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문재인 페이스북 캡처)
‘호랑이 굴’에서 21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마침내 갈라서고 말았다. 문 대표는 안 의원이 탈당한 13일 페이스북에 (자신은)‘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안 의원은 작년 3월 민주당과 합당 때 ‘맨손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미 호랑이 등에서 내려 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대로 실려 가는 신세가 됐다. 안 의원이라고 편할 리가 없다. 호랑이를 잡겠다고 들어간 호랑이 굴에서 빈손으로 나왔으니 허탈하기도하고 창피하기도 할 것이다.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은 찬바람 부는 광야다. 어쨌건 ‘문·안’ 두 사람 모두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서>(隋書)에 ‘호랑이 등에 타고 달리는 형세’(騎虎之勢)였던 한 정치인의 성공담이 나온다. 북주의 임금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이었던 양견(楊堅)이 정사를 관장했다. 그는 한족 출신의 무관으로 큰 공을 세워 총관이 된 인물이다. 임금이 죽자 어린 아들이 즉위했는데, 이때 양견은 한족 세력을 규합해 모반을 준비한다. 모반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갈리게 되는 양견은 갈등에 빠진다. 이때 양견의 부인이 남편에게 편지를 보낸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이므로 도중에 내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내린다면 호랑이 밥이 될 터이니 끝까지 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옵소서.”
양견은 부인의 편지에 용기를 얻어 북주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모반에 성공한다. 이후 양견은 문제(文帝)가 되어 수(隋)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 13일 새벽 서울 노원구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자택을 방문해 문 앞에서만 40분 가량 대기했지만 끝내 회동은 하지 못했다. 문 대표가 안 전 대표의 자택을 나서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문 대표가 처한 형국이 스스로 말한 대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양견 모양새이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호랑이 밥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양견의 부인이 보낸 편지에서처럼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달려 뜻을 이루어야 하는데 양견처럼 운이 따라줄지…
<후한서>에 실려 있는 ‘반초’(班超)에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일화가 나온다.
‘반초’는 용맹과 지혜를 겸비했던 후한의 장군으로 명성이 대단했다. 그가 임금의 명을 받아 서쪽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누란에 사절단을 이끌고 갔다. 누란의 왕은 후한에서 온 용맹스런 장군 반초를 극진하게 대접했지만 마침 흉노의 사절단이 들이닥치자 태도가 바뀐다. 흉노 쪽 사절단이 후한을 싫어해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었다. 흉노 사절단은 반초 일행에 비해 인원도 많고 위엄도 대단했다. 반초는 고민에 빠졌다. 수모를 당하고 그냥 돌아가느냐, 아니면 정면 승부를 걸어 제압하느냐. 일행이 근심에 잠겨있을 때 반초가 모두를 불러놓고 말한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반초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 앞에서 호랑이 굴로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내린다. 그는 흉노의 사절단이 묶고 있는 관아를 공격해 그들을 모두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그 여세를 몰아 누란까지 쳐서 후한으로 복속시켰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안 의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안 의원이 처한 형국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으려다가 빈손으로 돌아 나온 모양새다. 반초와 같이 사생결단의 각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갔지만 호랑이를 잡지 못하고 돌아 나왔으니 체면이 구겨졌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호랑이 굴에 있는 호랑이가 아니라 광야를 활보하는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 험난한 광야에서 호랑이를 잡아야 하는데, 그런 용기와 지혜 그리고 운이 따라줄지…
CBS노컷뉴스 조중의 논설위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