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제공)
1231년 8월, 세 갈래로 나누어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4개월 만에 수도 개경을 포위한다. 항전과 항복의 기로에 선 고려는 결국 화친을 택하고, 몽골을 상국(上國)으로 섬길 것을 약속한다. 사실상 복속이나 다름없는 굴욕적인 화친이었다.
그러나 고려는 또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당시 고려의 집권자인 최우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오간 이야기는 수도인 개경을 떠나 도읍지를 옮기자는 것이었다. 천도 후보지로 거론된 곳은 바로 강화도였다. 섬이 수도가 된 건 한반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고려는 유배지로 유명한 강화도를 왜 수도로 택했을까.
28일(일) 밤 9시 40분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강화도 앞바다에 서린 '손돌목 전설'의 진실과 강화도의 전략적 가치를 살펴본다.
1232년 6월, 고위 관료들이 최우의 집에 모여 강화 천도를 논의한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갑자기 야별초(夜別抄) 하급 지휘관 김세충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강화 천도에 대해 힐난한다. 하지만 그 역시 뚜렷한 방책은 갖고 있지 않던 상황이었다.
결국 김세충은 죽임을 당하고 이후 속전속결로 천도가 진행된다. 그런데 야별초는 최우가 만든 특수 부대로 김세충은 최우의 심복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었다. 그런 김세충은 왜 최우에 맞서 강화 천도를 반대한 것일까.
천도란 왕조가 바뀔 때나 행해지는 큰 일이다. 게다가 개경은 태조 이래로 300년 넘게 고려의 수도였던 곳이다. 최우가 강화 천도 반대 의견을 잠재우기 위해 심복인 김세충을 이용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자 몽골은 이를 빌미로 2차 침략을 단행한다. 몽골군은 강화도를 공격하기 위해 태주(泰州) 향리인 변려를 사로잡아 강화도로 가는 뱃길을 묻는다. 하지만 변려는 불에 달군 쇠로 몸을 지지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뱃길을 알리지 않는다.
결국 몽골군은 강화도 정벌을 포기한다. 그 후 몽골은 강화도에서 나올 것을 요구하며 고려에 위협을 가하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강화도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
몽골은 왜 강화도를 침략하지 못한 것일까. 주력 부대가 기마병이었기 때문에 수전에는 약했던 것일까? 하지만 베트남과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수군을 동원하기도 한 몽골이다. 과연 그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세계 최강 몽골에 맞서 나라의 명맥을 지킨 고려인들의 항쟁의 역사가 이번 주 '역사저널 그날'에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