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인즈, 도미는 네가 해라' 오리온 이승현(왼쪽)이 26일 동부와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 동료 헤인즈와 몸을 부딪히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양=KBL)
'2015-2016 KCC 프로농구' 오리온-동부의 6강 플레이오프(PO) 1차전이 열린 26일 경기도 고양체육관. 경기 전 오리온 포워드 이승현(24 · 197cm)은 다부진 표정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이승현은 "지난 시즌은 6강 PO에서 5차전까지 가서 졌기 때문에 정말 아쉬웠다"면서 "올 시즌은 그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지난 시즌 오리온은 LG와 치열한 접전 끝에 4강 진출이 무산됐다.
이날 이승현의 역할은 정규리그처럼 골밑 수비다. 팀 에이스 애런 헤인즈(199cm)의 체구가 상대적으로 왜소해 상대 장신 외인을 막기 버겁기 때문이다. 올 시즌 내내 용병 선수들을 막아낸 이승현은 정규리그 최우수 수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승현은 "우리 팀에는 득점해줄 선수들이 많다"면서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골밑에서 잘 버텨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시절 이승현은 팀의 주역이었다. 2년 후배 이종현(206cm)과 함께 공포의 트윈타워를 형성했다.
그럼에도 조연을 자처한 이승현의 다짐은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능남고 주장 변덕규가 라이벌 북산고 채치수와 득점 대결 대신 자존심을 버리고 수비와 스크린 등 궂은 일을 하면서 내뱉은 "우리 팀에 점수를 따낼 녀석이 있다. 나는 주역이 아니어도 좋다"는 대사다. 이후 변덕규는 전국 최강 산왕공고 신현철에게 고전하던 채치수에게 "화려한 도미가 아닌 진흙투성이 가자미가 돼라"고 조언한다.
▲상대 장신 트리오 맡으면서도 알토란 18점
'이겼다!' 오리온 이승현(33번)이 26일 동부와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대승을 거둔 뒤 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고양=KBL)
이승현 역시 팀 사정과 역할 구도에 따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시즌 6강 PO에서도 이승현은 LG 에이스 데이본 제퍼슨을 밀착 마크로 괴롭혔다. 유도 선수 출신의 당당한 체격으로 힘 좋은 외인들을 막아냈다
이날도 이승현은 제몫을 충분히 해냈다. 동부 김주성(205cm), 로드 벤슨(207cm)은 물론 '제 2의 조니 맥도웰'로 꼽히는 웬델 맥키네스(192.4cm) 등과 치열한 골밑 대결을 펼쳤다. 이승현이 골밑에서 버텨주면서 오리온은 마음껏 외곽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승기를 잡아갔다.
승부의 분수령이던 3쿼터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전반을 61-50으로 앞선 오리온은 3쿼터 동부의 맹추격에 한때 60-66까지 쫓겼다. 이승현은 결정적인 가로채기와 수비 리바운드를 올리며 든든히 골밑을 지켰다. 쿼터 종료 3분45초 전에는 3점포까지 꽂아 78-62까지 점수를 벌렸다. 이후 상대 장신숲에서 공격 리바운드를 따낸 뒤 동료의 득점을 돕기도 했다.
15점 차 리드로 시작한 4쿼터 3점포를 다시 꽂은 이승현은 승부가 갈린 4쿼터 후반 상대 허웅의 슛을 블록하며 기세를 올렸다. 이승현은 32분25초를 뛰며 18점 4리바운드 2도움 2블록슛을 기록했다.
결국 오리온은 104-78 대승을 올리며 5전3승제 시리즈의 기선을 제압했다. 이날 오리온은 조 잭슨(23점), 애런 헤인즈(17점), 문태종, 최진수(이상 13점) 등 고르게 화력이 폭발했다. 역대 1차전 승리팀의 4강 PO 진출 확률 94.7%를 가져온 도미 못지 않은 가자미 이승현이었다.
경기 후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승부처에서 외곽을 막기 위해 수비 변화를 줬는데 이승현이 골밑에서 잘 버텨줘 이길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이승현은 "오늘은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서 수비가 힘들지 않았다"면서 "4강 PO 직행 무산의 아쉬움이 컸지만 이게 오히려 6강 PO에서 더 집중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