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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 가장 속상해"

사회 일반

    "'이제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 가장 속상해"

    세월호 참사 2주기 '동생 성호, 봄이면 더 생각나'

    - 2년전 4월 16일 이후 모든 것이 바뀌어
    - '유가족 시체장사하냐' 등 비방글 모니터링 활동 지속해
    - 사회 유명 인사들의 망언, 제대로 처벌 안돼
    - '세월호세대'에 대한 사회적 배려 필요해
    - 세월호 TF, 국정조사 이후에도 진상규명 안돼
    - 안산 단원 지역구 여당 후보 당선, 야권 단일화 무산 탓
    - 세월호 인양과정 유가족 참관 허용했으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4월 15일 (금)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보나(세월호 유족, 고 박성호 군 누나)

     

    ◇ 정관용> 내일이 세월호 참사 2주기입니다. 벌써 2년이 흘렀네요. 4.16 세월호작가기록단이 있는데요. 최근에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생존 학생들도 만나보고 또 희생된 학생들의 형제, 자매들과 인터뷰를 해서 그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희생자 형제, 자매 가운데 한 분을 오늘 모셨는데.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이고요.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 저희 프로그램하고 ‘세월호 관련 악플 때문에 유족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한 바가 있군요. 박성호 학생의 누나, 박보나 양입니다. 박보나 씨 어서 오십시오.

    ◆ 박보나>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집안에 형제, 자매가 어떻게 돼요?

    ◆ 박보나> 저희 2남 2녀고요. 제가 장녀고 밑에 여동생, 밑에 성호, 밑에 마지막 남동생 이렇게 2남 2녀예요.

    ◇ 정관용> 셋째가 그러면 먼저 갔군요. 그렇죠?

    ◆ 박보나> 네.

    ◇ 정관용> 벌써 2년, 실감나요?

    ◆ 박보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데 지금 조금씩 실감이 나서 많이 힘들어요.

    ◇ 정관용> 4월만 오면 더 그래요?

    ◆ 박보나> 그냥 항상 힘든데 봄에 꽃피고 할 때는 더 힘들고 그렇죠.

    ◇ 정관용> 혹시 박보나 양도 단원고등학교 나왔습니까?

    ◆ 박보나> 네, 저도 단원고 졸업생이고요. 바로 밑에 여동생도 단원고 나왔고 성호도 단원고 나왔고요.

    ◇ 정관용> 그 성호 동생은?

    ◆ 박보나> 성호 동생은 작년에 입시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단원고 안 가겠다고, 다른 학교 가겠다고 했고 다른 형제, 자매들 중에는 단원고에 일부러 간 형제, 자매들도 있어요.

    ◇ 정관용> 그 세월호 사고 날 때 그러면 우리 박보나 양은 대학생이었어요?

    ◆ 박보나> 네. 학교에서 강의 듣고 있었어요. 수업 듣다가 친구가 핸드폰을 보여주더라고요. 이렇게 배가 침몰했고 단원고라고. 그리고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제 핸드폰을 보니까 가족들한테 연락이 와 있고 그때부터 수업을 나가고, 교실을 나가서 전화하고 조퇴해서 빨리 집에 오고. 저희는 그냥 안산에 있었어요. 부모님만 내려가시고. 그래서 안산에서 소식 전해 듣고 동생들 챙기고 그랬었어요.

    ◇ 정관용> 부모님들은 바로 팽목항으로 가시고?

    ◆ 박보나> 바로 단원고에 갔다가 버스 대절해서 바로 팽목항으로 내려가셨었고요.

    ◇ 정관용> 그리고 집에 그냥 대기.

    ◆ 박보나> 저희는 그냥 집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 잠깐 하루 내려갔었는데, 저는 아예 부모님 챙기려고 내려가려고 짐도 다 싸서 내려갔는데 아빠가 여기 사람 있을 데가 못 된다고 올라가서 동생들 챙기라고 하셔서 성호 올라올 때까지 안산에서 동생들이랑 있었어요.

    ◇ 정관용> 하긴 동생들이 둘이나 더 있으니까 그렇죠?

    ◆ 박보나> 네.

    ◇ 정관용> 그 2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박보나> 저는 14년도에 바로 휴학을 하고 계속 4.16 활동만 하고 많은 활동들을 하고 15년도에는 복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복학을 했고 복학하면서도 사실 일을 조금씩 했어요. 그리고 과정이 끝나고 12월부터 교실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 모여서 교실 존치 행동을 같이 하고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다시.

    ◇ 정관용> 아직 학교는 졸업 못 했고?

