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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우려 했다"



공연/전시

    "그들은 우리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우려 했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인터뷰⑨] 프로젝트 내친김에, 김정 연출

    예술계 검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전에는 논란이 생기면 검열이 잦아들곤 했는데, 현 정부에서는 더욱 당당하게 자행됩니다. 분노한 젊은 연극인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검열에 저항하는 연극제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를 5개월간 진행하겠답니다. 21명의 젊은 연출가들이 총 20편의 연극을 각각 무대에 올립니다.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작품으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CBS노컷뉴스가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검열이 연극계 판을 분열시키고 있다”
    ② “비논리적인 그들의 검열 언어, 꼬집어줄 것”
    ③ “포르노 세상에서 검열이란”
    ④ “검열, 창작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⑤ “검열을 '해야 된다'는 그들…왜 그럴까”
    ⑥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⑦ “'불신의 힘', 검열 사태 이후 나에게 하는 살풀이”
    ⑧ “갈수록 검열은 교묘해지고, 그들은 뻔뻔해지네”
    ⑨ “그들은 우리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우려 했다”
    (계속)

    프로젝트 내친김에, 김정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팝업씨어터를 겪으면서 체감한 검열은 ‘표현의 자유’ 이런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어떤 것(세월호 등)을 우리의 생각에서 지우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당시에는 세월호였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10월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연극 ‘이 아이’라는 작품이 공연 방해를 받아, 연극계에서 검열 논란이 일었다.

    공연을 방해한 주체는 주최 측인 '한국공연예술센터'. 이유는 아이의 죽음을 다루는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특히 연극에 등장하는 '노스페이스 잠바'와 '수학여행'이 주최 측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연출 인생 1년도 채 안 된 김정(33) 연출은 주최 측으로부터 대본 제출을 요구받고, 공연을 방해받는 순간에도 그것이 검열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공연예술센터 관계자가 출연, 검열 사실과 사건의 전말 등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이 '검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팝업씨어터'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을 겪은 김정 연출이 젊은 연극인들의 검열 저항 페스티벌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무대에 여덟 번째 주자로 나선다. 김정 연출은 '광장의 왕'이라는 작품을 오는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우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검열 사건를 겪으면서 위축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얻은 게 많다고 고백한다. 짧은 기간에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선후배와 동료들이 생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이다.

    하지만 반대로 책임감도 든다. 더 오래 전부터 치졸한 방법으로 고통받은 예술가들이 있다.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았기에 좋은 동료들도 만나고, 다시 일어날 힘도 얻었지만, 그들은 검열을 피해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겪은 일이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기억이었지만, 정작 그 이후 직접적인 제재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도 예술가들이 치졸한 방법으로 탄압받고 못 견뎌서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지금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나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책임이고 의무 아닐까 싶다."

    다음은 김정 연출과 1문 1답.

    ▶ ‘프로젝트 내친김에’를 소개해 달라.
    = 조연출 생활을 오래 하다 처음으로 연출을 해 보고자, 당시 작업하던 동료들과 2014년 초에 만들었다. 연극 작업 있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 왜 극단이라고 하지 않았나.
    = 처음에는 극단이라는 이름이 주는 책임감이 무거워서, 그걸 빗겨가고자 했다. 젊은 집단이다 보니까 무엇 하나 보장되는 게 없다. 같이하는 배우·스태프들의 생계든, 생활이든 책임져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때그때 사정이 되거나, 목적이 확실해서 이걸 꼭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면 극단이라는 구속성을 갖는 게 부담될 것 같았다.

    ▶ ‘내친김에’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 친한 선배가 지나가는 말로 던져준 걸 넙죽 받았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고리타분한 성격이다. 연극만 하면 진지해지는 ‘진지병’이 있다. 그래서 이름만큼은 산뜻하게 지어보고 싶었다.

     

    ▶ 이번에 올리는 ‘광장의 왕’은 어떤 작품인가.
    = 몇 년 전부터 매력을 느껴서 계속 쥐고 있던 것인데, 사실 엄두가 안 나서 못 했었다. 1900년대 초에 쓰인 러시아 작품이라 오래되기도 했고, 대사가 시로 된 시극이라 무대화가 부담스러웠다.

