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올해 FA 시장은 역대 최고액이 경신되는 등 고물가 기조가 이어졌지만 준척급 FA들은 여전히 찬 서리를 맞았다. 사진은 NC와 한화에 거액을 받고 옮겨간 박석민(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정우람과 SK에 눌어앉은 박재상, 두산과 다시 협상하는 고영민.(자료사진=삼성, SK, 두산)
올해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 대어급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준척급 선수들은 된서리를 면치 못했다.
선수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FA 제도의 허점이다. 몸값이 아닌 보상 선수 문제에 발목이 잡혀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특급 선수들이야 속이 조금 쓰려도 보상 선수를 내주지만 고만고만한 FA를 영입하자고 출혈을 감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해 FA 시장은 역대 최고액이 경신됐다. 삼성에서 FA로 풀린 내야수 박석민이 4년 최대 96억 원에 NC 유니폼을 입게 됐다.
기본 보장액은 86억 원으로 지난해 한때 역대 최고액이었던 최정(SK)과 같지만 10억 원의 옵션을 더하면 윤석민(KIA)의 90억 원을 넘는다. 그동안 박석민이 해온 대로만 하면 채울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옵션이라 사실상 역대 최고액이다.
여기에 SK 좌완 불펜 핵심이던 정우람은 4년 84억 원에 한화와 사인했다. 불펜 역대 최고액이던 안지만(삼성)의 65억 원을 20억 원 가까이 경신했다. 물론 윤석민이 올해 마무리로 뛰었으나 전성기를 선발로 구가했던 만큼 전문 불펜으로 보기는 어렵다.
선발까지 합해도 정우람의 몸값은 높다. 지난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옮겨간 장원준과 같은 액수다. 윤석민 다음 가는 투수 역대 2위 몸값이다. 한화 김태균도 사실상 두 번째 FA 계약에서 4년 84억 원에 사인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FA 고물가 시대의 단적인 사례들이다.
이외 넥센 투타 핵심이던 손승락과 유한준도 각각 롯데, 케이티와 4년 60억 원에 계약했다. 물론 유한준은 올해 정상급 타자로 우뚝 섰지만 내년 35살의 노장, 여기에 손승락은 최근 구위 저하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대박 계약을 이뤘다. SK 투수와 포수 윤길현과 정상호도 각각 4년 38억과 32억 원에 롯데, LG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박재상, 지난해 나주환처럼 SK에 남았다하지만 씁쓸한 계약도 있었다. SK 외야수 박재상은 원 소속 구단은 물론 나머지 9개 구단과도 FA 계약을 맺지 못했다. 결국 SK와 1+1년 총액 5억5000만 원에 사인해야 했다. 당초 SK가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20억 원대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박재상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알아보기 위해 외부 시장에 나왔지만 부름을 받지 못했다. 박재상은 쏠쏠한 외야 자원으로 꼽힌다. 2001년 SK에 입단한 박재상은 통산 12시즌 993경기 타율 2할5푼8리 59홈런 359타점 422득점 132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2007년 김성근 감독(현 한화) 부임 이후 전격 주전으로 발탁돼 SK 왕조 구축에 한몫을 했다. 2009년 타율 2할9푼5리 15홈런 81타점 84득점 33도루가 커리어 하이 기록이다.
하지만 역시 정상급 외야수로는 분류되기 어려운 선수. 지난해 부상으로 38경기만 뛰었고, 올해는 108경기 타율 2할4푼8리 7홈런 37타점에 그쳤다. 구단들이 영입을 저어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박재상을 영입할 경우 내줄 보상 선수가 문제였다. 현재 규정상으로는 FA 영입 구단은 보호 선수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중 1명을 보상 선수로 내줘야 한다. 해당 FA의 전년도 연봉 200%도 포함된다. 물론 연봉의 300%만 내줘도 되지만 선수 1명+연봉 200%를 받는 게 대부분이다.
SK 나주환.(자료사진=SK)
확실한 주전감이 아닌 FA를 데려오면서 팀의 21번째 선수를 내주기는 쉽지 않다. 2차 드래프트의 경우는 보호 선수가 40명이라 주전감들을 지킬 수 있지만 FA는 절반인 20명에 불과해 주축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준척급 FA들의 이적이 어려운 이유다.
두산 내야수 고영민 역시 마찬가지다. 박재상과 함께 시장에 나왔지만 러브콜이 없어 다시 두산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처지다. 지난 시즌 FA로 풀린 SK 내야수 나주환과 투수 이재영 역시 이런 식으로 미아가 돼 원 소속팀인 SK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눌러앉게 됐다.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도 FA 미아가 될까 원 소속 구단에 남는 선수들도 적잖다.
상당수 구단들이 준척급 FA들에 대해 구미는 당기지만 내줄 선수가 아까워 데려오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때문에 FA 등급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이저리그처럼 보상 선수 없이 준척급 FA가 이동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번 윈터미팅에서 FA 제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따뜻한 겨울과 혹독한 추위를 동시에 맛보고 있는 FA들. 과연 이들의 희비가 내년에도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