    ◆ 박보나> 작년에 복학해서 학교 과정은 끝났는데 제가 사실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서 편입을 작년에 했어야 했는데 못 했어요. 그래서 아직은 편입을 준비하고 있어요. 하면서 4.16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정관용> 부모님들은요?

    ◆ 박보나> 엄마는 되게 열심히 활동을 하셨어요, 15년도까지도. 간담회도 다니시고 이곳저곳 항상 좀 나서서 일하시는 편이었는데 겨울부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지금은 계속 쉬고 계시고요. 건강을 챙기셔야 하는 단계라서 활동은 잘 지금 못 하고 계세요.

    ◇ 정관용> 아버님은?

    ◆ 박보나> 아빠도 좀 많이 힘드신 그런 상황.

     

    ◇ 정관용> 세월호 관련 활동을 많이 했다고 했는데 어떤 활동들을 했습니까?

    ◆ 박보나> 5월 말부터 비방글 모니터링 하는 역할을 저 혼자 했었고.

    ◇ 정관용> 비방글 모니터링. 그 비방글 모니터링 할 때 아마 저희 프로그램하고 인터뷰를 했던 모양인데. 어떤 글들이었었죠?

    ◆ 박보나> ‘유가족들이 시체장사한다’, ‘유가족이 벼슬이냐?’ 이런 얘기들 하고 생존 학생들에 대해서도 ‘살아 돌아와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생존자들 특례입학과 관련해서 또 비방을 하고. 희생자에 대해서도 비방하는 그런 글들이 있었고요.

    ◇ 정관용> 그런 글들이 주로 어디에 올라와요?

    ◆ 박보나> 일단 네이버 기사 댓글에 가장 많고요. 일베나 이런 사이트에도 있지만 SNS에서도 그런 글들이 많고 SNS에 세월호 사건 이후에 보수라고 하는 페이스들이 많이 생겨나서 그런 곳에서도 이런 비방글들을 많이 올렸었어요.

    ◇ 정관용> 그래서 그런 악플러들을 몇 명이나 고소를 했고 실제로 다 처벌을 받았습니까? 어떻게 됐어요?

    ◆ 박보나> 악플러를 재작년에 70명 고소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 이후에 다시 이렇게 고소취하를 했던 건들도 있어요.

    ◇ 정관용> 직접 그래서 처벌까지 된 경우가 몇 건 정도 됩니까?

    ◆ 박보나> 그건 다시 봐야 할 것 같은데 특정자를 찾지 못 해서 처벌이 안 된 경우도 있고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처벌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데 제가 했던 건들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처벌이 됐지만 유명인사들, 권은희 씨나 지만원 씨나 저희 세월호가족대책위 차원에서는 유명 목사들이 좀 망언을 했었을 때 가족대책위 차원으로 고소를 했었는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처벌이 안 됐어요, 아예.

    ◇ 정관용> 왜 유명인사들은 처벌이 안 됐고 우리 박보나 양이 찾아서 그렇게 고소한 건은 상당수 처벌이 됐다고 그랬잖아요. 왜 그런 차이가 나는 거예요?

    ◆ 박보나> 글쎄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증거 불충분이나 혐의 없음 이런 걸로 처벌이 안 됐는데.

    ◇ 정관용> 검찰에서 유명인사라고 그래서 조금 수사를 미온적으로 했다, 이런 생각은 합니까? 안 합니까?

    ◆ 박보나>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사실 그 사람들이 더 영향력이 크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박보나> 그냥 명예훼손보다 사이버명예훼손이 더 큰데, 처벌 받는 것도 큰데. 그 사람들로 인해서 사실 비방글이 많아진 건데 그 사람들의 비방글은 처벌되지 않았던 것, 비방발언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이 되고. 가장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것들이 되게 좀 억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 정관용> 그 처벌을 받은 경우는 어느 정도의 처벌이에요? 벌금 얼마 이 정도?

    ◆ 박보나> 네, 뭐 그 정도.

    ◇ 정관용> 참. 혹시 그런 활동을 하는 과정에 이런 비방댓글이나 악플 같은 걸 다는 사람 중에 누구라도 혹시 만나보거나 이야기해보거나 그런 적 있어요?

    ◆ 박보나> 악플을 단 사람들을 만나보진 않았는데요. 현장에서 부모님들이 서명운동을 하시거나 광화문에 있을 때나 그럴 때 오프라인상에서 인터넷에 있는 비방글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점점 늘어났고.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다 보니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지금 세월호 관련돼서 희생자들의 부모님들을 우리 일반 국민들은 제일 많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떠올리고 기억합니다. 가장 힘든 분들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사실 형제, 자매들도 부모님 못지않게 똑같이 힘들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박보나> 네. 저희 형제, 자매들은 부모님과 조금 다른 부분에서 힘든데.

