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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아빠의 이야기

책/학술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아빠의 이야기

    소재원 장편소설, '균: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

     

    소재원의 장편소설 '균'은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아빠의 이야기이다. 영유아와 임산부 등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지 마트에서 파는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이유로 숨을 거두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가능하게 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기업, 권력을 얻으려 이용하는 정치 등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90일 만이었다. 사랑하는 민지가 세상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 지 정확히 9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흘 뒤, 미안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아내도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가습기 살균제가 딸과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아빠는 알게 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온 사람은 바로 민지 아빠였다. 그래서 민지 아빠는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다.

    한길주는 한 번도 승소해본 적이 없는 변호사다. 법으로는 분명 변호하는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했지만,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가습기 살균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죽었고, 아내가 죽었고, 산소호흡기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지만, 가해자는 없다. 그래서 승률 0%의 변호사는 오늘도 싸워야 한다.

    소설 '균'은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민지 아빠가 승률 0%의 변호사 한길주와 함께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권력욕에 불타는 국회의원 오민석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한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가해 기업은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환경부, 국가기술표준원, 식약청 등 정부 기관들은 책임을 떠넘기기만 한다. 그리고 20살 아들을 둔 기준 아빠, 5살 귀여운 딸을 둔 인영 엄마 등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 또 다른 아빠, 엄마는 진실과 다른 선택을 한다. 또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은 이 사건을 자신의 이해를 기준에 두고 바라보며, 이용하기만 한다. '균'은 이 과정을 통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죽음을 가능하게 한 한국 사회와 정치, 그리고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책 속으로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민지와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온 사람은 바로 나였다. 민지와 아내는 바로 내가 죽. 였. 다.
    - 16쪽, 「프롤로그」 중에서

    “올해 마흔둘이지? 가족도 있지? 자네 부하직원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가족을 위해서라도 곰팡이 균을 막아야지. 작은 균이 급속도로 우리 회사에 퍼지게 되면 퍼진 부위를 잘라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갈 수도 있어. 사회와 기업을 붕괴시키는 균은 반드시 초장에 씨를 말려야 해. 알겠나?”
    - 26~27쪽, 「지금도 우리는 가족입니다」 중에서

    아버지가 고개를 떨궜다. 분을 이기지 못한 한길주가 숨을 씩씩거렸다.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미안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애비가 면목이 없다.”
    - 82쪽, 「자식이 자식에게」 중에서

    민지 아빠는 알고 있었다. 이목의 집중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에 따라서 그들이 마음을 다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뉴스를 보면서 느꼈다. 무슨 문제에 있어 권력에 반항하고 따르지 않는 이들의 억울함은 쉽게 사라졌다.
    - 104쪽, 「경계 없는 삶」 중에서

    “한겨울에 23도에 맞춰진 집에 들어가면 따뜻해. 하지만 한여름에 23도에 맞춰진 집에 들어가면 시원하지. 그 차이야. 사람들의 입장 차이는.”
    - 123쪽, 「가족을 위해서라면」 중에서

    양심이란 어느 그릇에 담는지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물과 같았다. 내가 누구를 대변할 때 가족을 지킬 수 있는지에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는 뻔뻔한 철학이었다.
    - 140쪽, 「삶의 대변인」 중에서

    오민석이 마이크를 들고 힘차게 외쳤다.
    “여당은 기업을 보호하지 말고 국민을 보호하라! 국민을 심판하지 말고 기업을 심판하라! 국민이 쥐여준 권력으로 국민을 짓밟는 행동을 중지하라! 관련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청문회를 실시하라!”
    - 180쪽, 「그들만의 세상」 중에서

    준호 아빠가 마지막 쐬기로 알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을 저 멀리 내몰았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가해자가 없는 선례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겁니다. 항상 그래 왔잖아요. 안 그래요?”
    - 201쪽, 「분노 유발자들」 중에서

    “이기지도 못하는 청문회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게 만들었어요. 그럴싸하게 당하고 나서 또 나는 우리 엄마 아빠들에게 호소해야 해요. 나도 이젠 나만의 목적을 위해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를 이용하고 희생시켜요. 그게 미안해서요.”
    - 231쪽,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 중에서

    “더욱 발전된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원인 불명의 병으로 고통을 겪은 유족들과 피해자분들에게는 사회적 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인 회복을 위해 앞장설 것을 약속드립니다.”
    - 255쪽, 「청문회」 중에서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지랑 민지 엄마는 잊혀요. 그래서 해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해요. 그래야 우리 민지랑 민지 엄마가 잊히지 않으니까.”
    - 268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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