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 델스페르제 '신사숙녀'(2005)
'보이지 않는 가족'은 프랑스 사상가이자 사진 이론가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서울시립미술관과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이 비주류, 주변부, 타자 등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전시 주제가 선뜻 와닿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진은 그 자체로 잘 드러난 대상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그 궁금증은 트렌스젠더를 다룬 영상 작품을 통해 풀렸다. 브리이스 델스페르제의 영상 작품 '신사숙녀'는 카바레에서 무희가 스트립쇼를 하며 관능적인 춤 동작을 보여준다. 무희의 매혹적인 자태에 넋을 잃고 이 영상을 보고 난 뒤 이 여성이 트렌스젠더(성전환자) 무희를 연기했음을 알게 되었다. 전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전복이다.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일이 이처럼 우리 일상에서 늘상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피상적인 앎보다는 본질에 접근하는 것. 이것이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사진 이론이다.
바르트는 사진을 스투디움과 푼쿠툼으로 나눈다. 스투디움은 어떤 것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애정, 열정적이지만 특별히 격렬하지는 않은 일반적인 정시 집중을 의미한다. 푼쿠툼은 스투디움을 방해하고 깨뜨리는 요소이다. "사진의 푼쿠툼은 나를 찌르는 (뿐만 아니라 나에게 상처를 주고 완력을 쓰는) 그 우연을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에스텔 페레의 '세월을 거친 자화상'은 시간과 정체성의 관계를 통찰하고 있다. 작가는 그녀의 얼굴을 두 개로 나눠 한 쪽에는 '전'을 다른 쪽에는 '후'를 배치한다. '전'과 '후' 사이에는 20년의 간격이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같은' 대상의 사진인 것이다. 이 사진 설치는 상실된 시간 단위의 형식 안에서 자아에 대한 재현들을 펼쳐보인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작가의 얼굴을 나눈 이미지는 정체성의 조각을 다시 맞추는 것이지만, 흐르는 시간 앞에서 영구성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1960-70년대 이후 현대 사진가와 미술가들로 구성된 4개의 섹션(신화를 해체하기, 중립 안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 자아의 허구)을 통해 사회적으로 비가시적인 인물들의 초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일우스페이스는 1955년 '인간 가족'전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을 통해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섹션으로 강한 대비를 선사한다.
'보이지 않는 가족'전에서 소개되는 사진작품은 근대기 사진과 영화의 시작과 발전과정, 그리고 현대미술과 사진의 연결 지점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