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리스도교의 탄생'은 원시 그리스도교의 탄생 과정을 신학적·종교적 관점이 아닌 역사학적 관점에서 추적·탐구한 책이다. 일반 교양인의 눈높이에서 예수에 의해 개창된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초창기의 전개과정을 알기 쉽게 역사적 근거에 토대를 두고 집필한 것이다. 고대 로마사 전공자인 저자 정기문은 자신의 전공과는 별개로 그리스도교의 탄생 과정을 20여 년 넘게 독학으로 연구해 이 책을 서술했다.
이 책을 서술하는 데 저자는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모든 사건의 배후에 거대하게 흐르는 시대의 흐름- 페르낭 브로델이 "우리는 개인과 사건을 훨씬 넓은 시대의 배경 속에서 고찰해야 한다"라고 했듯이 ― 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 원칙에 근거해서 보자면, 그리스도교의 탄생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지상으로 내려와서 단숨에 유대교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다. 즉 새로운 변혁을 갈망하는 강렬한 시대의 요구가 이미 있었고, 예수, 주의 형제 야고보, 베드로, 요한, 스테파노, 바울로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여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수는 율법의 적용 문제, 성전과 그 의례의 가치,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경계, 종말의 임박에 대해서 당시의 유대인 가운데서 가장 혁신적인 사상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혁신적인 사상은 여전히 유대교의 틀 내에서 이루러졌으며, 당시 예수와 비슷한 생각을 펼친 무리가 꽤 많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불리는 바울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다지 혁신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합류하기 이전에 이미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착수했으며, 이방인에게 율법을 강제하지 않는 선교, 즉 '율법에서 자유로운 선교'를 펼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믿음은 바울로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원시 그리스도교 내에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던 신앙이었던 것이다. 즉 바울로의 위대한 업적은 그런 혁신적인 믿음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이 그 믿음을 포기할 때 강인한 정신으로 그 믿음을 지켜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예수와 바울로를 비롯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시대정신의 대변자였던 것이다.
두 번째 원칙에 근거해서 보자면, 그리스도교의 탄생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예수 이전에 이미 묵시 종말론과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열망이 유대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예수는 율법과 성전의 문제에 대해서 혁신적인 설명을 주도하였고, 임박한 종말을 선포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베드로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생각하며 예루살렘 교회를 결성하였다. 예루살렘 교회 내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수많은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고, 여러 세력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개혁의 열정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로는 예수의 말과 행적을 유연하게 해석하여 새로운 신학을 위한 길을 열었으며, 또한 독자적인 선교 활동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 내에서 '종족·성·계급'의 구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이렇게 거대한 개혁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유대교의 틀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면 재조정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간 그리스도교의 탄생은 두 가지 '색 렌즈'에 의해 재단되어 왔는데, 특히나 지난 2000년 동안 교회가 신자들에게 씌운 색 렌즈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쳐왔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진실로 파악하고", 거기에 근거해 예수의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탄생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거대하고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빅뱅이 한순간에 우주를 탄생시켰듯이, 유대교와 여타 고대 종교의 장벽을 허물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색 렌즈'로 보면, 근본적으로 유대교는 배타적이고 열등한 종교, 그리스도교는 포용적이고 보편적이고 우월한 종교라는 전제, 그리고 예수가 그런 유대교와 극단적으로 단절하고 새로운 종교의 원리를 제시했다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색 렌즈'는 지금까지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바, 일반인들이 읽고 있는 교과서나 개론서 혹은 대중서와 같은 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나 바울로의 초인간적인 가르침이나 뛰어난 업적으로 순식간에 탄생한 것이 아님을. 그들이 유대교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품지 않았다는 ……. 예수나 바울로는 둘 다 죽을 때까지 자신들을 유대교도라고 믿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