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지켜보는 고려대 학생들 (사진=송영훈 기자)
고려대학교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사건이 알려지며 고려대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교내 양성평등센터나 성평등지킴이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남성들의 오래된 집단의식과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커뮤니티 문화가 대학사회에 보편화 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고대 교내사회 뒤숭숭 "소라넷급 범죄"이번 성희롱 사건을 폭로한 대자보가 게시된 지난 13일 오후 6시부터 고려대학교 정경관 후문엔 많은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학생은 "매우 불편하고 화가 난다"며 "소라넷 급의 범죄수준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이어 "이것을 단순 말장난이 아닌 여성혐오라고 생각하고 학생사회의 자정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조단원(24·여) 씨는 "자신의 과에서도 비슷한 단톡방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나 성희롱 발언이 교내사회에 만연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우리 주변의 문제라고 인식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남학생들도 씁쓸하고 한편으로 부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심리학과 2학년 양재혁(20) 씨는 "터질게 터졌다"며 "사실 남자들 사이에선 저런 이야기를 그저 웃음거리나 편한 대화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 "남성·일베 문화가 학생사회에 보편화된 결과"이처럼 젊은층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조롱과 혐오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 남성의 집단의식과 일베문화가 보편화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채팅방 성희롱 사건을 "남성들이 친해지기 위해서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오래된 집단의식과 함께 일베 문화가 대학사회로 유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노 교수는 "중·고등학교 때 일베 문화를 접한 학생들이 이젠 대학생이 됐다"며 "여성을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통해서 남성끼리 친해지는 일베 문화가 학생사회에 보편화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역시 "남성들이 집단문화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여성 희롱이나 혐오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러한 행위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여성혐오와 차별, 폭력을 낳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 "제대로 된 성·인권교육 선행돼야"전문가들은 사실 학생사회를 넘어 우리사회에 만연한 그릇된 성 의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과 인권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경 소장은 "이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학생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이나 인권교육을 받기나 했을지 모르겠다"며 "가정이나 학교서 입시 외에는 제대로 된 인권 교육이 없던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뻔한 얘기들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면 결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명우 교수는 더 나아가 "성인이기에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사적 공간이 아닌 준공적공간인 SNS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성인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고려대학교 교내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학교 측에서도 즉각적인 조사에 들어갔다"며 "엄중히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학교 당국과 교내 조사기관인 양성평등센터의 조사결과를 통해 해당 학생들에 대한 징계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