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왼쪽)과 우상호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여소야대인 20대 국회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천명한 '수권정당' 전략이 정치권의 예상을 뛰어넘어 '롱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의 전통적 지지층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들이 노선 변경을 꾸준히 압박하고 있어 이들을 설득할 만한 '협치'의 성과물을 내놓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달라진 더민주, 새누리당 내부에서 '집권야당' 신조어 등장여소야대라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지난 4.13총선 결과 만큼이나 20대 국회 들어 달라진 더민주의 모습은 전통적인 지지층이나 비판층을 모두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물러나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를 영입하고 김 대표가 '경제 민주화', '수권정당' 전략을 내세우며 총선을 치를 때 까지만 해도 더민주가 이렇게 극적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전통적 비판세력이었던 비주류 의원들이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옮겨 가면서 주류일색으로 변한 당의 상황을 고려하면, 총선 뒤 이념적으로 더욱 좌클릭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제1당이라는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고, 중도 합리적 성향의 우상호 원내대표가 새 원내 사령탑으로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의 변모한 모습은 무엇보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사드 도입을 전격 발표한 지난 8일부터 2주 가까이 더민주는 사드 문제에 대해 명확한 찬성도, 반대도 표명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당연히 당내 반발이 일었지만 의원간담회에서 각자 의견을 소통한 뒤로 가시적으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소집해 사드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공식화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연명을 받아 의원총회를 요구하는 구체적인 행동까지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더민주는 당헌·당규에서 재적 의원의 1/3이 요구할 경우 의원총회를 소집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반대파들이 예전처럼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사드 반대의 당론화도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황교안 총리 일행이 탄 미니버스를 막아선 성주 군민들. (사진=독자 제공)
사드 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로 결정된 뒤에도 당장 당 지도부의 성주 방문은 없을 것임을 밝혀, 황교안 총리를 보내 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정부보다 오히려 '속 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더민주의 주요 이슈에 대한 신중하고 전략적 접근 태도는 최근 '친박 공천 개입 녹취록'과 '우병우 민정수석 부동산 거래' 의혹 등으로 무기력한 모습의 여권과 비교되면서 여당 내부에서조차 '집권 야당'이라는 역설적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 더민주 '집권 야당' 전략 난관 산적 하지만 더민주가 '집권 야당'의 면모를 계속 유지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성향이 강한 전통적 지지층의 누적돼 가고 있는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이것은 김종인-우상호 투톱 체제가 8.27 전당대회 이후 신임 당대표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도 '수권정당' 전략이 유지될 수 있는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재 친노 성향 의원들이 김종인-우상호 체제에 직접적인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은 지난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을 전부 국민의당에 빼앗기는 등 구태적인 모습으로는 언제든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전당대회를 통해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마무리되면 자연스럽게 당 지도부의 기조도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미애, 송영길, 김상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 (사진=자료사진)
현재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추미애, 송영길, 김상곤 후보 모두 현재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비판하거나 현안에서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이들 중 누가 당대표가 되던 기존 노선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신중론으로 돌아선 더민주에 비해 이념적 선명성을 앞세워 기존 '야권 집토끼' 세력들의 지지를 차지하려는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존재도 부담스럽다.
국민의당은 사드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분명히 하라고 더민주를 압박하는가 하면 최저임금 문제나 '임을위한행진곡' 기념곡 지정 문제, 대우조선해양 부실 청문회 문제 등에서 더민주 보다 강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수권정당' 전략 지속 관건은 새누리당과 청와대더민주의 '수권정당' 전략이 유지될 수 있을지 여부는 오히려 새누리당과 청와대에 달려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협치'와 '수권정당' 전략을 앞세워 전통적 지지층들을 설득해 총선에서 대패한 여권에게 많은 양보를 했지만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더민주 내부에서는 전당대회가 열리는 8월까지 더민주가 의미있는 성과를 지지층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협치'를 명분으로 여당과 정부에 협조적인 국정운영을 지속해 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법과 청와대의 전면개각 여부가 더민주의 수권정당 전략 지속 여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만나 공수처 신설 공조를 합의하고 이틀만인 21일 교섭단체 의뢰만으로 전직 대통령 수사까지 가능케 한 강력한 법안을 내놓는 등 가속을 붙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이 뒷받침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의 전면개각 여부도 변수다.
우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내각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전면 개각을 촉구했다.
한 더민주 중진의원은 "공수처 도입과 전면개각이 받아들여진다면 더민주 입장에서도 지지층에게 협치의 필요성을 계속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성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