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3일 본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로써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지 단 1년 만에 국회는 또 다시 스스로 위법행위를 저지르게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야는 연관성이 없는 예산안과 쟁점법안 처리를 연계하는가 하면 바로 당일 이뤄진 여야간 합의정신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후진적 정치행태를 면치 못했다.
여야 원내 지도부는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여 내년도 예산안과 5대 쟁점법안을 이날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5대 쟁점법안은 새누리당이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분류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관광진흥법,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분류한 모자보건법과 대리점거래공정화법, 그리고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 등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숙려기간을 들어 법안 처리를 거부하면서 원내 지도부간 합의사항에 첫번째 태클이 걸렸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5개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 5일간의 법사위 숙려기간이 필요하다면서 양당 원내지도부가 이를 지키지 않고 이날 본회의에서 바로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국회법 제59조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날 5개 법안을 각 상임위에서 처리한 뒤 법사위로 넘기면 5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오는 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지도부를 불러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정 의장 역시 이 자리에서 숙려기간이 필요하다는 이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예산안은 이날 처리하돼 쟁점법안은 8일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반발하면서 정 의장에게 쟁점법안에 대해 심사기간 지정, 즉 사실상의 직권상정을 요구했고 정 의장도 몇시간 만에 입장을 바꿔 이날 저녁 9시로 심사기간을 지정했다. 정 의장 취임 이후 첫 직권상정이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심사기간 지정도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의원총회를 소집해 소속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다.
의원총회 초반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의원들의 이의 발언이 없었다"며 쟁점법안에 대해 국회의장이 심사기간을 지정해 처리하는 것을 추인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이목희 의원 등이 원내 지도부의 합의 내용에 반발하면서 추인이 계속 지연됐고 급기야 최고위원회의까지 다시 열리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향후 법 통과 과정에서는 상임위와 충분히 협의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아 4시간여의 마라톤 의총을 끝내고 예산안과 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했고 소속 의원들은 밤 11시에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예산안 부수법안을 처리하다보니 법정처리 시한인 2일 자정을 넘겼고 결국 차수변경을 통해 3일 오전 0시 50분쯤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예산안 처리 이전, 법정 처리시한은 물론이고 해를 넘겨서까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비난을 자초한 과거와 비교할때는 나름대로 진일보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9월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3개월여나 붙들고 있다가 뒤늦게 처리하는 직무유기는 이번에도 또 다시 재연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예산안 처리와 쟁점법안을 연계해 처리하는 부적절한 관행을 또 하나 추가시켰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야간 합의정신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등 후진적인 정치행태는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