    ◇ 정관용>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 박보나> 저희는 어리고 사실 형제, 자매가 진짜 갓난아기부터 지금 이미 아이를 낳고 기르는 30대 이상의 형제, 자매까지 연령층이 다양한데 부모님보다 좀 더 어리고 그리고 이별이나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그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고 아직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그런 내적인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이후에 부모님께 사실상 방치되었다 보니까 혼자 삭혀야 됐고 그 치유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도 많다 보니까 어떤 어른에게 나의 이야기를 잘 할 수도 없고 또 친구들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러다 보니까 좀 더 힘든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나마 우리 박보나 양의 경우는 그래도 대학생이고 일단 성인인데 세월호 학생의 동생들 같은 경우가. 부모님들이 다 진도에 가 계시고 그러니까 정말 더 힘들었겠군요.

    ◆ 박보나> 진도에 계실 때 같이 갔던 어린 형제, 자매들도 많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박보나> 그 과정을 다 봐 왔고 사건 이후에 ‘어른들이 미안하다. 어른들이 잘못했다’라고 많이들 얘기하셨는데 그 이후에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고 가해자들을 우리는 계속해서 만나고 있고 형제, 자매들은, 부모님들은 세월호 활동에만 전념하시니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말들을 많이 들으셨는데 형제, 자매들은 일상 속에서 학교생활 하면서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 속에서 상처 받은 것들이 되게 많아요.

    ◇ 정관용> 이번에 인터뷰에 응했었지 않습니까? 그 책의 내용을 보니까 ‘세월호 세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데 그 세월호 세대라는 것이 바로 이런 형제, 자매들 이걸?

    ◆ 박보나> 그 세월호 세대의 배려, 그러니까 유가족에 대한 세월호 세대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고 또 세월호 세대에 대한 사회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학교에서 같은 또래 친구들이고 자기 형, 누나,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 정관용> 아, 같은 동년배 세대들.

    ◆ 박보나> 네. 그들이 같이 느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구나, 이런 것들도 많이 느끼고 자기 또래가 죽는 모습을 봐 오면서 그 친구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상처받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 자매들이나 생존 학생들에게 좀 잘 모르기 때문에 했던 것들도 있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상처준 것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그 세대들과 살아야 하잖아요. 부모님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함께 하지 못할 거고 앞으로 같이 살아갈 사람들은 세월호 세대인데 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세월호 세대의 배려를 요구했던 것이고 세월호 세대들의 아직도 가만있으라거나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지 않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어른들이 미안하고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했는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런 과정에서 아직도 세월호 세대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아직도 가만있으라는 주입을 하니까 세월호 세대들이 전반적으로 또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도 세월호 세대에 배려를 해 줘야 된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 정관용> 지난 2년 동안 가장 힘들고 가슴 아프고 물론 성호를 잃은 것이겠죠. 그렇죠? 그다음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어떤 거예요?

     

    ◆ 박보나> 점점 그만하라, 이제는 좀 가만있어라 그런 말들이 많았는데 점점 세월호를 잊고 세월호와 함께 하던 사람들도 등 돌리는 모습들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특위가 만들어지고 청문회도 두 번 하고 했는데 어때요? 궁금증이 많이 풀렸어요, 어때요?

    ◆ 박보나> 조금은 풀린 것 같은데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저희는 조금의 궁금증이 풀렸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 부분이 특조위가 두 차례나 있었어도 다들 몰라요. 청문회가 있었다는 것도.

    ◇ 정관용> 청문회 있는지도 모르죠.

    ◆ 박보나> 그래서 앞으로 더 꼭 3차 청문회도 필요하고 특검도 꼭 실시해 줘야 하고 그리고 꼭 언론 공중파에도 나와서 많은 시민들이 이 사실을 같이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정관용> 진상과 관련해서 가장 지금 미흡한 부분이 어느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박보나> 너무 많은데 지금 올해 인양을 하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인양을 해도 이미 안에 있는 증거들은 다 없앤 상황이고 그리고 지금 특조위가 이제 다 끝나갈 상황인데 특조위 안에 있던 기록물들이 제3차 특조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기록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요. 이미 일단 지금까지 힘들게 진상과 관련된 자료들을 만들어왔는데, 수집해 놨는데 그 자료들을 그냥 물거품이 되면 이미 소용이 없는 거니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도 더 힘들어지는 거니까 그런 것도 더 신경써야 한다고. 사실 지금 부모님들께 이야기 들어보면 세월호를 인양해도 이미 배 안에는 증거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인양을 해도 얼마나 많은 진실이 밝혀질지 지금 부모님들도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 정관용> 다시 정리하면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의 인양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진상규명에 꼭 필요한 배의 일정 부분이 인양 작업 과정에서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훼손됐다. 그거죠?

