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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좀 보더라도…" 독성 빼고 양심 택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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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 좀 보더라도…" 독성 빼고 양심 택한 기업들

    [화학공화국, 당신은 안녕하십니까④]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부터 흡입독성 향균필터, 실명을 야기할 수 있는 차량 메탄올 워셔액까지 생명을 노리는 화학물질제품이 도처에 널려있다. CBS노컷뉴스는 화학물질이 넘처나는 '화학공화국'의 현실을 조명하고, '사회 디톡스' 해법을 모색해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줄넘기(사진=JJR줄넘기 제공)

     

    지난해 3월 시민단체 '발암물질 없는 시민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메일 잘 받았습니다만…."

    까칠한 말투로 첫마디를 뗀 남성은 줄넘기전문제조업 'JJR줄넘기' 김의태(52) 상무.

    '발암물질 국민행동' 얼마 전 이 회사의 제품 덮개에서 납과 카드뮴이 등이 검출됐다며 품질개선 요구서를 발송한 데 따른 전화였다.

    납은 지능저하, 행동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카드뮴은 대표적인 발암물질로 두 물질 모두 체내에 들어오면 배출되지 않고 몸속에 남아있는 유해화확물질이다.

    김 상무는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는데요, 그래도 우리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딴죽을 거시면 곤란합니다"라고 따졌다.

    김 상무 말대로 당시에는 어린이 제품에 대한 화학관련 기준이 미비해 처벌이나 강제 규정이 거의 없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은 김 상무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슬하에 10대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였기에 자사의 어린이용 제품에서 검출된 납과 카드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2개월 동안 비교적 안전한 덮개로 품질개선을 한 JJR줄넘기는 다시 '발암물질 국민행동'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줄넘기에도 문제가 있다고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줄넘기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말에 발끈한 김 상무는 "아니"라고 먼저 큰소리부터 쳤지만, 확인해보니 소량의 프탈레이트(유해 환경호르몬 일종)가 들어갔음을 알게 됐다.

    JJR줄넘기는 고심에 들어갔다. 신규 제품을 모두 친환경 원자재로 바꾸면, 30~40% 원료비가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6개월 후 'JJR줄넘기'는 어린이용 제품뿐만 아니라 성인용과 전문가용 줄넘기까지 전 품목 제품을 새로 생산하거나 교체하기로 했다. 성인용 제품 등은 현재까지도 화확물질 관련한 법규가 없음에도 자체 품질을 개선한 것이다.

    김 상무는 "줄넘기는 사실상 어린이나 성인이나 다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린이 제품만 교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며 "문제를 인지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아깝기도 했지만"… 수천만원 들여 독성 쏙 뺀 4社

    (사진=다벨악기 제공)

     

    지난해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된 어린이용품 제작업체 14곳에 품질개선 요구서를 발송했다.

    이 중 JJR줄넘기처럼 요구를 적극 수용해 자체 개선에 나선 업체는 모두 4곳.

    자발적으로 품질 개선에 나선 업체들
    JJR줄넘기
    다벨악기
    지구화학
    화랑고무


    사실상 전 품목의 품질개선을 한 교육용 악기 제조회사 '다벨악기'는 "우리 제품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된 이상 법의 저촉 여부와 상관없이 시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품질개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가가 20% 정도 상승하고, 초기 투자비용도 수천만원이 들면서 '아깝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린이들이 주로 쓰는 제품인 만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발암물질 국민행동' 박수미 사무국장은 "화확물질 관련법은 아직 미비한 점이 많기 때문에 생활화학제품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나서기 전에 기업에서 시민단체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스스로 품질개선에 나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 베일에 쌓인 화학물질 4만3500종…'화학공화국'에 맞은 해법은?

    화확물질에 대한 관리 및 관련 법규 등에 관한 논의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로 접어들면서 전문가들은 다방면에서 제도와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박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박사는 사고 후 보상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들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예방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박사는 "기업은 사고가 발생한 뒤 '돈만 주면 끝'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예방 활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정부나 국회도 기업들이 예방활동에 의무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내 독성평가와 화학물질관리 체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임 박사는 "기존 4만 3500여종의 화학물질에 대한 기초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황인데, 정부는 2020년까지 2천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만 등록하겠다는 방침"이라면서 "현재 어떤 물질이 어떤 독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생활화학제품을 유럽 등에 판매할 때 많은 기업들이 독성평가를 홍콩 기업들에게 의뢰하고 있다"며 "관련 기술력을 확보해 자체적으로 꼼꼼한 독성평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순천향대 환경보건센터 문정숙 교수

     

    순천향대 환경보건센터 문정숙 교수 화확물질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문 교수는 "국내 화학물질 독성평가가 부실한 이유는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공무원들은 관련 법안들만 외우고 있을 뿐 실제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순환근무제를 기본으로 하는 공무원 사회의 특성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담당 공무원이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은 항상 부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상 속에 자리잡았던 생활화학제품 독성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화학물질 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논의가 매우 부족했던 만큼 눈앞의 문제에 급급해 허술한 해법을 마련하기보다 정부와 학계,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화학물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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