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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말아요. 살아가요"…한강 신작소설 '흰'



책/학술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한강 신작소설 '흰'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이 24일 오전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소설가 한강이 신작 '흰'을 들고 나타났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그가 새로 내놓은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채식주의자'가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신작은 어떤 작품일까 궁금증을 일으켰다. 2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신작 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강 작가는 충분히 혹은 절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제를 따라가며 글쓰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맨커부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를 완성한게 11년 전이다. 저는 이제 그 소설에서 많이 걸어나왔다. 그 뒤로 생각들, 질문들을 계속 이어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한 작품 한 작품 써왔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그 다음에 쓴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는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 소설의 끝에서는 불속을 배로 기어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 다음 장편 '희랍어 시간'은 정말 살아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가능할 것인가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인간의 연하고 섬세한 자리를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소설이 '소년이 온다'이다. 압도적인 폭력의 상황에서 존엄을 향해 나아가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쓰면서 제 자신이 변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었을까.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지금의 신작 '흰'이다. 2014년 가을에 제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늦여름부터 겨울까지 레지던스에 머물렀다. 1944년 폭격으로 거의 모두 파괴되었던 도시를 재건했던 역사를 접하면서, 그 도시를 닮은 어떤 사람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쩌면 아기로 잠시 잠깐 머물렀다가 세상을 떠난 저희 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히 제가 삶의 어떤 부분을 줄 수 있다면 아마 흰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럽힐래야 더럽힐 수 없는 생명, 밝음, 투명함 그런 것을 주고 싶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왜 자꾸만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까?(중략) 고립이 완고해질 수록 뜻밖의 기억들이 생생해진다. 압도하듯 무거워진다.지난여름 내가 도망치듯 찾아든 곳이 지구 반대편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내부 한가운데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 이 도시는 새벽안개에 잠겨 있다.
    -'안개'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그날이었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 그래서 아직 새것인 사람 어떤 기둥, 어떤 늙은 석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아, 그 위에 덧쌓은 선명한 새것과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지게 된 사람.
    -'흰 도시'

    신작 소설 '흰'은 안개, 흰 도시를 비롯해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들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65개의 흰 것의 표상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서사가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진다. 그러다가 51번째 '경계'에 이르러 아주 어려서 죽은 아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자랐다.

    칠삭둥이로 그녀는 태어났다. 스물세 살 난 어머니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산통이 왔다. (중략) 그나마 언젠가부터는 흔들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이 되기 전 마침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첫 젖이 나와 아기의 입술에 물려봤을 때, 놀랍게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의식 없는 상태로 아기가 젖을 물고 조금씩 삼켰다. 점점 더 삼켰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넘어오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모른 채.
    -'경계'

    끝내 그 아이는 숨을 거둔다.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었다. 강보가 관이 되었다.
    -'수의'에서

    기억 속의 언니는 이제 더 이상 슬픔의 멍울로만 남아 있지 않다.

    언니, 라고 부르는 발음은 아기들의 아랫니를 닮았다. 내 아이의 연한 잇몸에서 돋아나던, 첫 잎 같은 두 개의 조그만 이.
    이제 내 아이는 자라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열세 살 그 아이의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 준 뒤, 고른 숨소리에 잠시 귀기울이다 텅빈 책상으로 돌아온다.
    -'아랫니'

    죽은 이와의 작별은 산자의 살아냄으로 힘을 얻는다.

    죽지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작별'

    이 소설은 흰 세계 속에서 죽은 자와 산 자, 나와 너,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진다.

    당신은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고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중략)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모든 흰'

    이 책은 소설이지만 형식이 특이하다. 작가는 이 책을 쓰고 나서 다듬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산문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그런 조금은 이상한 책이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려서 다듬었다."

    한강 작가는 영상작가 차미혜와 공동으로 전시회를 갖는다. '소실점'전에서 한강 작가는 4개의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다. "배내옷", "돌·소금·얼음", "밀봉", "걸음"에서 한강의 행위는 이전의 시간과 존재를 안고 나아가려는 제의적 의미로 표현된다. 작가는 몸을 움직여 지워진 시간들과 마주한다.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한 옷을 만들고, 씻고, 다하지 못한 말들을 가두고, 시간을 견디며 걷는다. 한강의 행위는 언니(태어나자마자 죽은)를 만나고 보내는 것으로, 사라짐과 남겨짐, 사건의 이후와 이전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과의 깊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렇게 드러난 의미는 다시 그 행위로 인해 지워진다.
    한강 작가는 이 전시에 대해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게 굉장히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소실.점'전은 6월 3일부터 6월 26일까지 오뉴월· 이주헌 갤러리(서울 성북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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