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고 다시 일어서자고요' 한화는 올 시즌 주축들과 김성근 감독 등 부상 악령 속에 최하위의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 15일 KIA 원정에서는 4번 타자 김태균(왼쪽)의 침묵 속에 마무리 정우람마저 뼈아픈 실점을 기록하며 4연패를 끊지 못했다.(자료사진=한화 이글스)
가차없이 단행되는 퀵후크와 득달같이 이어지는 필승조 총동원.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애처로운 패배뿐이다.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는 악순환은 끝을 모른다.
한화는 15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와 원정에서 7-8 패배를 안았다. 최근 4연패, 10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벌써 네 번이나 미끄러졌다. 9승26패, 승률 2할5푼7리로 여전히 최하위를 면하지 못했다.
최근 10경기 1승 9패, 승률이 1할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2연속 주간 승률이 최하위다. 4월 말에서 5월 초 4승1패로 반등을 하나 싶었지만 이후 1승5패, 지난주 1승4패로 허덕였다.
한화의 최근 행보는 백약이 무효하다. 애타게 기다렸던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가 왔지만 2경기에서 모두 졌다. 연패 스토퍼, 연승 도우미가 돼야 할 로저스마저 2연패를 안은 한화는 최근 알렉스 마에스트리도 2군으로 떨어졌다. 필승조는 연이은 등판에 구위가 벌써 저하된 양상이다.
'고마워요, 한화' KIA 선수들이 15일 한화와 홈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뒤 이날 은퇴식에 나선 서재응을 헹가래하며 기뻐하는 모습.(광주=KIA)
15일 경기는 최근 한화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경기였다. 이날 한화는 여느 경기처럼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선발 심수창이 2이닝 4실점하자 송창식-권혁-윤규진 등 필승조를 줄줄이 투입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이날도 진다면 한화는 4연패로 한 주를 마감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날 서재응-최희섭 합동 은퇴식을 치른 KIA도 승리가 간절했지만 한화는 남의 집 사정을 봐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화는 연패를 끊지 못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했지만 끝내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막판까지 치열한 승부를 연출하며 KIA가 거둔 극적 승리의 기쁨을 더해줬다. 결과적으로 들러리 역할을 충실하게 한 셈이 됐다.
무엇보다 이날은 한화가 겨우내 거액을 쏟아부었던 선수들의 플레이가 아쉬웠다. 나란히 4년 84억 원에 계약한 '168억 듀오'다. 4번 타자 김태균과 마무리 정우람이다.
▲김태균, 데뷔 후 최악 슬럼프이날 김태균은 절호의 기회에서 잇따라 무기력한 모습으로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한번만 터졌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던 터라 4번의 침묵이 더 뼈아팠다.
1회 1사 1, 2루 선취점 찬스에서 김태균은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KIA 선발 최영필의 한복판 변화구를 놓쳤다. 풀카운트인 만큼 2루로 뛰었던 1루 주자 윌린 로사리오마저 횡사하면서 한화는 이닝을 마쳤다. 이어 1회말 KIA 김주찬의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내주며 끌려갔다.
6회가 더 아쉬웠다. 1-6으로 뒤지던 한화는 하주석, 정근우의 2타점 적시타로 5-6,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기에 1사 1, 2루 기회도 이어졌다. 동점 내지는 역전을 이뤄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올 호기였다. 그러나 김태균이 2루수 병살타를 치며 추격 흐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이날 김태균은 5타수 무안타 2삼진에 머물렀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불운도 겹쳤다. 이날 한화는 장단 18안타를 치고도 9안타의 KIA에 졌다. 응집력이 한참 떨어진 데는 김태균의 침묵도 한몫했다.
'이 웃음, 언제 다시 볼까' 한화 김태균(가운데)이 지난달 28일 KIA와 홈 경기에서 연장 끝내기 승리를 거둔 뒤 이용규(왼쪽), 정근우 등 동료들과 기뻐하는 모습.(자료사진=한화)
비단 이날뿐 아니라 김태균은 올해 프로 생활 중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 타율 2할6푼8리 1홈런 15타점에 머물러 있다. 11년 연속 4할을 넘긴 출루율도 3할7푼9리다. 장타율은 3할4푼6리, 개인 통산 기록인 5할2푼5리에 한참 못 미친다.
물론 김태균은 코칭스태프 지시에 따른 체중 감량 등 말 못할 고충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홈런 가뭄은 부족해진 힘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또 주장을 맡았던 지난해도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김태균의 침묵은 아쉽기만 하다. 5년 연속 최고 연봉 선수인 김태균인 까닭이다. 2012년부터 4년 연속 15억 원을 받은 김태균은 올해 16억 원 연봉으로 리그 톱을 찍었다.
그런 만큼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김태균의 슬럼프는 팀 침체와 맞물려 더욱 부각되고 있다. 최근에는 결정적 수비 실책까지 나와 비판의 수위가 더 높아지고 있다. 비등하는 비난은 고액연봉자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극복해야 프로다.
▲'정우람, 너마저' 최후의 보루, 뼈아픈 실점지난 스토브리그에서 불펜 최고액을 찍은 정우람은 올 시즌 한화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난 8일까지 13경기 1승 3세이브, 평균자책점(ERA) 0.96의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1일 NC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15일 KIA전에서는 적잖게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정우람은 5-6으로 추격한 6회말 2사 만루에 등판했다. 첫 타자 김호령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아 승계 주자가 득점했다. 또 6-7, 다시 1점 차로 쫓아간 8회는 나지완에게 1점 홈런을 내줬다. 한화가 9회 1점을 보태 7-8까지 추격한 점을 감안하면 뼈저린 실점이었다.
다만 정우람을 탓하기도 어렵다. 팀의 마무리이면서도 6회 등판하는 비정상적인 팀 상황인 탓이 더 크다. 이날 정우람은 2⅓이닝을 소화했다. 선발 심수창보다 많은 이닝이다. 통상 1경기에 1이닝 정도를 던지는 마무리의 범위를 넘어섰다.
만약 정상적인 등판이었다면 정우람은 1⅓이닝을 던져 8회 마운드를 넘겼어야 했을 터. 그러나 워낙 승리에 목마른 한화라 8회도 등판했고, 나지완에게 홈런을 맞았다.
물론 11일 NC전 이후 4일 만의 등판이고, 16일이 휴식일이라 아예 불가능한 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우람은 결과적으로 이날 KIA 승리의 보조자 역할을 한 모양새가 됐다.
'훈련, 열심히 했습니다' 올 시즌 한화의 든든한 마무리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정우람. 그러나 15일 KIA전에서 아쉬운 실점으로 팀의 4연패를 지켜봐야 했다.(자료사진=한화)
한화는 최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김성근 감독의 공백 속에 일정을 치르고 있다. 김 감독이 자리를 비운 사이 1승8패다.
시즌 초반 선발진 부상까지 꼬여도 지독하게 꼬였다. 여기에 "초조했다"고 인정한 김 감독의 내일이 없는 경기 운용까지 더해져 상황이 더 악화한 모양새다.
한화는 올 시즌 최고 연봉 구단이다. 사상 최초로 한 시즌 100억 원을 넘었다. 102억1000만 원으로 넥센의 2.5배 수준이다. 하지만 15일까지 넥센이 거둔 18승(17패)의 딱 절반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화는 15일 KIA전뿐만 아니라 한 시즌 전체를 통틀어 KBO 역사상 가장 비싼 들러리가 될지 모른다. 주변인이 아닌 주역이 되기 위한 변화가 시급한 한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