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사진=한국기원 제공)
'바둑천재' 이세돌 9단이 다음달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상금 100만 달러(약 12억 원)가 걸린 이 대국에서 이 9단은 알파고와 다섯 판을 겨루게 된다. 앞서 알파고는 중국에서 입단한 뒤 프랑스에서 활약 중인 판후이 2단과의 공식 대결에서 5전 전승을 거뒀다. 이 9단은 최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간이 컴퓨터에 져서야 되겠느냐"며 "내가 무난하게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런데 알파고는 왜 이 9단을 대결 상대로 택했을까.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에게 물었다. 맹 교수는 전기전자·재료과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SCI(과학기술인용색인) 급 논문 50여 편을 발표하고 국제특허 30여 건을 출원한 명망 있는 과학자다. 그는 인터넷 바둑 1단인 바둑 애호가이기도 하다.
맹 교수는 4일 CBS노컷뉴스에 "기존 컴퓨터의 알고리즘(문제 해결을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방법)을 보면 이진법으로 일일이 더해서 계산하는 단선적인 방식인데, 이런 수준으로는 지능적이고 복잡한 연산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알파고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복잡한 여러 연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특화된 알고리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나 체스의 경우 말들이 이동하는 경우의 수가 제한돼 있다보니 어느 정도 학습을 시키면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며 "사람보다 빠르게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한 뒤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체스의 경우 지난 1997년 러시아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의 대결에서 패한 바 있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다.
맹 교수는 "경우의 수가 장기, 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바둑에서는 치밀하고 빠른 연산 외에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의 직관과 통찰력이 승부에 큰 역할을 한다"며 "지금까지는 컴퓨터가 사람의 직관과 통찰을 흉내낼 수 없다고 봤는데, 알파고의 경우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알파고, 인간과 비슷하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AI 만들려는 노력"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그렇다면 알파고는 현재까지 나온 최고 성능의 컴퓨터와 비교했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맹 교수는 "양적인 수치로서 성능을 단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데, 각각의 컴퓨터 알고리즘이 어느 분야에 맞춤형으로 돼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기상 관측에 쓰이는 슈퍼컴퓨터가 기상을 예측하는 데 최적화 돼 있는 것처럼, 알파고는 바둑이 지닌 복잡한 경우의 수를 단순화한 뒤 해석하고, 상대의 급소가 어디인지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특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맞대결에 대해 "아직까지는 이 9단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인공지능의 수준이 아직 바둑에서 사람을 이길 정도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맹 교수는 "최정상에 있는 프로기사들에게 있어서 수읽기(바둑돌 놓을 좋은 자리를 미리 생각하는 일) 능력이 비슷하다고 봤을 때, 이 9단은 보다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수읽기를 하는 모습"이라며 "바둑을 두다 보면 판 전체가 얽혀서 바둑돌 하나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 이 9단은 이런 점을 감각적으로 파악해 이길 판은 이기고 질 판도 뒤집는 식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나간다"고 전했다.
이어 "알파고에게 진 판후이 2단의 경우 이 9단과 대결한다면 두세 점 접바둑(실력 차이가 있는 사람끼리 바둑을 둘 때 하수가 바둑돌 몇 개를 미리 놓고 두는 바둑)을 둬야 하는 수준으로 최정상급은 아니라고 본다"며 "알파고 측이 '이 9단에 대한 맞춤형 학습을 알파고에게 시키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더욱 이 9단에게 유리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