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어도 언로가 막혀 있으면 장차 세상이 어지러워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비록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언로가 열려 있으면 간혹 난리가 수습되는 경우도 있다.(본문 77쪽)
매천 황현(1855_1910)이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을 번역한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梧下記聞)'가 출간되었다.
황현의 기록은 임술년(1862, 철종 13)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만, 그에 앞서 순조·헌종 시대의 전반적인 세도정치를 논하고 들어간다. 이후 갑자년(1863, 고종 1)부터 임오년(임오군란), 갑신년(갑신정변)의 사건을 소상하게 기록한 뒤 갑오년(1894, 고종 31)에 이르러서는 월일별로 중앙정계의 정치적 상황, 지방의 정치·사회 상황, 동학의 창도,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1894년에 초점을 맞춰 서술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학농민전쟁의 기록은 그 어떤 사료보다 자세하고 생생하다. 황현 자신이 전라도 구례에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는 1883년 창간되고 열흘에 한 번씩 발간되었지만 1884년 갑신정변으로 종간, 근대적 의미의 관보는 1894년 6월부터 발간)도 변변히 없는 그 시대에 이렇게 치밀하게 기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과거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문장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치를 포기하고 향리로 내려온 황현은 독서와 역사 연구에 몰두하여, 마침내 당대의 역사 기록인 '오하기문'과 '매천야록'을 저술했다. 사실에 바탕을 두되, 저자 황현의 비판적 관점이 그대로 드러난 기록이다. 전통적 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개화파와 그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동학농민군에 대해서는 '도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소탕해야 할 무리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연암 박지원을 흠모한 인물답게 실용과 실질을 중시하기도 했다.
이 무렵 새로 정한 법과 조례는 모두 일본 사람이 의견을 내고 서양의 제도를 참고해서 형식적인 제도를 없애고 실질적인 것을 중시했다. 비록 선왕들이 세상을 다스렸던 법은 아니지만 현재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빨리 시행해야 할 것들이었다. 이러한 법과 조례를 처음 보는 까닭에 놀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한 그 옛날 관중과 상앙의 부국강병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실질을 중시하는 것이었다.(본문 284~285쪽)
또한 백성이 들고일어설 수밖에 없는 원인을 민씨 정권의 부정부패와 언로의 막힘으로 진단하면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더구나 동학농민군을 도적이라 하면서도 그들이 일반 백성의 지지를 얻는 모습을 가감 없이 서술했다.
조선 팔도에는 원망하는 소리로 뒤덮였고, 세태를 풍자하는 동요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무슨 좋은 팔자라고 난리를 볼 수 있겠냐?”며 장탄식을 하기도 했다.(본문 93~94쪽)
도적은 … 주변의 주민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 조금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심지어 행군하다가 주변에 쓰러진 보리를 보면 일으켜 세워 놓고 갔다. … 도적의 진영에는 음식 광주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관군은 굶주린 기색이 뚜렷했다.(본문 139쪽)
자신이 사는 당대의 역사를 사실에 기반하여 쓰되 날카로운 비평을 덧붙인 황현의 기록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 그 전범을 보여준다. 주관적 의견과 해석을 달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학농민군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민심을 얻고 있던 사실과 점점 기강이 해이해지고 내부 갈등을 빚는 모습, 민씨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선 일본군의 비리와 만행, 농민군의 최후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였다.
소설가 김훈은 이를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서술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한국일보>에 '당신이 뽑은 2010년의 책은 무엇입니까!'(2010.12.24)라는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김훈은 '번역 오하기문'을 꼽았다.
나는 요즘 나온 책보다는 옛날 책, 특히 기록물을 주로 읽는다. 그 중 하나가 조선 말기 문장가인 매천 황현(1855~1910)의 '오하기문'으로, 그가 자기 시대의 잡사(雜事)를 시시콜콜히 적은 책이다. 서양에서 도입한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저널리즘의 시초로 여기는 통념에서 벗어나, 이 책은 황매천의 다른 저서인 '매천야록' 등과 더불어 우리 저널리즘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황매천은 우국지사로서 시대를 보는 확고한 생각과는 별개로, 탄탄한 과정을 밟아 사실에 접근하고 그렇게 수집한 사실에서 거대한 역사를 읽어낸다. 주관적 의견을 말하더라도 사실을 바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섣불리 문장가나 우국지사가 되려고 하는 요즘 언론 행태를 이 책에 비춰볼 만하다.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더라도 이는 사실에 기반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