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순수성과 존재의 한계성에 저항하는 사랑의 관능성을 동시에 곱씹어보다!
문형렬 작가의 소설 '굿바이 아마레'.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 및 구원과 연결시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며 사랑의 양 극단의 모습인 순수와 관능을 동시에 조망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묻는다.
금융전문가인 나는 보스의 지시에 따라 네덜란드 현지 지사의 경영 상태를 감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리고 감사를 마치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 지사장의 손에 이끌려 ‘아마레’라는 카페에 가게 된다. 그곳은 평범한 카페가 아니다. 손님들은 벌거벗고 있고, 마리화나와 섹스가 난무한다.
홀린 듯 카페의 여주인 세이렌의 관능에 취한 나는,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십 년 전에 죽은 옛 친구이자 아는 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추구했던 한수명이 관능의 극치를 경험했던 카페의 이름 ‘아마레’의 뜻을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기억 저편에 묻어둔 한수명과 서인애의 사연을 떠올린다.
나의 고향 친구이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수명은 사춘기 시절 성당 교리반에서 서인애를 알게 되자마자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서인애에게 악성골수종양이 발병하자 학교를 관두고 다시 신학대학에 들어간다. 신부가 되어 신에게 자신을 바치면 신이 서인애의 병을 낫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인애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가고, 그럴수록 한수명은 신에게보다 서인애에게 더 기우는 자신을 깨달으며 스스로를 환멸하기도 하고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문형렬 지음 / 나무옆의자 /200쪽/ 9,000원
이지영 작가의 소설 '아주 사적인 고백과 거짓말' 이 출간되었다. 사랑의 허상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지독한 거짓말을 서늘하고 쓸쓸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랑이 착란이라면 삶을 지탱해주는 건 자신에게 하는 어떤 거짓말일지 모른다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퀼트를 가르치며 한국에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수. 밀수 전과로 어려움에 처한 남편은 6년째 돌아오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수는 기다림에 지쳐 점점 황폐해져간다. 그러던 중 쯔메이라는 어린 여자를 알게 되면서 수는 뜻밖의 생기를 얻고, 자신의 젊은 날과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랑에 대해 떠올린다. 강렬했던 연애와 행복했던 결혼 생활을 추억하며 남편을 만날 희망에 부풀어 있던 수는 언젠가부터 주변을 맴도는 수상한 기운을 감지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쯔메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수는 직감적으로 라신이라는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쯔메이는 그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도리어 그와 연애를 시작한다. 불길한 예감과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수는 어느 날 두 사람이 자신의 집에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분노가 폭발해 쯔메이와 결별하고 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라신이 찾아와 뜻밖의 제안을 한다. 바로 남편을 살해하자는 것. 라신은 남편이 고용한 살인청부업자였고 쯔메이를 통하여 수에게 접근한 거였다. 하지만 수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 라신은 이제 남편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절망과 혼란에 휩싸인 수는 진실을 알기 위해 일단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맞닥뜨린 남편의 실체를 보며 지금껏 자신이 믿어왔던 사랑이 모두 거짓이었고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수는 마지막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데…….
이지영 지음/ 나무옆의자/ 228쪽/ 9,000원
서진연 작가가 신작 '수목원'을 들고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연인 히데오와 함께 갔던 수목원을 우연히 TV에서 보고 관련된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라 마침내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동일본 대지진 직후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터전을 잃은 뒤 떠나거나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쓰게 된 작품이다. 한 가족이었던 한국인 ‘나(이수)’와 일본인 ‘히데오’를 통해 한일 두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을 보내는 시선과 잃었던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내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토요일 오후, 혼자 잠에서 깬 이수는 술에 취해 오피스텔까지 어떻게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전날 회식과 그 후 벌어진 회사 동기이며 유부남인 재영과의 돌발적인 정사뿐.
잔뜩 찌푸린 날씨에 쓸쓸한 적막이 싫어 무심하게 틀어놓은 TV 속 장소가 낯이 익어 옛 사진들을 찾아보니, 15년 전 스무 살 무렵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는 길에 연인이었던 히데오와 들른 수목원이다. 그 무렵 이수는 도교 외곽에서 한국식 가라오케를 운영하는 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혼자 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후로는 일본 음식점에도 전혀 가지 않았는데, 문득 히데오와 자주 가던 역 앞의 라멘집이 생각나 오피스텔 부근에 있는 라멘 가게를 찾는다. 그곳 사장과 친해져, 이후 저녁마다 늘 그곳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게 되는데,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잊었다고 생각했던 히데오에 대한 기억이 새삼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이수는 신입 사원인 차 대리와 재영과의 관계가 의심스럽고, 재영의 아내 역시 만삭의 몸으로 이수를 찾아와 그들 사이를 의심하며 이수에게 하소연한다. 그러나 그녀가 의심하며 예로 드는 사건들은 모두 이수와 관계된 일뿐이다. 이수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묘한 질투를 느낀다. 동시에 이수는 재영과의 관계와, 새삼 떠오르는 히데오에 대한 기억으로 계속 괴롭다.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시며 방황하고 라멘 가게 사장의 도움으로 다소 안정을 찾아가지만, 결국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일본으로 향한다.
히데오에게는 어릴 적 구소련이었던 우크라이나에서 살다가 체르노빌 사고를 겪은 아픈 과거가 있다. 사고 후 1년이 지나고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히데오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히데오는 더욱 자신의 죽음과 유전자 변이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지내고, 그 때문에 샴쌍둥이처럼 붙은 당근을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까닭에 이수는 연리목 숲을 보고도 히데오의 눈치를 보고, 그는 자연스럽게 연결된 나뭇가지와 둥치라며 오해를 풀어준다. 이수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그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가 기형아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15년 만에 찾은 추억의 거리들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에게서도 원전 사고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며칠 뒤, 엄마는 히데오 아버지의 주소를 내게 건네주고 이수는 고심 끝에 후쿠시마 시에서 살고 있다는 그를 찾아간다.
그는 한 산사로 이수를 데려가며 히데오의 소식을 전한다. 히데오 역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여파로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병 때문에 이수와 헤어지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이수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 진실된 사랑을 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그 후 히데오가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반핵 운동에 참가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그 현장에서 피해 복구에 힘을 쏟는 삶을 보낸 것도 이수는 함께 전해 듣는다.
히데오의 아버지와 이수가 산사 뒤의 오솔길로 들어서자 나무숲이 보인다. 이수는 그중 뿌리가 연결된 연리목을 쓰다듬고 히데오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함께 나누지 못한 서로의 아픔을, 얽히고설킨 상처를 보듬어가며 아물어내 연리목처럼 하나가 되지 못한 과거를.
이수는 엄마에게 돌아온 후 일주일을 꼬박 앓은 뒤 히데오와 함께했던 장소를 방문한다. 당분간은 그와 함께 갔던 곳을 찾아다니며 기억나지 않는 그를 기억하고 이제야 연리목처럼 하나가 되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