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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맛] 전주비빔밥의 원조가 서울에 있다고?

생활/건강

    [장사의 맛] 전주비빔밥의 원조가 서울에 있다고?

    '전주중앙회관' 구인숙 사장

    외식시장의 전설로 불리는 사장님들이 들려주는 '장사의 철학', 그들의 이야기가 "장사나 해 볼까?" 생각하는 창업 꿈나무들과 장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700만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의 대한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비빔밥 하면 다들 전주비빔밥을 떠올린다. 그 전주비빔밥의 원조는 '전주중앙회관'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갖가지 나물을 올린 비슷한 비빔밥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주비빔밥 하면 떠오르는 사진 한 장 -곱돌 안에서 밥이 뜨득뜨득 소리를 내면서 눌리고 갖가지 나물과 고기 등 20여 가지 고명이 정갈하고 아름답게 올라앉은- 그 비빔밥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집이 '전주중앙회관'이다.

    ◇ 기본은 언제나 옳다

    55년 전통의 '전주중앙회관'은 현재 전주가 아니라 서울에 있다. 가짜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의심했다.

    원래 '전주중앙회관'은 전주에 있었다. 1960년대 식당을 하던 남궁익 씨가 고문헌과 지역주민들의 구전을 토대로 지금의 전주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는 김순례 할머니의 시조카고, 구인숙 사장의 사촌오빠다.

    이후 남궁익 씨는 사업차 서울로 올라가면서 특별한 손맛을 지녔던 김순례 할머니에게 중앙회관을 해보라고 권유했던 것. 남궁익 씨는 구인숙 사장에게 늘 "니 엄마 손이 닿으면 맛이 달라진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내가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뭔지 물었더니, 구인숙 사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저희 엄마는 콩나물 무침을 제일 잘 하세요."

    많은 음식 명장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 그들은 늘 기본에 충실했고 음식 또한 기본에 주력을 했다는 것이다. 빵집 사장님은 식빵에, 냉면집 사장님은 동치미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기본은 언제나 옳다.

    '전주중앙회관'은 곱돌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서서히 뜨거워지고 서서히 식는 곱돌은 먹는 내내 따끈함을 유지해주고 구수한 누룽지까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타지는 않는다.

    손님은 둘 이상이면 대부분 곱돌에 담긴 비빔밥 하나, 유기그릇에 담긴 비빔밥 하나를 주문한다. 나는 유기그릇 파다. 먹다보면 비빔밥이 식기 마련인데 식은 비빔밥도 꽤 맛나다. 더불어 유기그릇이 더 폼 나지 않나.

    직접 먹어보니 '전주중앙회관'에서는 곱돌비빔밥이 옳았다. 사골로 지은 밥은 식으니까 끈적한 느낌이 있었다. 사골로 지은 밥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곱돌이 갑이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 단체 관광객과 가맹점은 양날의 칼

    전주비빔밥은 사골을 고아 그 국물로 밥을 짓는다. 한 그릇 음식으로 먹을 땐 간단하지만 고명으로 올리는 나물마다 요리법이 달라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질긴 것은 사골국물에 볶고, 연한 것은 살짝 데쳐서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아흔을 눈 앞에 둔 김순례 할머니는 지금도 도라지를 잘라 양념을 직접 하고 매일 반찬 간을 본다. 오랜 세월 그 손으로 얼마나 나물을 만지고 조물거렸으면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1970~80년대 호시절엔 손님만 많았던 게 아니었다. 故 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전라북도 순시 때 챙겨 먹을 정도로 명물 식당이었다. 또한 관광버스까지 줄지어 손님을 실어 나르는 전주 관광 필수 코스였던 것. 하지만 그때부터 부작용이 생겼다. 하루에도 관광차가 수십 대씩 몰려들다 보니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고 어느 순간 '맛이 변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전주중앙회관'은 위기를 맞았다.

    맛집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단체 관광 가서 먹은 음식 가운데 제대로 된 음식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아마 세 손가락에도 꼽기 힘들 것이다.

