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교보문고
고립된 섬처럼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섬과 섬을="" 잇다(이하="" '섬섬')="">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이번 책에는 인기 만화가 최규석, 주호민을 비롯해서 ‘거리의 시인’ 송경동, <섬섬1>에서 소개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2016년 1월부터 복직) 유명자 등이 참여해 ‘연대’의 참뜻을 기렸다.
‘소박한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섬섬2>는 모두 다섯 현장의 이야기를 만화와 르포로 다루고 있다.
서울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3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 회사에서 떼먹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싸우다 왕따로 내몰리는 전주 지역 민주노조 소속 버스기사들, 정리해고에 맞서 공장 굴뚝에서 408일을 지낸 스타케미칼 차광호 노조지회장과 조합원들,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 철폐의 이유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싸워온 기륭전자 노조분회원들,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서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유성기업지회 노조원들의 이야기다.
5년 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의 요구사항은 “밤엔 잠 좀 자자”였다. 심야노동으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자, 수당이 조금 줄더라도 인간답게 살자고 내건 요구사항이었다. 사측은 생산량이 줄 것을 우려했으나, 생산량이 별로 줄지 않는다는 연구결과 등을 접하고 노조와 합의에 이른다. 주간2교대 및 월급제 도입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해가기로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측은 이후 논의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다. 그러다 ‘창조컨설팅’에 거액의 돈을 약속하고 노조파괴 공작을 맡긴다.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어갔으며, 이런 흐름이 단란했던 노동자 가정에 어떤 불화를 가져오는지는 <송곳>의 만화가 최규석이 그린 ‘플랜’에 잘 드러난다. 이어지는 송경동의 르포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이야기를 전한다.
노조가 눈엣가시라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망가트리려는 이야기는 도처에 있다. 여론의 압박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사회적 합의를 이룬 기륭전자에서, 복직한 노조원들에게 업무도 급여도 주지 않고 4대보험도 처리해주지 않다가 어느 날 이들 몰래 사무실을 이사해버린 일화는 꽤 알려져 있다. <신과 함께="">의 만화가 주호민은 본인이 직접 만나 들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편안한 접근으로 풀어낸다. <섬섬1>에 이어 이번에도 참여한 르포작가 연정의 글에는 기륭분회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노조를 길들여 불편한 세력을 제거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회사가 매각되는 상황에서도 노조가 제 역할을 다해 고용을 보장받았던 스타케미칼에 새로운 노조위원장이 선출된다. 그런데 그는 조합원의 뜻을 묻지도 않고 돌연 사측의 구조조정 방침에 적극 협조한다. 그러고는 조합원들에게 권고사직서를 쓰도록 권하고 다닌다. 결국 168명의 공장직원 중 139명이 권고사직서를 쓰고, 이를 쓰지 않은 29명은 해고를 당했다. 모두 정리된 것이다. 스타케미칼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스타해복투) 차광호 위원장이 세계최장기 고공농성 기록(408일)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2,822일의 농성 끝에 복직에 합의한 재능교육의 ‘전’ 해고노동자 유명자가 르포를 맡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차광호의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에서는 특별한 울림이 전해진다. 차광호 위원장의 굴뚝 위 408일을 그린 원혜진의 만화는 폐허가 된 공장을 다시 돌리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열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주 지역 민주노조 버스기사들의 이야기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다. 회사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금(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한 추가수당)을 수년간 떼먹는다. 인당 1,00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100만 원씩만 받고 더 이상 문제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강요한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 간부들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회사를 거들기에 바쁘다. 나중에 보니 간부들은 사측에 협조하는 대가로 임금을 70만 원씩 올렸다고 한다. 기존 노조(한국노총)에 대한 불신은 민주노총 소속 노조 출범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사측은 민주노조를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승객들의 안전이 걸려 있는 버스안전문제와 휴식 없는 장거리주행의 위험성 문제를 계속 제기했지만, 민주노조 소속 버스기사들에게 돌아오는 건 보복성 업무배치뿐이다. 안전상태가 의심스러운 오래된 차를 배차하고, 고된 장거리 코스를 배치하는 것이다. 아예 ‘민주노조 코스’라는 말까지 생겼다.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연재하는 날카로운 만평으로 유명한 시사만화가 조남준은 전주 지역 버스노조 중에서도 가장 고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북고속의 이야기를 전한다. 르포작가 송기역은 “다음 생에는 버스기사가 대우받는 곳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신성여객 버스기사 진기승의 못 다 쓴 자서전을 대신 쓴다.
노동자들만 긴긴 싸움을 해나가는 건 아니다. 광화문역 지하보도에는 3년째 농성 중인 장애인들이 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세상을 떠난 열두 명의 장애인 영정을 앞에 두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지를 외친다. 그 열두 명 중 한 명인 송국현은 3급 장애인이었다. 팔다리 마비와 언어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2014년 당시 3급 장애인은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기에, 함께 사는 이들이 잠시 집을 비우면 그저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재가 발생했다. 도망칠 수도, 소리칠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온몸에 화상을 입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송국현의 죽음 이후 3급 장애인에게도 활동보조서비스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러한 죽음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었지만 농성장 앞에는 영정사진만 늘어가고 있다. <나쁜 친구="">, <삼십 살=""> 등으로 주목받는 만화가 앙꼬는 광화문역사 농성장과 그 앞을 지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르포를 맡은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의 강혜민 기자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