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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던 다짐, 왜 "잊어가겠다"는 도피 낳고 있을까

책/학술

    "잊지 않겠다"던 다짐, 왜 "잊어가겠다"는 도피 낳고 있을까

    [세월호 2주기 포럼 중계 ③]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개인'은 여러모로 한계"

    '세월호 2년, 진실과 기억을 위한 연대'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지난 9일 서울 제기동에 있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였죠. 여전히 세월호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날 포럼에서 소개된 주제발표 4건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 선원은 왜 자기도 위험해지는 순간까지 대기방송을 했나
    ② 세월호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키라"는 이들은 누구인가
    ③ "잊지 않겠다"던 다짐, 왜 "잊어가겠다"는 도피 낳고 있을까
    ④ "진상 캐야 하는데, 사무실 임차료·집기 외상으로 버티기도"


    15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안산지역 학생들이 안산고교학생회장단연합 주최로 열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2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세월호 참사 관련 책을 빌리러 대학 도서관을 방문했다. 대출한 책들의 낱장을 펼쳐보기도 전에, 도서관 책장은 말없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기억과 망각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 했다. 도서관에 서너 권씩 비치된 책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한 권씩 소장된 책들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비어 있고, 적당한 채워져 있는 책장처럼 세월호 참사 2주기는 기억과 망각의 중간 어딘가에 뿌옇게 서 있었다."

    역사문제연구소 임광순 연구원은 '세월호와 연구자의 거리'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세월호 참사 2주기의 표정과 이를 대하는 연구자로서의 위치를 깊이 있게 짚었다. "사회적으로 흐려지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 속에서 '달라져야 되는 것이 뭐냐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가는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세월호 운동을 이어나가는 그룹들은 대체로 지역, 직업, 공간, 종교 등 공통된 정체성에 기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소모임이라 한다. 이런 양상을 보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연구자 개인은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으며, 연구자 집단이라는 단위로 접근할 때에 비로소 세월호 문제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실천이냐' '연구자의 실천이란 무엇이냐'의 질문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모일 것이냐'의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임 연구원은 지난 2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의 싸움을 두고 "잃어버린 자녀에 대한 사랑(특수관계)을 한국사회에 대한 보편적 애정(안전사회 건설)으로 전환시키는 사회화 과정이었는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언어적 전환은 사회적 고립에 대한 자기보호 행위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 연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응답이란 무엇일까. 방법은 여러 가지겠으나 우선 자신의 역할을 한국사회 일반에 대한 연구 수행자에서, 작은 이야기들을 곁에서 들어줄 청자로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보다는 '집단'적인 접근방식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집단적인 접근을 가능케 만드는 공간으로 '416기억저장소'를 꼽았다. 이곳은 지난 2014년 4월 이후 진도와 광화문, 청운동 등에서 기록 작업을 진행했던 단체, 개인이 모여 안산 고잔동에 터를 잡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록은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416기억저장소는 시민과 함께 하는 기록물 수집 및 아카이빙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임 연구원의 설명이다.

    "416기억저장소는 2015년 7월부터는 기존의 기록 수집에서 더 나아가 '구술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18명으로 구성된 구술팀은 올해 3월까지 안산을 중심으로 총 48인의 유가족·관련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구술 기록은 현재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세월호 진실규명이 벽에 막힌 어렵고 민감한 상황에서 유가족들의 발언이 현 정부·언론에 의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안전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이 실시됐다면, 사회적 안전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졌다면, 그리고 국가의 안정적이고 이성적인 지원이 이뤄졌다면 지금쯤 유가족들의 말은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마저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은 한국사회의 병폐를 확인하는 리트머스지일지도 모른다."

