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품다 예술을 낳다'는 제주에서 얻은 예술적 영감을 조형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15인의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역 언론인 제민일보 문화부에서 다년간 문화예술 분야를 취재해온 저자 고미는 이들 작가와 작품 세계를 내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제주 옹기, 회화, 설치, 판화, 영화, 도예, 사진 등 다방면의 예술가들이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제주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다. 그 15인의 예술가들을 아래에 호명한다.
강승철, 꾸밈 없는 제주 옹기에 끌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강요배, 제주의 역사적 결과 자연적 결을 감성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고권, 표류하고 부유하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제주를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연숙, 거문오름을 모티프 삼아 여성적 생명력이 넘치는 화풍을 선보이고 있다.
김흥구, 바다와 같은 해녀들의 삶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문창배, 사색적인 제주의 시간이미지를 하이퍼리얼리즘 기법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박훈일, 황홀한 삽시간의 바다 풍경을 서정성과 서사성이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다.
부지현, 폐집어등을 활용하여 전위적인 입체 판화 작업을 대담하게 진행하고 있다.
오멸, 뛰어난 영상적 미학이 돋보이는 드라마틱한 제주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유종욱, 독창적인 회화성을 입힌 제주 조랑말을 조각하듯이 흙으로 빚어내고 있다.
이지유, 제주의 일상적 풍경을 비틀어 은유적인 깊은 맛으로 제주를 읽어내고 있다.
하석홍, 터득한 재료학을 바탕으로 꿈꾸는 제주 돌의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중옥, 크레파스를 이용하여 서귀포의 바위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허문희, 작가의 제주 별에서 꿈꾸는 제주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홍진숙, 제주 신화가 지닌 원시적 생명성을 인간 삶과 결부시켜 작업하고 있다.
책 속으로“옹기는 가만히 모셔놓는 것이 아니라 쓰고 닳으면서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저절로 번들번들 빛을 먹지요. 그런 자연스러움은 외면하면서 전통의 재현이라거나 과거와 현재의 공존, 지난 것들에 대한 재해석 같은 설명을 보태가며 진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강승철 p.18
"화가는 밖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야. 자신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서 관찰하고,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려 자기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런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이야. 그 지점에 공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느낌을 강요하는 것은 그림이라고 할 수 없어.” 강요배 p.46
“작품이며 책이며 흙에 묻히지 않으면 다 젖어 버렸습니다. 이대로 다 묻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적처럼 말짱한 책 하나가 있는 거예요. 정말 많이 아꼈던 책이었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만약 내가 진정성을 갖고 작업한 것이었다면 작품 한두 점쯤은 무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생각 없이 내 멋에 취해 그렸던 것은 아닐까. 늦지 않았다면 다시 해보자.'” 고권 pp.79~80
"이 공간에서 제주 사람들이 살았다고 생각해 봤죠. 섬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가 신화가 됐다면 그 무대가 오름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현실보다는 상상 속 공간이란 느낌이 강해졌어요.”김연숙 p.99
"처음에는 왜 왔냐는 타박이 더 많았어요. 학교에서 공부나 할 것이지 할망들 고생하는 것 찍어서 뭐에 쓸 거냐고. 어떤 할머니는 카메라를 보고 곱게 화장도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시기도 했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찍는다면 손사래를 쳤어요. 그렇게 한두 해 작업을 하고 나니 서로 편해졌어요. 카메라의 존재를 잊는 적도 많았고요. 아마 작품들을 보면 그런 느낌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김흥구 p.111
"맘에 드는 소재가 발견되면 가능한 오래 자주 관찰합니다. 머리와 가슴에 담아 와서 그리는 거죠. 사진 같다고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자연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그립니다.” 문창배 p.137
“뭐든 자연스러워야 해요. 거스르면 안 되죠. 특히 자연은 더 그래요. 기다려주지도 않고 다음을 가르쳐주지도 않아요. 찍으려는 대상과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 잃어버리는 거죠. 자연이 던지는 것들을 기다릴 줄 알고, 또 놓치지 않는 것. 처음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려 했던 것도, 제가 지금 지키려는 것도 아마 같은 것일 겁니다.” 박훈일 p.159
"집어등은 배를 보려고 항구나 포구에 가면 덤처럼 눈에 들어오던 거였어요. 그냥 뭔가 달려 있구나, 밝기도 하네, 느낌 있는데 하는 정도였죠. 살펴보니 수명이 다하면 교체하고 바꾸는 것을 반복하더라고요.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자체가 판화를 찍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달리 보이더라고요. 매력적이라고나 할까. 집어등이 켜질 즈음은 하늘과 바다 구분이 없어질 정도로 어둑어둑해질 때거든요. 집어등이 켜지면서 경계가 만들어져요. 다가가면 ‘배’라는 존재가 보이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료나 작품으로 가치가 있지만 그것이 모이고 또 뭉쳐지면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을 작품에 옮기고 싶었어요.” 부지현 pp.179~181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본 것을 이해시키는 작업이다.” 오멸 p.218
'흙으로 빚어낸 조각'으로 명명되는 그의 말 작품들은 회화적 조각이라 일컬어질 만큼 독창적이다. 흙으로 빚은 자기를 부숴 만든 독특한 질감의 조각들로 말의 조형성을 섬세하게 옮겨낸다. 유종욱 p.233
"그냥 제주를 그리고 싶었어요. 관광지인 제주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가공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비틀어봤죠.” 이지유 p.250
제주의 돌은 그대로 작은 우주다. ‘제주의 삶이 천착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가 만든 돌은 생각하는 것을 펼치는 캔버스와 동격이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그가 부여한 존재성에 따라 ‘돌’이 된다. 하석홍 p.285
"늘 보던 거라 생각했는데 물 웅덩이에 슬그머니 주변 것이 비춰 잠기다 사라지고 하는 것이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몇 번이고 고민했던 것, 내가 서귀포 바다에서 만난 것들이 평면은 아니라는 것이 체기마냥 늘 가슴에 맺혔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보는 방법에 따라 음영이며 요철이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중옥 p.301
“그런 것들을 어떤 한 가지 느낌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빛과 재료를 적절히 이용하면 그림자가 작품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어떤 면에 색을 쓰는지에 따라 같은 구성에서 다른 느낌이 나도록 할 수 있죠. 보는 사람이 어떤 감정,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제주는 그런 것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대상입니다.” 허문희 p.318
"신화를 시각화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오로지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에요. 그만큼 섬을 알아야 가능한 일이죠. 이미지를 형상화하려는 체험도 중요해요.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죠. 도내 신당을 다 찾아 살피기도 했고 한수풀해녀학교에서 물질 교육도 받았어요. 학교는 물론이고 일반 교양강좌까지 찾아다니며 신화를 공부했어요. 결과야 어찌 됐든 제대로 하고 싶었죠.” 홍진숙 p.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