    지난해 말 연극인복지재단의 워크숍 지원프로그램에서 마임이스트 고재경 선생과 작업해 50분 정도 분량 결과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검열 페스티벌 맞게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검열이라는 것이 나에게서 혹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았다.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하고 누군가는 사유의 자유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무대라는 공간을 떠올렸다. 팝업씨어터 사태를 겪으면서 무대를 빼앗긴 연극인들이 거리로 나왔고 맨발로 차가운 바닥에서 뒹굴고 비에 젖으며 자신이 왜 무대에 서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처절하게 증명했다. 이제는 무대에서 그 증명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드라마적으로 꿰어지는 서사보다는 파편적인 장면을 통해 단어와 이미지들을 누적시켜보고 싶다. 진실, 소문, 바다, 배, 해방 등의 단어들과 함께 몰락하는 세계 앞에 선 나약한 한 개인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 팝업씨어터 때 이야기를 안 물을 수가 없다. 연극 '이 아이'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방해하지 않았나. 그때 기분이 어떠했나.
    = 그때 당시에는 검열이라는 단어 자체가 체감이 안 됐다. 떠올려 본 적도, 입 밖으로도 내본 적도 없는 생소한 단어였다. 공연 방해를 당하는 순간에도 몰랐다. 며칠 후에 사건의 전말을 들었을 때 검열이라는 단어보다, 무엇인가(세월호)를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행동으로 툭 튀어나왔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공연을 방해한 개개인의 이름은 전말을 아는 순간 지워졌고, 2016년 이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손을 뻗치고 있나라는 생각에 분노했던 것 같다.

    ▶ 지금도 그 분노는 여전한가.
    = 작업하면서 많이 놀란 게. (분노가) 기억 뒤편으로 많이 가라앉아서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페이스북 프로필로 검열에 대항하는 이미지를 올리고, ‘예술가 정신을 살해하는 검열에 반대한다’고도 소개글로 썼다.

    그 프로필을 반년 정도 뒀었는데, 그게 내 분노의 척도더라. 그 사건 당시에는 아주 정당하고, 그 시점에 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웠다. 온도 자체가 떨어지고 있으니 부담도 됐다.

    ▶ 당시 도와줬던 분들 많긴 했지만, 반대로 목소리 내지 않던 연극인들도 많았다. 그들에게는 섭섭했을 것 같은데.
    = 연극인들, 특히 젊은 연극인들이 연대해주는 자체가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오프라인에서 서로 공감해주고, 애써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일단 그게 컸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검열 문제에 공감하고,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챙기고 독려하기에 바빴다.

    프로젝트 내친김에, 김정 연출.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한번 그런 일을 겪으면, 위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검열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은?
    = 솔직히 나처럼 1년도 채 안 된 연출자 입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자체가 기쁜 일이다. 팝업씨어터 사태를 겪으면서 결과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졌고, 인사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동료들이 짧은 시간에 많이 생겼다. 저변이 넓어진 거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검열’ 문제에 나보다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 많이 만나서 배우는 시간도 갖는 등, 어쨌든 나는 그 이후 뭔가 얻는 게 있다. 검열 사건의 당사자로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반대로 누군가는 지금도 그 일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 속해 있으면서 담당자였던 분이 라디오 방송에 나가 양심선언을 하셨다. 큰 일을 하신 건데, 지금은 그가 있는 자리와 내가 있는 자리가 달라졌다는 게….

    ▶ 내부 고발을 하신 그분은 어찌 됐나.
    = 무대예술팀으로 발령 났다가, 퇴사를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겪은 일이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기억이었지만, 정작 그 이후 직접적인 제재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도 예술가들이 치졸한 방법으로 탄압받고 못 견뎌서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지금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나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책임이고 의무 아닐까 싶다.

    ▶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나.
    = 작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전체 사회를 향한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직은 내 목적도 아니고 능력도 안 된다. 그럼에도 공연을 올리는 목적, 아니 메시지는 개인의 각성을 위해서인 것 같다. 개인이 어떻게 각성하고 행동할 것인가, 이게 우선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팝업씨어터를 겪으면서 체감한 검열은 ‘표현의 자유’ 이런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어떤 것(세월호 등)을 우리의 생각에서 지우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당시에는 세월호였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번 목표는 공연을 보신 관객들에게 그것(지움)을 체험시켜주는 것이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순간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지워진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당신의 이름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 어떤 일일까. 그런 목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방법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 팝업씨어터 때 검열 당한 ‘이 아이’를 다시 할 생각은 없었나.
    = 너무 하고 싶었지만, 저작권 문제도 있고. 그 작품이 외국에서는 유명하고 많이 공연됐다. 대본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사실 이번에 하고 싶기도 했는데, 그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큰 의미와 이야기가 검열 혹은 세월호라는 상징에 가둬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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