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독재·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진 26년 군사독재의 악순환을 끊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6월민주항쟁이죠. 10일로 6월민주항쟁이 29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8일과 9일 '2016 민주주의 국제연대 세미나'를 열어 이를 기념했죠. 6월민주항쟁으로 얻어낸 우리네 민주주의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 실마리가 될 세미나의 주요 발표 내용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전봉준(1855∼1895), 장준하(1918~1975), 전태일(1948~1970)
"국민국가를 건설한 모든 나라는 화폐의 인물을 통해서건, 광장의 동상을 통해서건, 기념관을 통해서건, 그리고 박물관을 통해서건 민주주의 가치와 정신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테마를 구성해낸다. 아직 한국에는 화폐에 합의된 근대의 지도자가 없다. 신사임당, 퇴계 이황 그리고 세종대왕 모두가 전근대 인물이다. 미완의 근대가 화폐의 인물을 통해 상징되고 있다. 6월 항쟁의 거리를 가득 메운 점으로서의 군중은, 그리고 시민은 그 자체로 민주화의 주인공들이다. 때로 '이 거리의 집단은 화폐에 등장할 수 없는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동학 때도 그리고 3·1운동 때도 4·19 때도 5·18 때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개인의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은 것을 오히려 안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지구화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기조발제를 맡은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왜 1987년이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에 대해 그는 "세계 체계의 변동이 주는 기회를 포착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1980년 후반은 지구촌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월러스타인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세계 체계로 한데 얽혀 있다. 세계 체계에는 중심국도 있고 반주변국도 있고 주변국도 있다. 이 삼중 모델에서 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체계의 흐름에 대한 계기적 포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은 세계 체계의 변화의 흐름과 내부적인 민주화운동의 동력이 시너지를 내는 시기였다고 해석될 수 있다. 외부적 요인을 강조하면 수동적이 되고 내부적 요인만 강조하면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세계 체계로 편입된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근대 질서에서는 외적 변화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박정희 사후) '서울의 봄'이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 역시 내부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외적 조건이 열리지 않은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분히 수단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며 "그 이유 중 하나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데모크라시가 '민치'로 번역되지 않고 '민주주의'로 번역되면서 하나의 주의·주장, 이데올로기를 뜻하게 됐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선택 사안이 됐다. 개념의 이해는 현실을 규정한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함으로써 민주주의는 다른 무엇을 위해 양도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의 번역은 일본을 통한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오역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통용되어 민주주의는 하나의 '주의'로 인식되게 됐다."
이 교수는 "그 결과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의 이름으로, 한국적 전통의 이름으로 유보돼도 좋은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며 "민주주의를 수입해 온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유보하고자 하는 명분으로 민주주의가 서구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점이 활용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식으로 전통과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앞에 수식어를 붙이거나 유보 가능한 것으로 본다. 비서구 지역의 민주주의 발전에서 가장 큰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선으로 정립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민주 발전의 신흥국에서는 흔히 전통을 앞세워, 또는 경제 발전을 앞세워, 때로는 안보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
◇ "민주주의는 경제·안보 등을 위해 양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이한열이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제29주기 이한열 동판 제막식' 종료 후 재학생들이 영정과 대형 초상화를 들고 한열동산으로 향하고 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쓰러진 사건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이 교수는 "여당과 야당의 대립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설정하면서 민주적 가치가 정쟁의 차원으로 떨어지게 되고,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용어도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주의는 헌법에 나와 있는 국가의 정체성이고 그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합의하고 있는 인권선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산업화는 그에 비해 경제 발전의 한 수단이다. 경제 발전에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민주화를 유보할 수 없다는 것을 개념적 차원에서 분명히 할 때"라는 것이다.
그는 "비서구 지역에서는 근대화를 '수입하고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식했다. 따라서 근대화에 대한 이해가 선택적이다. 경제적 근대화는 수용하지만 정치적 근대화인 민주화는 선택적이라고 생각하는 관료적·권위주의적 국가가 용인됐다"며 "법조문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인권 조항이 법으로만 존재하고 헌법 조문에 있는 '민주화' '공화'에 대한 가치가 내면화 되지 않게 된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적 차원에서만 이해되는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식민지 문제, 냉전 시대의 문제, 탈냉전 시대의 문제가 누적돼 자리 잡고 있다. 지나가야 할 시대의 사회적 과제가 지나가지 않고 존재하는 다른 의미의 '지체'가 누적된다. 이러한 지체로 인해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식민지 시대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 냉전시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 그리고 탈냉전 시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 서로 통합 되지 못한 채 파편화된다. 이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개념화 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식민주의라는, 연대기적으로 지나간 시기에 대응하는 과제가 적시에 해소되지 못한 채 새로운 과제가 밀려든다는 점이다. 냉전의 문제에 대해서도 한반도는 유일한 냉전적 분단 상태로 남아 '탈냉전'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실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구촌에 합의된 가치는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더 많은 성찰과 가치 확산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서구 민주주의 자체도 양극화, 실업 증대 등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문제를 관리해야 할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도 없고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도 없다. 대중의 아픈 데를 미리 알아주는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답을 아래로부터 찾는다. (중략) 이제는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나 비서구 사회의 저항적 민주화 운동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민주정치가 다 같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호 교류 협력을 통한 민주주의 재충전의 필요성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높아지고 있다."
이 점에서 이 교수는 '중간자로서 한국의 역할'에 주목했다.
"한국은 저항적 민주화 운동을 거쳐 협치 차원까지 경험했다. 노동력 수출국에서 자본 수출국으로의 변화도 경험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의 경험도 겪었다. 월러스타인의 표현대로 한다면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이행한 경험을 거쳤고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압축적 성장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경험적 특수성은 비서구 지역 민주화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점에 있다."
그는 "한국이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입로로서 민주주의 국제협력 사업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은 △민주화 운동사 교류 △민주시민교육 토대 구축·교재 개발 △시민운동의 성과 교환·시민운동 단체 교류 △거버넌스 협치 모델 비교 등으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