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허:그리스도 이야기' 는 단순히 유대인 벤허가 전차 경주를 통해 로마인 친구(이자 자신과 가족을 파멸시킨) 메살라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 아니다.
'그리스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존재 의의와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서 예수와 벤허가 대면하는 장면은 딱 두 번뿐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생애는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히 엮인다.
벤허는 자신이 겪는 고난, 어머니와 여동생의 문둥병이 낫는 기적,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통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 구세주로서 예수는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아간다.
또한 저자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생중계를 하듯, 로마제국하 예루살렘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단순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대중소설을 넘어,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파헤치는 종교소설이자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장대한 서사가 펼쳐지는 역사소설의 전범으로서 출간된 지 1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연극, 영화, 뮤지컬,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다.
고대 역사와 종교라는 다소 딱딱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거의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이 두꺼운 소설을 언제 다 읽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벤허의 굴곡진 인생 역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메살라에게 통쾌한 복수를 선사하기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이라는 천형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될 테니 말이다.
본문 중에서하지만 벤허의 눈에는 오직 전차 위에 우뚝 서 있는 기수만이 들어왔다. 말들과 연결된 가죽끈을 온몸에 여러 번 휘어감은 사내, 잘생긴 얼굴, 연홍색 천 소재의 튜닉 차림에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고 약간 들어 올려 뻗은 왼손에는 네 개의 고삐를 쥐고 있는 사내. 극도로 우아하고 활기에 넘치는 자세, 군중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당연하다는 듯,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벤허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그의 직감이 맞았다. 그의 기억이 옳았다.
메살라!
말들을 고르고 치장한 솜씨, 전차의 호사스러움, 분위기, 태도,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을 비롯해 타민족들을 수세대 동안 굴종시킨 로마인 특유의 독수리 같은 표정. 벤허는 메살라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오만, 지나친 자신감, 대담무쌍함, 끝을 모르는 야욕, 모든 약한 존재들에 대한 경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리고 있는 태연한 표정. - 408~409쪽
벤허의 모습은 남자답게 늠름했다. 사막의 햇볕과 바람에 노출되었던 그의 뺨과 이마는 거무스름했고 옅은 콧수염 아래의 입술은 붉었고 치아는 희게 빛났고 부드러운 턱수염도 턱 선과 목을 완전히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그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팔을 뻗쳐 그를 품에 안고 입 맞추고 싶은 마음은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 충동을 억누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과도 다르다. 너무나도 애정 어린 그 사랑은 경우에 따라 무한한 힘을 발휘하는데 자기희생의 힘도 그런 것이다. 그 아무리 건강과 재산을 되찾고 삶 그 자체나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둥병자인 어머니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아들을 찾은 바로 그 순간에 그녀가 그 아들을 영원히 포기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이란 말인가!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아들의 발치로 기어가 거리의 흙먼지로 누레진 그 신발 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영혼을 담아 몇 번이고 거듭거듭 입을 맞추었다. - 756-757쪽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사렛인에게 쏠려 있었다. 그때 벤허의 가슴에 일어난 동요는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벤허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보다 더 고귀하고 높은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훨씬 더 고귀해서 육체와 영혼의 극심한 고통을 견뎌낼 힘을 가진 나약한 인간에게 어울릴 무언가, 죽음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무언가, 어쩌면 이 생보다 더 고결한 생일지도 모르는 그것, 또는 발타사르가 굳건하게 믿었던 영적 삶에 대한 생각이 벤허의 마음속에 명료하고 또 명료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나사렛 사람의 임무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도록, 경계선을 넘어서 왕국이 세워져 있고 그를 기다리는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953쪽
루 윌리스 지음/안진환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 981쪽/ 19,900원
'미러클'의 저자 에릭 메탁사스는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과학의 모든 증거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개인적으로 그에게 신은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우주와 지구가 우연히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생각은 논리적이지 않다. 과학과 신앙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과학은 신앙을 더욱 명료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에나 위대한 과학자들 중에는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하고서는 도저히 우주와 지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기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적은 하나님이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인데 그냥 소통이 아니라 특별한 친밀함이 있는 소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은 그 기적 뒤에 있는 하나님을 필연적으로 가리키는 사인이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기적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