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최현우가 무대 조명장치 고장으로 인해 공연을 갑작스레 취소했다. 이미 공연을 시작해야 했을 시간이 한참 지나 관객들의 불만이 가득했던 상황.
그런데 관객들은 최현우의 진심 어린 사과에 오히려 감동을 하였고, 이날 분위기는 훈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최현우의 어떤 태도가 뿔난 관객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걸까.
이날 현장에 있던 한 관객이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올린 후기가 SNS에서 화제다. 누리꾼들은 글을 보고 '울컥'했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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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올린 이는 "오늘 있었던 일은 묘한 기분을 남겼다"며 글을 시작했다.
최현우는 지난 11월부터 매직콘서트 더 셜록을 공연 중이다. 29일 역시 저녁 8시에 공연을 시작해야 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인 7시 30분부터 객석을 열어야 하는데 열릴 기미가 없었다. 40분이 되도 50분이 되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객이 안내원에게 "지금 10분 전인 건 알죠"라며 입을 삐죽였다. 안내원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때 최현우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최현우입니다. 로비에서 기다려주시는 관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계의 이상으로 객석 입장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55분이 되자 로비에 있던 관객들은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섰다. 글쓴이는 마치 롯데월드 매표소의 똬리 줄 마냥 매우 길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8시 정각이 돼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8시 5분이 되자 관객들의 항의가 시작됐다. "무슨 일인지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18분이 되자 더 많은 항의가 쏟아졌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공연) 안 된다면 말이라도 해줘라. 집에나 가게." 기다리던 한 초등학생은 오래 줄을 서서인지 울기까지 했다.
그무렵 최현우의 목소리가 다시 방송을 통해 나왔다. "마술사 최현우입니다. 저는 지금 로비 5번 게이트 앞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갔다. 최현우는 공연 정장을 입고 머리까지 한 상태로 나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객석을 비추는 조명에 전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잡아보려 계속 시도했으나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 대단히 죄송하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보상방법을 합의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기다리게 해 죄송하다"며 "100% 환불+다른 날 초대, 또는 110% 환불"이라는 보상 방법을 설명했다. 주차 역시 이날 티켓을 보여주면 그냥 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관객은 술렁였고, 몇 번의 사과가 반복됐다. 그때 글쓴이 뒤에서 "최현우가 여기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최현우는 "죄송합니다. 제가 키가 작아서"라며 테이블 위로 올라가 90도로 절을 하며 사과했다.
사람들은 세 무리로 나뉘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가거나, 매표소로 가거나, 포토존 앞으로 가는 식으로.
최현우 매직컬 스틸컷. (클립서비스 제공)
최현우는 곧바로 포토존으로 이동해 사람들과 한 명씩 사진을 찍고, 관객마다 세 번씩은 죄송하다는 사과와 90도 인사를 했다.
글쓴이는 이 상황을 보면서 '기분이 묘해졌다'고 회상했다.
"스케쥴 허탕 치고 시간 버리고, 귀한 아들딸 길바닥에 고생시킨 덕분에 짜증과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작정하고 매표소 쪽으로 돌진하여 고성을 내려했던 몇몇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화낼 이유가 없게 됐다. 아주 자세하고 솔직한 설명, 충분한 사과, 명료한 보상방법."
글쓴이는 "이후 스태프들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에게 1:1로 붙어 신속하게 설명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확실한 자세로 사과하는데, 변명이 아닌 그저 상황설명으로 느껴져 화를 낼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날 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1000명에 가까웠는데, 그 로비에서는 싸움 한번 없고, 고성도 없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왜 자신의 기분이 묘했는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최현우를 비롯해 스태프들이 관객에게 눈을 맞추는 모습이 어색했던 것 같다. 로비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들에게 '기다리느라 다리 많이 아팠지' 묻는 스태프, 보상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스태프, 애매한 케이스의 관객은 직접 연락처와 이름을 기록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연락하겠다'며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는 매니저' 등이 어색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배우의 몇 마디 통한 방패 사과, 항의한 사람만 조치하는 눈가리고 아웅식 대처, 이슈가 돼야 형식적으로 SNS에 올리는 울며 겨자먹기 식 공지, 그 공지도 거만한 뉘앙스거나 '내가 잘못한 건 아니고 관심 둬 준 관객에게 감사함' 식의 동문서답형 소설만 접하다 보니 이 상황이 어색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이날 관객들은 최현우에게 "힘내세요", "최현우 씨가 제일 고생이죠"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날 최현우와 스태프들은 관객이 전부 로비를 떠날 때까지 줄을 서서 조용히 기다리며 사과를 했다.
이 글을 본 누리꾼들은 "출근해서 읽는데 눈물 터졌다", "우리가 이런 일에 울컥한다는 자체가 너무 슬픈 것 같아. 나도 울컥했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최현우의 매직컬 스틸컷. (클립서비스 제공)
당시 현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공연 총괄책임자 정기훈 부장은 30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현우 씨도 아침에 그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관객들이 충분히 화를 내고도 남을 환경이었는데 따뜻하게 이해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