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는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만화가)인 저자 권용득이 같은 직업을 가진 아내 송아람 씨, 나보다 더 많은 걸 경험하는 것 같은 아홉 살 아들, 어쩐지 어머니의 희생이 눈에 밟히는 부모님, 그리고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8년 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일기를 모은 에세이이다.
비단 이 부부만의 사정만은 아니겠지만 부부는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장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앞세워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아홉 살이 된 지금, ‘어느 정도’ 각자도생에 성공했다. 하고 싶은 일도 결국 놓치지 않았다. 부부는 각자의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철저하게 가사를 분담했다. 각자의 커리어를 존중하고, 각자의 욕망을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자의 손에는 고무장갑이 끼어졌고 엄마들이 주도하는 유치원 바비큐 모임이나 학부모 참관수업에도 척척 참여하게 됐다.또 그는 아들내미가 챙겨온 가정통신문에 껴 있는 부모 직업 설문지란에는 ‘주부’라고 쓸까 진지하게 고민도 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일상 틈틈이 작업한 그의 만화 또한 헬싱키만화축제에도 초청되는 등 국제적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일’과 ‘가정’, 둘 다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일상이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깎지 않는 수염과 치렁치렁 긴 머리로 동네를 활보한다. 동네 아이들에게 어쩐지 특이한 ‘지홍이 아빠’로 비춰진다. 물론 학부모 참관의 날에는 사회적 상식선에 입각한 ‘학부모용 차림’을 잊지 않는데도 아이 친구들에 눈에 비친 프리랜서 예술 노동자 아빠(저자)의 비주얼은 어딘가 달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러 간 학교 운동장에서 ‘회사에 가지 않는 너네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아들 친구를 만나는 건 예삿일이다.
또한 저자는 프리랜서 노동(만화 창작)을 하기 때문에 또래 다른 아빠들 보다 더 자주 아이 친구나 다른 학부모들과 마주친다. ‘남성 육아 휴직’에 대한 언론의 주목도와 별개로 현실에서 그가 참여하는 학부모 모임에는 여전히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전 세대, 한국 사회의 ‘아버지’의 상징이었던 ‘가부장적인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설거지를 하며 아들의 장수풍뎅이를 돌보고, 네가 행복하다고 해서 아내까지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어머니의 충고도 새겨 듣는다. 그의 시선에 걸러진 ‘우리네 일상’은 어쩐지 웃긴 일도 많지만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모순투성이이다.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이다. 또한 저자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만의 일’을 존중받기 위해 악전고투했지만 며느리의 ‘일’은 이런 고생 없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저자가 바라본 아내와 아들, 부모님,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가족’과 ‘커뮤니티’라는 관계성으로 엮여 있지만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인 ‘개인들’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또한 아이의 인생 못지않게 각자의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저자와 아내 송아람 씨의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 사회의 이전 세대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미드(미국드라마)’와 ‘헐리우드 영화’ 등 영미 문화에 익숙한 ‘개인주의를 사랑하는 요즘 젊은 부부’의 모습인 것이다.
‘남자망신’이란 말은 사실 요즘엔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아버지 세대에서는 곧잘 쓰던 말이었다. 물론 ‘여자망신’이란 단어는 그 용례 자체가 거의 없었다. ‘망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체면과 지위가 깎였다는 뜻이기에 ‘여자’ 사람들에게는 깎일 지위와 체면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1977년생, 올해 40세인 저자는 아버지 세대와 달리 같은 직업을 가진 아내와 철저하게 관계의 균형점을 찾아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는 법에 익숙하다. 저자는 글을 쓰면 놀림을 당하는 경상도 왜관의 남자 고등학교에서, 또 남자가 울면 안 된다고 혼을 내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곧잘 ‘남자 망신’이라는 언어에 갇히곤 했다. 저자를 상징하는 남자 인물이 등장하는 표지와 부제는 그러한 스토리텔링을 내재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익숙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한 남자에게 새로운 ‘남성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전히 생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표지와 부제는 무언가를 주장한다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