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작, '빗방울이 후두둑'이 출간되었다. 그간 불안, 실패, 외로움 같은 정서를 어린이책 안에서 소신껏 다뤄온 작가 전미화는 이번 작품으로 독자층을 끌어올려 어른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을 냈다. 사는 게 쉽지 않은 요즘,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여름 소나기에 빗대어 표현한 이 작품은 마치 시원스레 해갈하는 청량음료처럼 차갑고 맑은 기운을 훅 하고 불어넣는다.
어느 날, 바람이 분다. 가로수가 기우뚱, 빗방울이 후두둑. 우산을 쫙! 펼쳤지만 우산이 뒤집혔다. 온몸에 힘을 단단히 주고 뒤집힌 우산을 돌려놓아 보려는데 때마침 차 한 대가 씽 달려와, ‘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우산대는 부러지고 먹구름은 몰려오고 모두들 달리기에 나도 달리지만, 나란 인간은 그만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 말았다. 창피스러워 얼굴은 빨개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폭탄이 쏟아진다. 나에게는 비를 피할 멀쩡한 우산이 없다. 어째야 할까?
그림책의 전문을 늘여 놓아도 다섯 줄이 채 넘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글이 굵직한 장맛비를 시원하게 맞아 버린, 어느 운 나쁜 날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시원시원한 그림이 글의 리듬을 탄다. 밑그림 없이, 과감한 붓질과 전 장면 풀 컬러, 숨 막힐 듯 큼직한 앵글로 담아낸 형태감이 설명 한 줄 보태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해방감을 준다.
여기에 큰비가 올 줄을 짐작은 했으나, 그리 튼튼하지 않은 우산과 바람에 날리는 치마, 하이힐을 신고 거리로 나온, 다소 허술한 ‘나’가 연출하는 웃픈 상황이 마치 1인극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묘하게 감정을 휘저어 놓는다. 한참을 웃다 보면, 작품 속 너의 1인극이지만 나에게도 해당되는 1인극임이 가슴으로부터 느껴진다.
작품 속 인물은 결국, 부러진 우산으로 소나기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천천히 간다. 천천히 가지만 그녀의 걸음엔 어떤 박력이 느껴진다. 일 폭탄, 불금, 월요병. 현대인이 사용하는 용어 속에는 스트레스라는 가격표가 달려 있다. 개인이 감당하는 몫이 커질수록 스트레스의 값도 만만찮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사소할지라도 그 일에 달리는 심적 스트레스의 총량은 곱절로 다가온다. 그럴 때 달리 생각해 보자는 것, 한순간의 소나기를 감당할지언정 내 마음의 보폭을 살펴보자는 응원의 메시지가 그림책 속에 담겨 있다.
전미화 지음/사계절/44쪽/13,500원
그림책 '아빠의 발 위에서'는 혹한의 남극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모토 요코가 그린 황제펭귄의 털은 참으로 보드랍고 따뜻해 보입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어떻게 알이 얼지 않을 수 있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알에서 갓 깨어나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 펭귄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이모토 요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모토 요코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어린이들이 주는 상인 엘바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습니다. 이모토 요코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어린이와 교감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작가, 바로 이모토 요코입니다.
황제펭귄의 생태는 다큐멘터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뤽 자케의 《펭귄-위대한 모험》(2005)과 MBC에서 방영했던 《남극의 눈물》(2012)은 펭귄 가족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황제펭귄들은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펭귄이 태어난 곳, 바로 그들의 고향입니다. 황제펭귄은 고향에 모여 짝을 찾고 알을 낳습니다. 추위에 알이 얼지 않도록 아빠 펭귄은 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배로 감쌉니다. 엄마가 먹이를 구하고 돌아올 때까지 아빠 펭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품고 있습니다. 아빠의 온기로 자란 아기 펭귄은 그렇게 아빠의 발 위에서 태어납니다.
황제펭귄이 알을 낳고 품고 기르는 데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살인적인 추위입니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발을 잘못 움직여서 잠깐이라도 알을 놓치면 알은 순식간에 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혹한과 허기를 이겨내고 아기 펭귄을 길러내는 황제펭귄 엄마 아빠의 사랑에는 감동을 넘어서는 숭고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