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MVP' NC 테임즈(오른쪽)가 24일 올해 프로야구 MVP로 호명된 뒤 경쟁자였던 넥센 박병호를 끌어안고 있다.(사진=윤성호 기자)
승자가 누구든 큰 의미가 없었다. 패자도 충분히 빛났다. 역대 프로야구 역사상 위대한 양웅이 그라운드를 빛냈던 시즌이 있었을까.
'전지전능' 에릭 테임즈(NC)가 올해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에 등극했다. 동갑내기 거포 박병호(넥센)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영예를 차지했다.
테임즈는 24일 서울 양재동 The-K 호텔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영광의 MVP에 올랐다. 야구 기자단 투표에서 유효표 99표 중 50표를 얻어 박병호(44표), KIA 양현종(5표) 등을 제쳤다. 트로피와 3700만원 상당의 KIA 자동차 올 뉴 쏘렌토를 받았다.
올해 테임즈는 KBO 사상 최초로 40홈런-40도루(47홈런, 40도루) 시대를 열어젖혔다. 타율(3할8푼1리), 장타율(7할9푼), 출루율(4할9푼7리), 득점(130개) 등 4관왕도 달성했다. 장타율은 프로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의 7할4푼을 33년 만에 경신했다.
박병호도 못지 않았다. 올해 박병호는 사상 첫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때렸다. 지난해 52개에 이어 올해 53개였다. 또 사상 첫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달성했다. 146타점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용호상박' 테임즈가 간발의 차로 앞섰다하지만 테임즈의 기록에 대한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됐다. 40-40클럽은 100년이 넘는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도 4번뿐인 기록이고, 60년이 넘은 일본에서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사상 첫 한 시즌 두 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수상자인 테임즈는 겸손했고, 아쉬운 차점자인 박병호는 기꺼웠다. 라이벌이었지만 서로 인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더 높였다.
테임즈는 이날 수상자로 발표된 뒤 박병호를 향해 크게 몸을 굽혀 인사하고 껴안았다. 박병호에 대해 "아직도 박병호가 친 홈런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의 파워를 칭찬하며 인정했다. 이어 수상 뒤 "박병호가 왜 이렇게 힘이 센지 알겠다"면서 "트로피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고 농담을 건넸다.
NC 에릭 테임즈(왼쪽)가 24일 The-K 호텔 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시상식에서 MVP 오르자 박병호가 꽃왕관을 씌워주고 있다.(사진=윤성호 기자)
박병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날 박병호는 테임즈의 머리 위해 꽃관을 씌워 새로운 MVP를 축하했다. 이미 박병호는 2012, 2013년 연속 수상한 바 있다. 박병호는 "수상 발표 전에 꽃관을 씌워주겠다고 얘기했다"면서 "정말 오늘은 테임즈를 축하하기 위해서 왔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박병호는 "같은 홈런 타자로서 정말 훌륭한 선수"라면서 "시즌 중에도 서로 얘기하고 칭찬했고 통역을 통해 어떻게 웨이트 훈련을 하는지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절차탁마가 있었기에 두 양웅의 병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승엽-우즈에 버금갈 라이벌
아쉽게 두 거포의 대결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즌 뒤 구단 동의 하에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이미 박병호는 포스팅을 통해 미네소타가 1285만 달러(약 147억 원)에 독점 협상권을 얻었다. 박병호는 "또 모른다"면서 "내가 계약하지 않으면 다시 한국에서 뛴다"고 말했지만 농담조였다.
반면 테임즈는 NC에서 내년에도 뛴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무대 진출 가능성이 있었지만 남았다. 150만 달러(약 17억 원)에 계약했다.
'누가 제일 셀까' 2015년 라이벌 테임즈(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박병호와 1998년 라이벌 이승엽, 우즈.(자료사진=NC, 넥센, 삼성)
역대 외국인 타자 최고의 라이벌은 1998년 이후 수년 동안 벌였던 이승엽(삼성)과 타이론 우즈(은퇴)였다. 그해 당시 역대 한 시즌 최다 42홈런의 괴력을 뽐낸 우즈에 MVP를 뺏긴 이승엽이 이듬해 역대 최다 기록인 54홈런을 날리며 되찾았다.
이에 버금가는 라이벌이 나왔고, 뜨거운 라이벌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올해 한번뿐일 공산이 크기에 더 아쉽고, 가치 있는 아름다운 우정의 경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