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금리인하에 부정적이었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31일 공개된 금통위 5월 회의록에서 일부 위원들은 조만간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분위기가 반영돼 6~7월 중 기준금리가 한차례 더 인하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6~7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은 딜레마에 빠졌다.
미약한 경기회복세에 구조조정 변수까지 감안하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자본 유출 우려가 있고, 특히 중국 등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금융안정성 문제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높아진 금리인하 기대감그동안 지지부진한 경기 회복세에다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용경색, 대규모 실업 등으로 인한 실물경제의 파장을 완충하기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주열 총재도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급되는 실물경제, 금융시장의 영향은 금리를 결정할 때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31일 공개된 5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국내외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번에는 아니더라도 조속한 시일 내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경제의 저물가,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와 한국은행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경기 대응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외 위험 요인에 대한 효율적인 대비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위원도 신축적인 금리조정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실상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금리 인하론에 힘을 실었다. KDI는 지난 24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낮추면서 경기하방압력을 완충하기 위한 금리인하 필요성을 제기했다.
◇ 미 금리인상 가시화그러나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최근 6~7월 금리인상 신호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옐런 연준의장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과거에도 말했지만 금리를 점진적이고 조심스럽게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상 시점을 '수개월 내(in coming months)'로 못 박았다.
앞서 공개된 지난달 FOMC(미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록에는 대부분의 위원들이 "양호한 경제지표가 이어지면 오는 6월 연방기금금리 목표치를 올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의록 공개 이후 미국이 6~7월 중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급격히 확산됐다.
◇ 한은의 딜레마미국의 금리인상 가시화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달러강세와 함께 한미간 금리격차가 줄어들어 자본유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 문제까지 겹치면 그 파장이 훨씬 커질 수도 있다.
중국금융시장의 흐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투명성이 부족한 중국경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미 금리인상에 어떻게 반응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실제 미극의 금리인상이 임박해지면서 안정세를 찾았던 세계금융시장은 또 다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 강세 속에 중국 위안화는 한 달 새 1.7% 가까이 오르고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지난 1월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금융시장도 원·달러 환율이 1190원대로 치솟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 금리인상이 가시화 되면서 채권 시장에서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지난 30일 기준금리(연1.5%)를 넘어섰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의미다.
당면한 구조조정 지원과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논리와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사이에서 한은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