도 채 안 된 시기. 참사당일부터 20여 일간 KBS는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 경찰이 철거민의 과격한 장면만 골라 편집한 CD를 관공서에 배포하고 경찰사이트와 게시판 등을 이용해 조직적 대응을 통한 여론 호도를 지시했음에도 KBS는 모르쇠 일관. 또한 검찰 주장에 치우친 보도를 하며 유족의 주장은 검토하지 않아 부실보도라는 지적을 받음.
2)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보도 (2009. 5 / 보도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개인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심했음. 개인이 목숨을 끊은 일을 왜 방송이 나서서 추모하느냐는 식. 이 관점이 투영돼 눈물과 오열로 뒤범벅이 된 추모현장을 최대한 걸러내 무미건조하게 보도하게 됨. 이로 인해 KBS 취재기자들이 봉하에서 취재 거부당하고 쫓겨나는 사태 발생. 결국 로고까지 가려가며 취재해야 하는 일을 겪기도 함. KBS기자협회는 책임을 묻기 위해 김종율 보도본부장과 함께 고대영 보도국장에 대한 신임투표 실시. 투표 결과 고대영 보도국장은 93.4% 불신임률을 기록. 그럼에도 국장 자리를 유지.
3)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의혹 보고 (2009. 7 / 보도국장)
스폰서 논란이 일었던 천 내정자와 관련한 의혹을 입증하는 기사를 KBS 법조팀이 취재 작성했지만 승인이 나지 않음. 큐시트에서도 빠져 방송이 무산. 다음 날 뉴스9에서 뒤늦게 해당 아이템을 방송. 하지만 이미 천 내정자가 사퇴한 뒤. 취재기자가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크로스 체크한 내용을 고대영 보도국장은 ‘들은 이야기일 뿐 증거가 없다, 증거를 가져오라’며 불방시킴. 반면 박연차 게이트 때는 아무 증거 없이 증언만으로 ‘노무현 시계’를 9시 뉴스 톱으로 내보냈음.
4) 4대강 시리즈 방송 중단 (2009. 9 / 보도국장)
2009년 9월 KBS 뉴스9에사 ‘4대강 사업’ 관련 연속 보도. 첫 방송 때 청와대 박선규 대변인으로이 전화로 방송 내용을 뭔지 물음. 또 정부 측 입장을 잘 반영해 달라 함. 결국 예산 문제를 다룬 마지막편이 불방. 오히려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살리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의 리포트가 나감.
5) 청와대 각본·연출 ‘대통령과의 대화’ 수중계 (2011. 2 / 보도본부장)
2011년 2월 초 열린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방송좌담회. 청와대가 출연진과 질문 내용까지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 홍보방송이냐’는 비판내부에서 이 제기. KBS 내 양대 노조는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가 원수”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 밝힘. 야당의 반론권 보장 요구에 대해서도 묵살. 이후 청와대 자체 행사 수중계가 일상화.
6) 위키리크스 취재 중이던 기자 비제작부서 발령 (2011. 10 / 보도본부장)
위키리크스 폭로 내용 가운데 ‘미군기지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거짓말’을 취재 중이던 기자가 갑자기 타 부서로 발령. 기자협회의 비판에 당시 해당 기자 담당국장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고 밝힘. 보도본부 밖으로 기자를 전출시킬 수 있는 인사 최종 책임자는 보도본부장이던 고대영.
7)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실 보도 (2011. 10 / 보도본부장)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이 일어나며 보도를 위한 TF 구성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묵살됨. KBS뉴스는 내곡동 사저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해명에만 치우친 채 사실상 사건을 축소. 또 취재기자 어느 누구도 현장에 가지 않음. 방송에 나온 내곡동 화면은 공동취재단이 제공한 화면.
8)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 토론회 중계 취소 (2012. 1 / 보도본부장)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 토론회를 중계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취소. 취소 이유를 ‘회사 사정상 중계가 어렵다’고 했지만, 실상은 민주당이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지 않는 데 대한 보복 조치.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민주통합당이 KBS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노조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밝힘. 자사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계적 균형과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있는 인물임을 또다시 만천하에 드러냄. 이 사건으로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양대노조 조합원 84.8%의 압도적인 불신임을 받으며 보도본부장 직에서 쫓겨남.
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 (사진=KBS 제공)
◇ 도덕성1) 블라디보스토크인 척 시청자 기만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최덕근 영사가 현지 숙소에서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 당시 모스크바 특파원이 고대영. 고 특파원은 “블라디보스토크 현장에서 "KBS 뉴스, 고대영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모스크바에 있었던 게 <미디어오늘>의 보도로 알려짐.
