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세워 한반도 일부를 지배했는가?
그 임나일본부는 가야인가?
지나가던 개도 웃을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어느 샌가 스멀스멀 몸집을 키우더니 이젠 고대사의 '쟁점'으로까지 부상했다.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 나오는데, 『일본서기』 자체가 역사서의 기본인 연대 표기부터 틀리는 등, 사서로서 워낙 허술하고 함량 미달인지라 일본 학자들조차도 ‘임나일본부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바람을 타고 정한론의 대두와 함께 일본 극우들에게, 그리고 해방 후에는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에게 ‘사랑받는’ 주장이 되었다.
19세기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불태울 때 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제국주의 침략 논리에 무기를 제공했다.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역사 속에서 조작해낸 것이다.
그 결과 태어난 ‘사생아’들이 타율성, 한반도 정체성론, 반도사관, 임나일본부설 등이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 역사학자들이 강조한 것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한사군’과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였다.
고대에 한반도 북부는 중국이, 남부는 일본이 지배했다는 것으로, 고대부터 한반도는 외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으니 근대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예전에는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1차 사료들이 속속 번역, 공개되고 일반인들도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한사군’의 위치가 도저히 한반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사군 한반도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나일본부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이 이 주장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의 주장대로 과연 한반도에는 임나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가야일까?
<임나일본부는 없었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곳곳에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지리적으로 결코 임나는 한반도 남부에 존재할 수 없다.
『일본서기』 스진 65년조에 임나의 위치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
"임나는 쓰쿠시국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는데,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이 중에서 ‘북쪽이 바다로 막혀 있다’는 대목은 ‘임나일본부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결정타를 날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한반도 남부에서 북쪽은 대륙으로 이어져 있지, 결코 ‘바다로 막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서기』 게이타이 6년(512) 12월조에는 임나 4현이 “백제와 가까이 이웃하여, 아침저녁으로 다니기 쉽고 닭과 개 주인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소한의 공간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국가간 경계가 아니라 마을이나 부락 단위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할 것이다.
어떤 나라가 ‘아침저녁으로 다니기 쉽고’ 닭이나 개가 울면 누구네 닭이나 개인지 알기 힘들 정도일 정도로 가깝겠는가?
고대든 현대든 국가 간에 국경을 넘어 오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닭이나 개가 우는데 그것이 백제 것인지 신라 것인지 고구려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코미디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결코 임나는 한반도 남부에 존재할 수 없다.
임나일본부설의 골자는 진구 49년(369) 신라를 공격하여 가야 7국을 평정하고 그 자리에 임나를 세웠고, 그 임나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배 조직으로서의 ‘일본부’라는 명칭이 기록된 것은 후반 약 100년(464~552년 사이)뿐이다.
369년에 임나를 세웠으면 통치기구도 당시에 생겨나야 맞다.
정복한 땅에 다스릴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일본부는 100여 년 후에야 등장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더 큰 문제는 '일본'이라는 용어다.
‘일본’이라는 용어 자체가 7세기 후반에 처음 생긴다.
그러므로 464~552년에 등장한 일본부라는 명칭 자체가 7세기 후반 이후에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임나 ‘일본부’는 464년에 처음 기록이 등장하고, 그로부터 77년 후인 541년에 두 번째로 등장한다.
그 후 552년까지 불과 11년 동안에 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10여 회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일본서기』 기록이 이런 식으로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 200년 동안 임나를 지배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익히 알게 된다.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본문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임나일본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2장에서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역사서로서 『일본서기』가 가진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3장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이자 임나일본부설을 퍼뜨린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스에마쓰 야스카즈와 그의 학설을 이은 김현구(고려대 명예교수)를 비판한다.
과연 진실은 어떤 것인가?
지은이는 딱 잘라 말한다.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는 없었다’고.
그리고 ‘임나는 일본의 대마도 또는 북규슈에 있었다’고 말이다.
최재석과 윤내현 등 민족사학자들의 학설을 꼼꼼히 분석하고 중국과 우리의 고대사료를 참조하여 연구한 지은이 역시 그들과 동일한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 임나일본부는 결코 없었다, 한반도에는.
황순종 저/만권당 간/27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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