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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에세이, "나 타투 많은 거 아셔?"…신 여성 어디 갔는가



책/학술

    정새난슬 에세이, "나 타투 많은 거 아셔?"…신 여성 어디 갔는가

    신간 '다 큰 여자'

     

    일러스트레이터, 싱어송라이터 정새난슬의 첫 번째 에세이집 '다 큰 여자'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서른둘에 펑크밴드의 보컬과 결혼, 딸을 낳았으며 서른다섯에 이혼했다.

    이 에세이집은 서른 중반의 몸만 커버린 여자로, 어느 누구보다 아팠던 시간과 부족했던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감한 고백이자 우울하고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담, 그녀처럼 남들의 시선에 정의되고 싶지 않은 이 시대 여자들에게 보내는 독려이기도 하다.

    ‘문제적 여자의 파란만장 멘탈 성장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얼마나 ‘불량’하고 ‘이상한’ 여자인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온 몸에 타투(문신)를 새기게 된 과정과 이로 인해 주변사람들과 겪게 된 사연들이 흥미롭다.

    시간이 흐르자 부모님도 타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주변 뮤지션들이 타투 받은 것고 보도, 내가 부지런히 타투의 역사나 의미에 대한 글을 찾자 매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해'보다는 '타협'에 가깝다고 느꼈지만 나름 큰 변화였다. 내 문신들이 젊은 날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 나라는 인물의 정체성에 깊숙이 관련됐음을 포기하지 않고 설명한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내가 선택한 그림들은 몸 위에서 수를 늘려갔고 나는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않는다. 내 선택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당시 내 머릿속의 나는 여전사였으며, 신여성 중에 제일가는 신여성이었다. 전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준비하기 전까지, 나는 나 혼자 깨인 의식을 가진 양 으스대며 살 수 있었다.

    참 깜찍한 착각이었다. 전남편이 그의 부모님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을 알고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거였다.

    "나 타투 많은 거 아셔? 말했어?"

    신여성 어디 갔는가…….

    우리 가족에게 그토록 당당하던 나도 남편 될 사람의 가족에게는 무방비 상태였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그를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함께하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우리가 타투를 한 이유나 그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거나 흡수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자식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분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허락'보다 '인정'이었다.

    (중략)

    이혼한 지금, 전남편의 가족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애달프다. 우리의 결합을 순수하게 축복해준 분들. 결혼을 결심했던 마음 그대로, 사랑했던 날들의 맹세를 지키며 전남편과 살아갔더라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문화적인 다양성을 추구한다던 두 사람이 내면의 다름을 다루지 못하고 헤어져 가족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결혼으로 깨닫게 된 것들이 있듯이 이혼으로 얻은 것들이 있기에 과거는 탈탈 털어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전남편이 결혼반지 대신 타투를 해주었다. 그 타투 옆에 새로운 타투들을 새겨 넣었다. 한때 결혼한 여성임을 상징했던 다이아몬드 타투는 이제 손가락 타투들 중 하나로 남았다. 멋대로 번지고 군데군데 지워진 손 위의 문신들을 보며, 나는 '참 나답다'란 생각을 한다. (124~128쪽)

    이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자신이 통과한 삶과 욕망, 상처와 흉터에 대해 솔직하고자 한 여성이 써내려간 내면 일기다.

    지독했던 산후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저자는 “내가 힘들었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감정이 정상적이며 많은 이들이 겪는 고통이라고 말해주기만 했어도 나는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저자는 우울과 불안, 슬픔과 불행의 단편을 지나고 있는 독자들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기 꺼리는 금기들을 깨려고 자살 시도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금기가 돼선 안 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마주치기 싫은 문제, 고통, 우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가 도움을 청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기 위한 일종의 ‘치유 프로젝트’로서의 음악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박은옥) 같은 낭랑한 목소리도, 아빠(정태춘) 같은 작사 작곡 능력도 없다”며 일찌감치 가수 생각을 접은 저자가 서른 넘은 나이에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내기까지의 과정과, 책과 동시 발매되는 동명의 앨범 속 11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다.

    딸에게

    나는 아직 내 딸을 잘 모르고,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다음 이야기를 들어야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이렇게 갈 것이다. 조금씩 더 알면서, 이해하면서…….

    그리고 나는 딸도 나를 잘 모른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새난슬은 내게 매력적인 딸이고, 그것이면 충분하니까.

    그는 에세이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때로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세계에 관한 그의 특별한 조감과 표현법,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그만의 독특한 예술적 아우라……. 그것들도 나는 사랑한다. (아버지, 정태춘)

    정새난슬 지음/콘텐츠하다/280쪽/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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