    단체관광객과 가맹점은 양날의 칼이다. 금고는 차고 넘치겠지만 맛과 서비스를 보장할 수 없으니 식당의 명성에는 결국 마이너스가 된다. 구인숙 사장은 그런 상황을 잘 아는 터라 단체관광객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 물론 관광객도 맛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지만 수십 명이나 되는 단체손님이 수시로 몰려들면 음식을 기계로 찍어내 듯 만들 수밖에 없다.

    ◇ 내 음식에 대해서는 선수가 되어야 진짜다

    서울에서 금융회사에 다니던 구인숙 사장은 퇴직 후 소일거리로 식당을 점찍었다. 당시 어머니가 서울 제기동에서 혼자 전주비빔밥 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주에 있는 '중앙회관'은 주인이 몇 번 바뀌었고 김순례 할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따라 서울로 왔다-

    김순례 할머니는 딸이 식당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니 완강하게 반대했다. 매일 사골을 우려 밥하고 수십 가지 나물을 씻고 다듬고 요리하는 일은 얼마나 고된지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고, 당신 체력이 되는 한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2016년 현재 김순례 할머니가 여든일곱의 나이에도 매일 식당에 나와 음식을 만드는 이유다. 2000년 강남에 전주비빔밥의 전통을 잇는 '전주중앙회관'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구인숙 사장이 충동적으로 식당을 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모르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비빔밥이 아니라 한식집,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집을 하는 것이었다. 유명 한식집 순회를 하던 그는 문득 다른 집 비빔밥은 세월이 흐를수록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는데, 전주비빔밥은 낙후되어 가는 것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내가 진짜 전주비빔밥의 맛을 내는 집을 해보자.'

    구인숙 사장이 오너가 되면서부터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고추장도 직접 담아 고기와 함께 볶은 볶음 고추장를 쓴다. 거기에 직접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함께 넣어 비비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맛있다.

    그는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예순다섯이라는 나이가 믿기 어려울 만큼 동안인 데다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이다. 솔직히 주방에서 나물을 조물거리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하기 어려운 외모다. 그런 그도 새벽에 일어나 장을 보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식당은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하죠. 자기가 파는 음식에 대해서 선수가 되어야 진짜죠."

    그래서 자신 없는 메뉴는 아예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

    '전주중앙회관'이 옛 명성에 기대어 지금의 위치에 선 건 아니다. 강남에서 다시 자리 잡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한 식당이 손님들과 신뢰를 쌓는 시간은 그만큼 길고 쓰다. 지난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인숙 사장은 가게를 세 번이나 옮기면서 단 한 번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란 믿음으로 견뎌냈다.

    장사는 마라톤이다.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전주중앙회관'이라는 명성을 앞세워도 새로운 도시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도 다 못 할 고생도 많았다. '전주중앙회관'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손상된 상태라 다시금 명성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주에 있어야 할 중앙회관이 왜 서울에 있느냐는 의심에서부터 대궐 같던 중앙회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 장사하냐는 질책도 이어졌다.

    "다행히 딸인 저를 아는 사람이 많았고, 나 스스로 정직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죠."

    구인숙 사장은 남들은 어렵다 힘들다는 장사가 신이 난다고 한다. 즐겁다고 한다.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손님이 저희 집 음식을 먹고 좋아하고. 그런 게 저한테는 정말 큰 즐거움입니다."

    김순례 할머니에게도 장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냐고 물었더니,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어요"라고 한다. 지문이 다 닳도록 나물을 다듬고 무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재미있어요. 텔레비전 봐가면서 하면.(웃음)"이라고 받아친다. 무엇 하나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김순례 할머니였다.

    구인숙 사장이 어머니에게 받은 가장 큰 유산은 음식 솜씨가 아니라 '긍정 DNA'였다.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주인의 에너지가 손님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다.

    '전주중앙회관'은 구인숙 사장의 딸이 3대를 준비하고 있다. 할머니의 음식솜씨와 어머니의 친절과 긍정 DNA로 전통을 잇는, 전통보다 더 맛있는 전주비빔밥을 이어나가길 기대해본다.

    (사진=도서출판 정한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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