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에서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8)의 라틴어 시가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되었다. '카르데 디엠'과 '소박함의 지혜' 두 권으로 번역된 호라티우스 시집은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제 1권과 제 2권으로 자리잡았다.
운명은 잔인한 사건에 즐거워하며우왕좌왕 장난을 멈추지않으며 때로나에게, 때로 남에게 호의를 베풀어명예를 이리저리 옮겨놓는다.나는 한결같음을 칭송한다. 운명이날개를 펴면, 내게 허락되었던 것을도로 내주고, 용기로 나를 단속하여지참금 없는 가난을 받아들이겠다.-호라티우스, '소박함의 지혜'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5권(새로이 하거나 새로 꾸밈)판이 발간되었다. 리뉴얼이 주는 어감 때문에 표지 디자인과 글자꼴을 바꾼 것이려니 했는데, 새로 번역된 시와 최초 한글 번역이 다수이다. 국내에 최초 번역된 시는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소박함의 지혜'를 필두로 중세 말기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 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헤밍웨이의 '거물들의 춤' 등 5권이다.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경우 한국에서 인기 있는 소설가이지만, 미국에서는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시인 가운데 하나이다. 문학사에서 소설가보다 시인으로서 더 평가를 받을 작가이기에 대표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검은 과부 거미한테서 탈출하기란예술에 버금가는 대단한 기적그녀는 거미줄을 만들어 가며당신을 천천히 끌어당기다가당신을 품에 안을 테고기분 내킬 때당신을 죽일 거야(……)그녀는 내가 그리울 거야내 사랑이 아니라내 피 맛이—찰스 부코스키,「탈출」에서
시대는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요구하고는우리의 혀를 잘라 버렸다.시대는 우리에게 거침없으라고 요구하고는거짓말을 늘어놓았다.시대는 우리에게 춤추라고 요구하고는우리를 강철 바지에 욱여 넣었다.그렇게 시대는 기어이 뜻대로요구한 개짓거리를 손에 넣었다.—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거물들의 춤',「시대는 요구했다」에서
생각한 걸 입 밖에 내지 마시게생각한 뒤에 말하지도 말고자칫 먹물로 취급되기 십상이니—어니스트 헤밍웨이 '거물들의 춤',「현대 폴로니어스의 조언」에서
국내 최초 번역은 아니지만 기존에 발간된 민음사 세계시인선 63권에 포함되지 않은 시집 중 새로 발간된 것이 4권이다. 그 4권은 '욥의 노래', 김수영의 '꽃잎', 브레히트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백석의 '사슴'이다. 9권이 최초 번역이거나 새로 발간된 시집인 셈이다.
'욥의 노래'는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하는 한 인간의 분투를 보여 주는 히브리 시문학의 정이다. 우리말 성경은 산문형식으로 의역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욥의 노래'는 히브리어 운문, 최초 번역본인 그리스어, 라틴어 판본과 비교 번역하여 히브리어 운문의 운율을 살렸다.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자네가 이 지경을 당하자 기가 꺾이고매를 좀 맞았다고 이렇듯 허둥대다니, 될 말인가?자신만만하던 자네의 경건은 어찌 되었고자네의 희망이던 그 흠없는 생활은 어찌 되었는가?곰곰이 생각해 보게.-공동번역 성서 욥기 4장 5~7절
이제 자네가 당하니 싫증 내고, 막상 자네가 맞으니떠는구나.자네 신은 경외에 있고 자네 바람은 정도(淨道)에 있지 않았는가?제발 생각해 보게, 죄 없이 망한 자 누구던가?-민음사 김동훈 번역 '욥의 노래' 4장 5~7절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는 국내에 주로 마르크스주의 극작가로만 알려진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쓴 '가정 기도서'(대부분 국내 초역)를 소개했다.
1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 개천에서넓은 강으로 떠내려가고 있을 때하늘의 오팔이 매우 근사하게 그녀의 몸을 비추었다.마치 죽은 몸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2해조류와 수초들이 그녀에게 엉겨 붙어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물고기들은 그녀의 다리 옆에서 차갑게 헤엄쳤다.식물과 동물들이 그녀의 마지막 여행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3하늘은 저녁이면 연기처럼 어두워지고밤에는 별빛만 떠다녔지만새벽이면 하늘은 밝아왔다. 아직 그녀를 위한아침과 저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4그녀의 하얀 몸이 물에서 썩고 있을 때신이 점차 그녀를 망각하는 일이 발생했다.천천히,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손,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잊었다그녀는 강물 속의 썩은 고기들처럼 썩은 고기가 되었다.—브레히트,「물에 빠져 죽은 소녀에 관하여」에서
김수영(1921-1968) 시인은 국내 참여시인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순수한 문학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그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김수영이 시작 활동 초기부터 가장 많이 사용해 온 꽃의 이미지와 꽃에 대한 단어(112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선집을 선보였다.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김수영, '꽃잎' 부분
또한 '사슴'에는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시들을 포함시켰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백석(1912-1996),「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역자가 바뀐 시집도 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기존 김붕구에서 황현산 번역으로 새로 나왔고, 에드거 앨런 포의 '애너밸 리'는 이전 정규웅 번역에서 김경주 번역으로 새옷을 입었다.