2) 미대사관에 ‘대선정보’ 전달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고대영은 대선을 앞두고 주한미대사관 측 관계자와 만나 대선 전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음. 이 내용은 ‘고위급 KBS 기자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전망하고 있다’는 제목의 전문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됨. 또 전문에서는 고 후보자에 대해 ‘자주 대사관과 접촉하는 관계’라고 평가. 이런 인물이 KBS 사장 자리에 앉아 후배 기자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취재윤리를 요구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일.
3) 골프 접대 사건
2011년 7월 2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해비치 골프장에서 고대영 당시 보도본부장을 비롯해 간부 6명이 현대차그룹 간부 2명을 만나 접대 골프를 침. 또 휴일인데도 회사 관용차를 타고 접대 골프를 받은 것으로 확인. 걷잡을 수 없이 비판이 확산되자 광고협찬을 위한 업무협의였다고 해명. 하지만 이미 현대차그룹 스포츠 협찬 유치 계약은 접대골프 이전인 6월 16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거짓 해명임이 확인.
4) 거듭된 폭행
2008년 11월 12일 새벽 3시 무렵 고대영 당시 보도총괄팀장은 KBS 신관 인근 한 술집에서 합석하고 있던 김경래, 박중석 두 후배 기자의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흔드는 등 폭행. 2008년 9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방송을 앞두고 고대영 총괄팀장은 당시 대화 생중계를 책임지고 있던 선배인 김찬태 PD 목을 조르는 등 폭행. 당시 고대영 총괄팀장은 김 PD를 만나 청와대와 보도본부 수뇌부 요구대로 방송을 중계할 것을 요구. 김 PD 등 제작진은 결국 방송 중계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자 폭행이 일어남.
◇ 리더십1) 93.4% 보도국장 불신임
고대영 보도국장 당시 용산참사가 발생하자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물타기. 또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붙잡히자 이 소식으로 ‘도배’해 용산참사를 덮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이러한 보도행태가 이어지자 기자협회가 신임투표 진행. 그 결과 투표자 93.4%가 불신임.
2) 84.4% 보도본부장 불신임
2011년 보도본부장 임명 이후 6월에 도청사건, 7월 현대차 골프접대 사건 발생. 양대노조가 사퇴를 촉구하자 내부망에 접대 건에 대한 사과글 게시. 이후 2012년 1월 16일∼18일 실시된 양대노조의 공동 본부장 신임투표에서 투표자 대비 84.4%, 재적 대비 70.7%(710명 중 595명 투표, 투표율 83.8%)가 불신임 표를 던짐. 결국 재적 대비 2/3(66.6%)를 훌쩍 넘는 인원로부터 불신임을 받게 돼 그는 결국 KBS에서 물러남. 1994년 본부장 신임투표가 실시된 이후 보도본부장으로서 불신임률이 재적 2/3가 넘은 것은 그가 유일.
3) 기자협회 탈퇴
2011년 3월 기자협회는 비대위를 열고 고대영 본부장에 대한 협회원 제명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 고대영 본부장 취임 이후에도 윤도현 내레이션 불방 같은 사태가 계속 일어남. 또 그는 기자협회가 사내 무질서를 유발한다며 폄하하는가 하면 협회장에게 업무 복귀를 명령하는 등 기자협회를 무력화하려 하자 기자협회가 그에 대해 제명 투표를 실시하려고 함. 그런데 투표 첫날 기자협회를 탈퇴. 사실상 신임을 묻는 성격의 투표인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아예 원천봉쇄한 것임.
4) 부사장 임명동의안 부결
본부장 신임투표에서 2/3 불신임을 얻어 KBS를 떠났다가 그해 11월 사장 공모에 지원. 이사회 표결에서 그는 길환영 당시 부사장과 맞붙었으나 패배. 그런데 길 사장이 취임한 직후 12월 부사장으로 추천. 그런데 이사회 동의 절차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
5) 사조직 '수요회'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된 후 사장 후보로 이명박 대선캠프 방송전략실장이었던 김인규 씨가 거론됨. 보도본부 내에 김인규 사장 옹립을 위해 사조직이 활동했는데 '수요회'라고 불림. 대표적 인물이 고대영 당시 해설위원. 2012년 공개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보고서에는 당시 이정봉 본부장과 고대영에 대해 '수요회를 이끌고 있는 이'라고 기술.
◇ "박 대통령은 고대영 임명을 거부하라"
(사진=KBS새노조 제공)
검증단은 이 검증 결과를 하나하나 얘기하며 "굉장히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다. 자신에게 반대되는 사람은 절대 용납하지 않고, 적개심을 드러낸다"며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