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사들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놓고 정면충돌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이 소멸시효 2년과 상관없이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에 대한 지급 이행 계획서를 지난달 말까지 제출할 것을 14개 생명보험사들에게 주문했지만 대부분의 보험사가 지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
보험사들이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은 2465억원으로, 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2003억원에 이른다.
보험사는 소멸시효가 이미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이 이르면 한두 달 안에 나오는데 법률적 영역에 대해 무조건 지급하라니 난감한 상황”이라며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면 이후 분쟁의 소지가 있어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경영 판단의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도 중요하다”며 “금감원 제재가 있더라도 객관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의사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지급 결정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신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DGB생명 등 3개 보험사는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 사고에 대해서도 해당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보험사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금감원의 권고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중소보험사 관계자도 “금감원의 입장이 강경하기 때문에 지급하려고 하는 회사가 더 나올 수 있다”며 “보험사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을 같이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감원은 지급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귀책사유가 있는데 시간끌겠다는 것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얘긴데 소멸시효 운운하는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험소비자단체들도 "보험사의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경과' 주장은 당초부터 억지"라며 "당장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전 세계 어느 보험사도 사망보험금을 일반사망과 재해사망으로 구분해 청구하지 않는다"며 "보험사들이 재해사망보험금은 소멸시효 내에 청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