안개 낀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권태와 망망한 근심걱정에 등 돌리고,복되도다, 빛나고 청명한 벌판을 향해힘찬 날개로 날아갈 수 있는 자,생각이 종달새처럼, 하늘을 향해아침마다 자유 비상을 하는 자,—삶 위로 날며, 꽃들과 말 없는 것들의 말을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 복되도다!—보들레르(1821-1867),「상승」(황현산 번역)
마찬가지로, 나를 그처럼 잔혹하게 거부하여,나에게서 즐거움을 금하고,또 일체의 쾌락을 쫓아낸,내가 말했던 그 여인에게는핏기 없고 가련한, 죽어 생기 없는 내 심장을유물함에 넣어 남긴다.알면서도 그녀 내게 이러한 불행을 안겨 주었지만,신이여, 그녀의 죄를 사해 주소서!-프랑수아 비용(1431-1463)
빨리! 다른 삶들도 있는가? 부(富) 속에서의 잠은 불가능하다. 부는 언제나 실로 공중(公衆)의속성이었다. 신적인 사랑만이 과학의 열쇠를 수여한다. 나는 자연이 선의의 광경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상이여, 이상이여, 오류여, 안녕.—랭보(1854-1891) '지옥에서 보낸 한 철'「나쁜 피」에서
이제, 일을 하는 기나긴 저녁나절, 아름다운 겨울 일을 하는 저녁나절, 나는 내 파이프를 찾았다.태양의 푸른 잎사귀들과 모슬린 비단이 빛을 던지는 과거 속으로 여름의 모든 천진스러운 기쁨과 함께 궐련 담배는 던져 버리고, 방해받지 않고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며 보다 더 잘 일하고 싶은 진지한 사람이 되찾은 나의 이 심각한 파이프: 그러나 나는 이 방치되었던 물건이 준비하고 있었던 뜻밖의 놀라움은 예기치 못했다. 처음 한 모금을 빨아들이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감동하여 내가 써야 할 대작의 책들은 까맣게 잊고, 이제 되돌아오는 지난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 '목신의 오후'「파이프」에서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1917-1945)
가슴은 우선 즐겁기를 바라지—그리곤—고통의 회피를—그리곤 기껏—아픔을 마비시키는몇 알 진통제들을—그리곤—잠드는 것을—그리곤—심판관의 뜻이라면죽음의 특권을—- 에밀리 디킨슨(1917-1945)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출판사 제공 홍보 문구1 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
: 로마 라틴어 서정시 국내 최초 완역!
2 호라티우스, 『소박함의 지혜』
:서양 문학의 거장 시인들이 숭배하는 시성 국내 초역!
3 『욥의 노래』
:히브리 시문학의 정수! 시인 블레이크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비극의 세계
4 프랑수아 비용, 『유언의 노래』
:중세 암흑기 대표 작가, 그러나 지극히 현대적인 시인 비용 국내 최초 소개!
5 김수영, 『꽃잎』
:참여시인을 넘어 한국 모더니스트로서의 문학적 가치 재발견!
6 에드거 앨런 포, 『애너벨 리』
:김경주 시인의 새로운 번역! 도레의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고딕 낭만의 세계
7 보들레르, 『악의 꽃』
: 우리 문학계 스타 어른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참신한 번역!
8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한국 불문학의 전설 고 김현 선생의 살아 있는 번역!
9 말라르메, 『목신의 오후』
: 한국 불문학의 거장 김화영 교수의 믿을 수 있는 번역!
10 윤동주, 『별 헤는 밤』
:한국 문학의 가장 순수한 영혼의 고뇌! 윤동주 자필 원고 수록
11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고독과 슬픔의 시인, 간결한 문체와 모던한 감수성의 결합!
12 부코스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현대 시인 부코스키 시집 국내 초역!
13 브레히트,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
:시인이자 니체주의자로서의 브레히트 정수가 담긴 『가정기도서』 국내 초역 다수
14 헤밍웨이, 『거물들의 춤』
:특유의 생략적 글쓰기를 잘 보여 주는 헤밍웨이 시집 국내 초역!
15 백석, 『사슴』
: 백석 평전을 쓴 안도현 시인이 백석의 정수만을 뽑아 전하는 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