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야당이 '굴욕협상'으로 규정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파장이 확대되자 청와대가 정면 대응에 나섰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3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언론 발표문을 통해 적극적인 해명과 반박을 가했다.
김 수석은 "위안부 문제는 그 상처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도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면서도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한 진전을 이뤘다는 판단으로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발표문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과거 정권의 역할과 민간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거나 폄하하는 인식을 보여줬다.
발표문은 "지난 역대 정부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어떤 때는 위안부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을 만큼 이 문제는 손대기도 어렵고 굉장히 힘든 난제였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협상의 난이도가 높음을 강조하기 위한 설명이지만, 그와 동시에 과거 정권들은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제 와서 발목이나 잡으려 한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정권의 역할을 이처럼 낮춰보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
(사진=자료사진)
1991년 12월 노태우 정부는 일본 정부에 수차례에 걸쳐 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과 적절한 조치 강구를 촉구해 이듬해 1월 가토 관방장관의 담화를 이끌어냈다.
김영삼 정권 들어서는 일본 측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대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도덕적 우위를 무기로 일본을 압박한 것이다.
전략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달리할 수 있지만 이번에 청와대가 지적하듯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데 따른 임무 방기인 것처럼 비판할 수는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취임 직후인 1998년 4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인당 4300만원을 국고에서 지원했다.
이는 일본 측에 도의적 책임으로는 안 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위안부 문제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2005년 8월 한일 수교회담에 따른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민관합동조사기구를 만들어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음을 규명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8월에는 헌법재판소가 한일 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부작위 위헌 결정을 내리게 된다.
3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대화하던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위안부 문제가 지난 시기 어려운 길을 걸어왔던 것은 따지고 보면 박정희 정권 때 체결된 한일협정이 걸림돌이 돼왔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과거 정권에선 별로 한 일이 없다고 과소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청와대 발표는 또 "실제적으로 그동안 민간 차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관련단체 등 시민사회의 역할을 무시하는 발상과 다름 아닌 것이다.
하지만 1990년 11월 정대협 결성과 이듬해 8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이 위안부 문제의 출발점이 된 것만 봐도 청와대의 인식은 잘못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 대표는 "유엔은 관련 회의가 열릴 때마다 정대협 운동의 성공적 의미를 평가하고 보고서에 담기도 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었던 것도 민간의 노력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발표가 "지금 사실과 다른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 것도 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마치 광우병 파동이나 세월호 사태 때의 '유언비어 유포설'을 연상케 하지만, 아직까지 위안부 협상 관련 유언비어로 볼 수 있는 소문은 딱히 없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다만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를 거론한 것은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경고 발언으로 이미 일본 측 언론플레이가 잠잠해진 터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닌지 우려된다.
다음은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이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 전문.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 |
국민 여러분,
정부는 지난 12월 28일, 위안부 문제가 공식 제기된 후 무려 24년 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하고, 한일관계의 가장 까다로운 현안 문제로 남아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그 상처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도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지난 역대 정부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어떤 때는 위안부에 대한 배상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을 만큼 이 문제는 손대기도 어렵고 굉장히 힘든 난제였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과거처럼 이 문제 해결을 뒤로 미뤄놓았다면, 지난 3년과 같은 한일관계의 경색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관계가 경색일로로 치닫고, 한일관계 복원을 원하는 국내외 목소리 속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일관계 복원의 시작임을 수없이 지적해왔고 일본 정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그것은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평균 나이 89세의 고령이시고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올해만도 9분이나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돌아가고 계신 상황에서 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적인 반성,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한 진전을 이뤘다는 판단으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조속히 설립하여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삶의 터전을 일궈 드리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실과 다른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와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는 위안부 문제에 또 다른 상처를 남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합의에 대한 민간단체의 여러 비판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은 외교 현장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임해왔습니다.
그렇게 정부가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 ‘무효’와 ‘수용 불가’만 주장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는 손을 놓게 될 것이며, 민간단체나 일부 반대하시는 분들이 주장하는 대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동안 민간 차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정부가 잘못 협상한 것 같이 여론을 조성해나가는 것은 결코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이제 정부의 이런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시고 어렵게 풀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자 하신다면, 이 문제는 24년 전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정부로서도 할머니들 살아생전에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게 될 것이란 점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양국의 언론 역시 보도에 신중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관계가 아닌 것을 보도해서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은 양국 관계 발전과 어렵게 진척시켜 온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더 이상 한일관계가 경색되지 않고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직시하고 착실하게 합의를 이행해 나가서 양국이 함께 미래로 나가는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번 합의를 이해해 주시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15. 12. 31 청와대 홍보수석 김성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