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해촉 이후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드디어 공식석상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2014년 영화 '다이빙벨'로 시작된 부산영화제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끝내 검찰에 고발되고 해촉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감내하기도 했다. 개인 횡령 혐의를 포함, 두 건의 공금 횡령 혐의는 무혐의 처리됐지만 아직도 나머지 혐의 하나로 법적인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바라 본 부산영화제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가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국민TV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 서병수 부산시장의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 중지 요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나?-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을 한 후, '다이빙벨' 상영 중지 요청을 받았다. 차라리 어떤 내용이 문제라고 하면 속이 시원했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했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영화라는 것이 그 이유라면 모든 예술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관객이다. 그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왜 정치적 외압이 즐거운 축제에 개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서 시장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자회견을 마친 상황에서 그걸 되돌리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시장님 입장을 이해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도 굉장히 강경하더라.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싸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 그 이후에는 감사원의 감사, 검찰 고발 등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나?- 매년 하는 행정감사가 들어왔는데 관례적으로 보지 않는 부분까지 일일이 캐내려고 노력했다. 감사원 감사도 특별조사국에서 받았기 때문에 아마 형사 문제로 처리하려고 틀을 짠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횡령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랬다면 모든 것을 시인하고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된다.
▶ 그렇다면 실제 해외에서도 이런 외압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후진국이고 독재 정권일수록 많다. 부산영화제가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 후진국일수록 관료주의가 강한데 부산영화제는 오히려 공무원들이 영화제와 한 몸처럼 일하니까 많이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보면 이러다가 국가 정책을 위한 영화제, 즉 국책영화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 일단 김동호 신임 조직위원장이 7월 중으로 정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조직위원장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이 되어야 한다. 부산시에서 간섭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 많았는데 그것을 개정하겠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미 영화제가 한 번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는 우려가 좀 있다. 이대로 정관 개정 없이 영화제가 열리면 미봉책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 김동호 조직위원장은 어떻게든 이번 영화제는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김 위원장님은 영화제의 연속성이나 지속성이 끊기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정관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영화제가 개최되는 것에만 비중을 두게 되면 이것이 정치적 타협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김 위원장님은 올해 영화제 개최에 무게를 뒀고, 나는 올해 개최가 되지 않더라도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 지점이 달랐다.
▶ 현재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계 단체들은 정관 개정뿐만 아니라 서병수 부산시장의 공식 사과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명예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인 명예는 이미 검찰에서 어느 정도 회복시켜줬다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그런 비리들이 사실이었다면 30년 넘게 가르쳐 온 제자들 보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학교로 돌아갔겠느냐. 영화제가 정관 개정을 이뤄서 새로운 모습이 되길 바라고, 그것이 지켜진다면 공적인 명예회복은 된다고 본다. 나보다는 나와 함께 억울하게 검찰 고발 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를 바란다. 그냥 그 동안 열심히 했다고 칭찬 해준다면 그것이 명예회복이 아닐까 싶다.
▶ 그렇다면 영화제로 다시 돌아올 마음은 없는 건가?-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조직의 생명력 또한 그만큼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내 사퇴는 약속을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20년이 이미 넘은 영화제가 나와 관계없이 성취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영화제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난 반드시 빠져야 하고, 내 입장에서는 절이 싫어서 주인이 나온 셈이다. 그러니 그 주인이 다시 들어가봤자 새롭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잘하고 있고, 내가 모셔온 분인만큼 그 분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밖에서 지원하는 것이 영화제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