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2법, 노동관계 5법, 테러방지법 등 중점 법안의 국회통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과정에서 입법권 침해 논란과 국회 무시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 없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압박과 비난만 한다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라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내년 총선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이 연일 다양한 화법,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 법안의 국회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국회를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으로 거칠게 비판하는가 하면, 법안통과가 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으나,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대량 실업 등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16일 경제장관회의 모두 발언에서만 해도 박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다양한 화법을 구사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메시지로 “우리 미래세대에게 더 이상 죄짓지 말고, 지금이라도 실행을 해야 한다”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한편,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깜깜하듯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고비이므로 힘들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반드시 뚫고 지나가야 경제 재도약이 가능하다”, “100미터 결승선 직전이 가장 힘들지만 결승선에 경제부흥, 청년희망, 국민행복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참석 장관들을 독려하며 세를 결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관심 법안의 국회통과를 무리하게 압박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청와대는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법안의 직권 상정을 공식 요청한 뒤 이를 언론에 그대로 공개해 정 의장의 반발과 함께 입법권 침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현 경제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며 청와대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청을 거부했다. 반면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여야 합의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연말연시에 심사기일을 정하겠다"며 직권상정 의지를 밝혔다. (사진=윤창원 기자)
결국 정 의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법안의 직권상정은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법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거부했다.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국회법 제85조에는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안건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경우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세 경우인데, 청와대의 요청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의장의 직권상정 거부로 이제 야당의 협조가 없는 한 박 대통령이 원하는 입법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93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해 발동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발동이 거론되지만, 대통령이 져야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카드로 관측된다.
결국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과 대통령 긴급 명령의 발동이 어렵다면, 입법의 유일한 길은 국민 여론전을 통한 야당 압박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활력촉진법 등 경제활성화 2법, 기간제법과 파견제법 등 노동관계5법, 테러방지법등의 일괄 처리를 원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시급을 따지며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신대 조성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그동안 ‘소통과 타협’의 리더십 보다는 ‘경쟁과 편가르기’의 리더십을 보여 왔다”며 “박 대통령이 법안통과에 대해 정말 절실한 의제라고 생각한다면 야당 대표를 왜 만나지 못하는가, 야당 대표를 만나서 설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중진 정치학자는 “정치권을 윽박지르기보다는 설득과 여론 조성을 통해 야당이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박 대통령이 논쟁의 중심에 서서 마치 국회와 싸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민을 통해 의회를 압박하는 것이 분열된 야당으로 하여금 투쟁성을 강화시켜 법안 통과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이 임기 4년차에 걸 맞는 성과 도출에 강하게 몰입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 절차 무시 등 국정 운영의 균형이 깨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RELNEWS:right}정치권에서는 야당이 아무리 분열된 상황이라고 해도,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과 대화는 하지 않고, 법안 통과를 내세워 압박과 비난만 한다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라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어느 순간 의심을 받고,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의 국회 압박이 결국 내년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을 덮고 야당 심판론으로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이 보다 강하게 제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야당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지금까지 다각적인 접촉과 충분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이 시점에서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