    ◆ 박보나> 네.

    ◇ 정관용> 부모님들이 그런 것을 우려해서 그 인양 작업을 좀 옆에서 참관할 수 있게 해 달라, 그렇게 요구했는데 그것도 거절당했죠?

    ◆ 박보나> 거절당했다가 선거가 바뀌고 난 다음에는 해수부에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된다라고 말을 바꾼 기사를 봤거든요.

    ◇ 정관용> 아. 총선 끝나자마자?

    ◆ 박보나> 네.

    ◇ 정관용> 총선 전에는 참관 불허하다가?

    ◆ 박보나> 계속 요구해 왔지만 인양 TF에도, 실종자 수색 TF에도 그것도 싸워서 들어가시거나 싸워도 못 들어가셨던 상황이었는데.

    ◇ 정관용> 총선 끝나고 나니까.

    ◆ 박보나> 그런 기사가 올라왔더라고요.

    ◇ 정관용> 참관 허용해야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 박보나> 네.

    ◇ 정관용> 그리고 어쨌든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일부 정당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이대로 두면 지금 세월호 특위 활동기한이 금방 끝나잖아요. 이것 빨리 법 개정해야 된다. 그것을 위한 임시국회를 이번 19대 국회 임기 내에서라도 빨리 소집하자. 이런 요구도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보나> 당연히 했어야 될 일인데 일단 여소야대가 돼서 그나마 좀 힘을 써서 해 주는 것 같은데. 당연히 했어야 될 일을 지금에서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대로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그나저나 단원구에 갑을 선거구가 있는데. 거기 둘 다 새누리당이 당선됐더라고요.

    ◆ 박보나> 네.

    ◇ 정관용>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에 투표했죠?

    ◆ 박보나> 네, 투표했는데요. 일단 단일화를 안 해서.

    ◇ 정관용> 아, 야권후보 분열.

    ◆ 박보나> 사실 안산 단원갑, 단원을이 가장 낮은 득표수로 당선이 됐다고 나오더라고요.

    ◇ 정관용> 맞아요.

    ◆ 박보나> 단일화를 했다면 당연히 이길 수 있었는데 단일화를 안 했기 때문에 그 각자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자기 욕심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시민들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는 더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세월호 일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아요. 단원구, 안산에 사는 사람들이 세월호 일을 잘 모르기도 하고 그냥 보상은 이미 받았는데 얼마나 더 받으려고 하느냐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게 좀, 그렇게 생각했던 게 이번 선거에도 표현이 됐다고 생각하고 단원갑 같은 경우는 50%도 안 넘어요.

    ◇ 정관용> 투표율이?

    ◆ 박보나> 네. 그래서 좀 많이 실망하게 되기도 하고.

    ◇ 정관용> 세월호 옆에서 도와주던 박주민 변호사는 이번에 국회의원이 당선이 됐어요.

    ◆ 박보나> 네.

    ◇ 정관용>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 박보나> 부모님들께서도 우리가 지금까지 싸웠던 것 중에 처음 이긴 거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인다고 얘기하세요. 그래서 박주민 변호사님은 누구보다 잘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월호뿐만 아니라 모든 어려운 문제도 잘 해결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니까 좀 희망이 있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진작 했어야 할 것 여태껏 안 하다가 선거 끝나니까 이제 하겠다고 야당에서 이야기하는데. 제대로 해 달라. 아까 그 말씀 정치권에 하신 말씀이라고 듣고 우리 국민들께 한 말씀 하신다면요?

    ◆ 박보나> 이제 2년이 됐는데 사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거든요. 그런데 점점 국민들은 세월호를 잊고 있고 세월호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왜 아직까지 하느냐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잊지 않아야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니까 꼭 이 사건 잊지 말고 앞으로 인양이라든지 특검이라든지 앞으로 세월호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또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국민들, 시민들의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끝까지 좀 관심 잃지 않고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네, 저희 시사자키도 계속 관심 갖고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보나>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박보나> 감사합니다.

    ◇ 정관용> 고 박성호 군의 누나, 박보나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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