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둘러싸고 내수 위축을 우려하는 업계와 부정·부패 차단을 위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반 시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거나 5만원이 넘는 선물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올해 9월 28일 시행될 예정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당장 농·축·수산업계와 이를 유통하는 소상공인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규제는 내수가 살아날 때 적용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농산물을 가공·판매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14일 "당장 올해 추석이나 내년 설 명절 선물 시장을 값싼 중국산에 잠식당할 것"이라며 "부패 차단도 좋지만 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프랜차이즈 소고기 전문점 사장은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식당이 계속 타격을 입었는데 이젠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게 됐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연구기관인 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국내 외식업 연간 매출의 약 5%인 4조1천5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농협도 성명을 내고 "국내 주요 농축산물의 40%가 명절에 집중 판매되고 과일은 50%, 인삼은 70%, 한우는 98% 이상이 5만원 이상의 선물세트로 판매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법 시행 시 명절에 정을 나누는 미풍양속의 자리를 수입 농축산물 선물세트가 차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일반인 사이에서는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올해 설에 관계부처 공무원에게 갈비세트를 선물했다는 직장인 최모(40)씨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이에서 선물을 주고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상한선을 정해놓으면 선물이나 식사 접대 문화가 다소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른 직장인 이모(32)씨는 "명절에 상품권을 얼마나 돌리느냐에 따라 납품계약이 영향을 받는 게 우리나라의 기업 현실"이라고 비판하며 "값비싼 선물이 내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면 오히려 더 빨리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업계 관계자와 일반인 모두 의문이란 반응이 많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정부부처 주변 한정식집들이 2인 이상 '한상 차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다 2000년대 들어 공무원 행동강령이 강화되면서 1인 기준 3만∼4만원짜리 메뉴를 내놨다"며 "앞으로는 홈쇼핑처럼 끝자리가 900원인 2만9천900원짜리 메뉴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 홍보담당자는 "식사 자리에 배석하지 않은 사람을 참석했다고 속여 '머릿수'를 늘리는 등 법을 회피할 방법은 많다"며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