    ◇ "외면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세월호' 르포의 한 부분에 위치할 뿐"

    임 연구원은 지난해 8, 9월 두 달간 유가족 구술 작업에 참여했던 기억을 꺼내놨다. "나의 부끄러움과 한계를 드러내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런 말을 들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 이런 행위 자체가 개인만 남아 읊조림마저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회적 연대를 회복하기 위한 작은 불씨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었다. 웃어야 할지, 과묵한 표정을 지어야할지, 측은한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그것이 위선인지. 사람의 얼굴 표정은 곧 '관계 맺기'의 관점을 보여주는데 '나는 유가족에게 어떤 사람인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스스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유가족의 특정한 발언들에 대해서 '이 말은 진짜인가?' '혹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류의 소위 '합리적' 의심이 들 때는 이런 방식으로 트레이닝 된 스스로의 위치가 부끄럽기도 했다. '분석가'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은 습속은 면담과정을 가뜩이나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유가족의 감정 상태에 대한 이해와 4·16 이후 변화된 유가족의 시간관념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가족의 입으로 듣는 간접 경험임에도 그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던 몸과 마음의 아픔, 그리고 내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닿지 못할 유가족과 구술자 사이의 거리감은 구술자들이 겪었던(겪고 있는) 일이다."

    그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개인은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며 "사회적 연대가 거세된 '잊지 않겠습니다'는 '서서히 잊어가겠습니다'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한복판에 가라앉아 있는데 고립된 개인은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변 없는 바다 한가운데 떠서 내 위치를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또 GPS 기능이 마비된 내비게이션을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아쉽지만 사회적 연대에는 GPS와 같은 자신의 위치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장치가 없다. 대신 나와 상대방의 관계 속에서 서로 위치·거리를 확인하고 조정해가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16 구술 채록도 보다 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현재는 같이 걷는 사람으로서 안도감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 각자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임 연구원이 "416 구술팀이 구술 채록 작업에서 더 나아가, 세월호 사건을 결국 연구자로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 또는 고민을 겪는가 등을 털어놓고 함께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 보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4월 한국 사람들은 빠르게 슬퍼했고, 금세 슬픔에서 탈출했다. 세월호 참사가 충격적인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만 애써 망각했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무능, 안전 체계의 부재, 시장의 탐욕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전문가들이 패닉에 빠진 건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알았고, 잘 아는 만큼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그것이 도덕적 부채와 현실적 외면 사이의 자기분열적 감정 상태를 낳고 있는 게 아닐까. 어찌 됐든 세월호는 이미 그 자체로서 거대한 르포가 됐다. 연구자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제3자로서 분석가의 위치에 있을 수 없게 됐다. 외면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르포의 한 부분에 위치할 뿐이다."

    ◇ "우리는 '듣기'를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한다"

    임 연구원은 "우리는 이제라도 문제를 이전보다 집단적·장기적 방법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의 세부 형태는 통일되지 않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세월호라는 거대한 르포가 금세 망각의 영역으로 휩쓸려갔다. 이미 2014년부터 예상했던 일 아니었던가. 또 416교실 존치에 반대하는 사람 중 다수는 2014년 4월부터 함께 울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도덕적 부채를 느끼는 연구자도 다수 포함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슬픔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는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시간조차 허용치 않았다. '유족의 시간'은 '관계자의 시간'으로,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가해자의 전략'으로 뒤집혔다."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해법으로 그는 '듣기'를 제시했다.

    "도덕적 부채라는 허울과 망각이라는 무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더 잘 들어야 한다. 특히 '말'을 빚어내는 연구자에게 읽기, 말하기, 쓰기는 모두 중요하지만 '듣기'를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자 집단의 정체성으로 참사를 마주하고, 또 연구자 서로를 토닥여줄 수 있다."

    임 연구원은 끝으로 1985년 일본 JAL기 123편 추락사고 이후 6년간 유가족의 곁을 지켰던 작가 노다 마사아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여성들의 목소리를 발굴한 알렉시예비치의 글 일부를 전했다. "연구자 사회 내외의 연대성을 한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다.

    "가해자는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잊어줬으면 좋겠다' '배상의 성립으로 일단락 짓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야기를 서두른다. 가해자의 전략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굳게 믿는 것, 그리고 사고를 잊는 것이다." - 노다 마사아키

    "나는 점점 커다란 귀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담으려는 커다란 귀. 나는 목소리를 '읽는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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