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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마을 '세배잔치'…"정감 어린 덕담 넘쳐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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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마을 '세배잔치'…"정감 어린 덕담 넘쳐나죠"

    [문화연예 설 기획 ⑥] 서울 강북구 '삼각산재미난마을' 공동체 설맞이 풍경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인 병신년(丙申年)입니다. 원숭이는 재능과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널리 알려져 있죠. CBS노컷뉴스가 설을 맞아 알찬 정보를 담은 문화연예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설 연휴 파일럿 예능 골라보는 재미 '쏠쏠'
    ② 상차림…케이블 '풍성' vs 지상파 '소박'
    ③ 설 대목 '스크린 전쟁'…극장가 장악할 영화는?
    ④ 문화 행사, 즐길 공연·전시 등 풍성
    ⑤ 아이돌 스타에게 설 연휴는 있다? 없다?
    ⑥ 마을공동체 '삼각산재미난마을' 설맞이 풍경
    <끝>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삼각산재미난학교'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삼각산재미난학교 카페 제공)

     

    '삼각산재미난마을', 이름부터 재미난 이곳은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 인근에 자리잡은 마을 공동체다. 우이동, 인수동, 수유동, 도봉동, 쌍문동에 걸쳐 150여 가구가 함께하는 이 마을에는 초등 대안학교인 '삼각산재미난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설 끝자락에 합동 세배잔치가 열린다. 올해도 설 연휴의 마지막날인 10일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 해의 복을 비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설을 앞두고 삼각산재미난학교에서 만난 아홉 살 지원이는 "세배잔치 가면 맛있는 것 많이 먹어서 좋다"고 말했다. "새뱃돈도 좋다"며 지원이는 밝게 웃었다. 열한 살 노을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신난다"며 조금 더 의젓한 말을 했다.

    마을 세배잔치에서는 한쪽에 어른들이 앉고 맞은편에 연령대별로 초등학교 저학년·고학년,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자리해 돌아가면서 세배를 한다. 이때 세뱃돈은 무조건 1000원이다. 어른들끼리도 세대별로 맞절을 한다.

    세배가 끝나면 학교 측이 준비한 음료와 술, 마을 사람들이 각자 마련해 온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어른과 아이들이 섞여 윷놀이도 한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세배잔치를 함께한다"는 것이 삼각산재미난학교 이상훈 교장의 설명이다.

    "설 연휴가 길고, 연휴 막바지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마을에 있다보니 불러내면 좋아들 해요. (웃음) 아이들도 세뱃돈이 생기니까 신나하죠. 지난해에는 아이, 어른 합쳐 40명 정도 모였어요. 처음에는 학교 재학생 부모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새배잔치를 진행했는데, 2011년 사단법인 삼각산재미난마을이 만들어지면서 재학생 부모 외 마을 사람들도 함께하게 됐죠."

    마을법인 설립 이전에 공동육아협동조합 '꿈꾸는어린이집'이 꾸려진 때가 지난 1998년이다. 삼각산재미난마을은 지금까지 18년을 이어온 셈이 된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마을 세배잔치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덕담이 형식적일 수 없는 이유다.

    이 교장은 "그 아이가 올해 중학교를 가는지, 지난해 아팠는지 등을 알기에 그것에 맞춰서 덕담을 해 준다"며 "그렇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삶과 연결된 덕담을 건네는 분위기가 세배잔치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 '별명'에 담긴 상호존중 의미…삶으로 연결되는 배움

    삼각산재미난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노컷뉴스)

     

    "산나물 만나러 온 거야?" "산나물 친구야?"

    삼각산재미난학교 앞마당에서 놀이를 하던 몇몇 아이들이 격의 없이 던져 온 물음이다. 아이들이 언급한 '산나물'은 이상훈 교장의 별명이다. 삼각산재미난마을 사람들은 물방개, 망고, 라다 등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별명으로 부르는데, 굳이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교장의 전언이다.

    "아이들에게 상호존중에 대한 관계와 감정을 전해 주려는 노력이죠. 마을에서 별명을 처음 사용하자고 할 때부터 가졌던 분명한 이유입니다. 효과는 확실히 드러납니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려다 하다보니 억합을 합니다. 그런 것에 아이들도 익숙하죠. 그래서 아이들 입장에서 어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한 겁니다. 우리가 호칭부터 서로 편하게 부르기로 한 이유죠. 어쨌든 아이들이 자기 얘기를 편하게 하니까 된 거죠."

    삼각산재미난마을은 교육 공동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8년 공동육아를 위한 협동조합 형태로 꿈꾸는어린이집을 설립한 데 이어, 2003년 꿈꾸는어린이집 조합원 일부와 교육에 관심을 둔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들, 장애인 학부모들이 모여 "생태적이고 경쟁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교육활동을 해 보자"는 고민 끝에 삼각산재미난학교를 세운 까닭이다.

    이 교장은 "학교 이름을 '재미난'으로 할 것인지 '신나는'으로 할지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고 말했다.

    "'한 아이가 잘 자라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래서 학교를 세우는 데 공감한 이들은 마을 학교를 지향했고, 걸어서 30분 이내에 서로 모여 살자는 데 공감했죠. 부모들이 먼저 교육관, 삶의 태도, 철학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에게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삼각산재미난학교 이상훈 교장(사진=이진욱 기자/노컷뉴스)

     

    이 교장은 "제도권 교육 안에서 앎과 삶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가르침이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삼각산재미난학교의 교육 철학을 '따뜻한 돌봄과 자유로운 배움이 일어나는 마을 속 학교공동체'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 그 어려운 공룡 이름들을 다 외우는 이유가 뭘까요? 좋으니까, 그 세계가 삶의 전부니까 그렇겠죠. 사람은 흥미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마라고 해도 찾아가요. 결국 배움은 세상에 대한 흥미,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거죠. 그래야만 배움이 삶으로 연결될 수 있어요. 아이들마다 배움의 빛깔도, 속도도 모두 다릅니다. 교사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이 필요한지 제안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인 거죠."

    "따뜻한 돌봄의 출발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다"는 것이 이 교장의 지론이다. "누구든 자기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과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고,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면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는 세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요. 그러면 자유로운 배움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배움의 동기를 부여하고 정보를 전달해 주는 곳이 학교여야 합니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경험해 본 아이들은 결국 사람을 포함해 자연에 대한 존중을 알게 되니까요."

    ◇자발적 연대와 협력…"마을은 사람으로 살기 위한 공동체"

    삼각산재미난마을 공동작업장인 목공소 풍경(사진=이진욱 기자/노컷뉴스)

     

    삼각산재미난마을을 굴러가도록 하는 주요 시설로는 삼각산재미난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소모임·강좌 등이 이뤄지는 마을회관 격인 '재미난마을사랑방', 공동작업장인 '마을목공소'를 꼽을 수 있다. 사단법인 부설 기관인 이 세 곳을 중심으로 평생학습교실 '마을배움터', 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속시키는 수많은 '마을동아리'가 가지를 쳐 왔다.

    이들 다양한 시설과 공간은 어떤 이유에서 만들어졌을까. 이 교장은 "주민들 개개인이 필요해서 생긴 것"이라며 "주민들의 자발성에 근거해 연대하고 협력한 결과가 다양한 시설과 커뮤니티로 나타났다"고 답했다.

    이날 찾은 마을목공소에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목공소 운영을 총괄하는 박미경 씨는 "이곳이 문을 연 지 햇수로 6년 됐는데, 그렇게 자리를 잡고나니 스스로 마을을 일궈 나가려는 청년들이 생겼다"며 "그들이 이 안에서 팀을 만들어 마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 목공소는 개인 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문화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공구 사용법, 가구 제작 입문 과정 등을 주로 진행해 온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박 씨는 "목공의 매력은 복잡한 일상과의 거리두기에 있어 보인다. 작업을 하는 동안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고민거리를 바라보면 나의 잘못, 타인의 잘못이 어떻게 갈등을 빚게 됐는지 드러난다"며 ""앞으로는 목공 뿐 아니라 직조 등 생활 속에서 손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각산재미난마을'이라고 쓰인 상징물 뒤로 삼각산재미난학교 건물이 보이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노컷뉴스)

     

    요즘 삼각산재미난마을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논의 중 하나가 마을공동체주택 사업을 통한 주거 문제 해결이다. 오랫동안 이사, 전세값 걱정 없이 함께 아이들 키우고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상훈 교장은 "편하고 안정적인 집에서 살고 싶지만 돈은 없다. 도시에 살면서 주거 문제는 혼자 해결이 안 된다. 그렇기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거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개인이 하기 어려우니 마을 리더들이 모임을 주선하고, 서울시 사회주택운영센터와 주민들을 연결시킨 뒤 자문을 얻으면서 공동체주택에 대한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갈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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