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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책/학술

    바다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신간 '어촌자본주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바다는 한계에 다다르고 환경오염과 해양자원고갈 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에서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작은 노력이 일본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어촌(里海, SATOUMI)이라는 개념은 일본 세토 내(內海)에서 시작되었다. 세토 내해는 일본 혼슈섬과 시코쿠섬, 규슈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한다. ‘앞바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 ‘어촌’은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서 생물다양성과 생산성이 향상된 연안 해역’으로 정의된다. 또한 이러한 어촌의 개념은 이미 학술용어로 확립되었고, 해양자원고갈이나 오염의 문제를 안고 있는 전 세계 근해(近海)의 해결책이 되고 있다.

    1970년대 고도경제성장시대를 거치며 세토 내해는 간척이 진행되고 공장이 건설되면서 발전해갔지만, 무분별한 발전과 심각한 해양오염으로 바다는 부영양화상태가 되어버렸다. 대량의 플랑크톤으로 적조현상이 발생하고 어획량도 감소하며 해수욕을 할 수 없는 바다가 되었다. 그 빈사상태의 바다가 40년의 시간이 지난 후 되살아났다. 바로 어부들과 주민들, 그리고 바다를 살리려는 학자와 민간인들의 노력 덕이었다.

    신간 '어촌자본주의'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굴[石花]과 잘피이다. 굴은 부영양화물질을 흡수한 플랑크톤을 먹으며 바닷물을 깨끗하게 만든다. 세토 내해는 일본 전국 굴 생산량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굴 생산지였다. 오염된 바다는 그렇게 몇십 년을 거쳐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 또한 세토 내해를 살아 있는 바다로 다시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잘피이다. 잘피는 바다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뿌리로 영양을 흡수하고 햇볕을 받아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로, 해양생물의 산란 및 보육장 구실을 한다. 특히 부영양화물질을 걸러내어 연안 환경을 정화하고 적조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속 산소의 공급원이다.

    잘피는 또한 말리면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채소가 자라는 데 필요한 3대 영양소 중 하나인 칼륨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칼륨비료는 캐나다 등지의 광산에서 공급되는 것에 의존하는데, 오히려 잘피를 비료로 사용하면 식물이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도 친환경적이라 세토 내해 인근 섬의 밭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상남도 남해군 선소항 인근 연안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잘피 군락지가 최근 확인되었다고 한다(2016년 8월 5일). 지난 1970~80년대 피조개 양식장의 무리한 개발로 대부분 사라진 이 일대의 잘피가 2013년 6월에 어민들이 이식을 시작해서 현재 다시 자라게 된 것이다. 잘피는 과거 먹을 것이 귀하던 어촌의 아이들에게 훌륭한 간식이었으며, 물속에서 보면 바람이 부는 대나무 숲처럼 바다 물결에 따라 춤을 추듯 이리저리 움직여 바다 생태계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남해읍 관계자는 "선소마을은 수산업을 중심으로 생활 터전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번 잘피 군락지 형성으로 풍부한 수산자원 속 어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전라남도 완도군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과 공동으로 제4회 바다식목일을 맞아 잘피 이식 행사를 실시했다(2016년 5월 10일). 바다식목일은 바닷속 생태계 보전을 위해 바다숲을 조성할 목적으로 매년 5월 10일 개최되는 국가기념일이다. 잘피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광합성 작용으로 해양생물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생산해 공급하는 등 건강한 연안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어촌자본주의'에서는 단순히 오염된 바다를 살리는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한계에 다다른 현재,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바다는 어부들이나 해양학자들만의 관심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다는 결국 자연이고, 인간은 그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 어업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든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촌자본주의'의 해설을 쓴,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의 공저자 모타니 고스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서양에서 발달한 학술 중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신교적 사고방식을 기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미묘한 균형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절대적인 결정자 혹은 어떤 탁월한 결정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발상으로 모델을 만든다. 이런 모델을 믿으면, 결정자의 결정 시스템과 무관한 그 밖의 다수는 균형의 형성에 참가하고자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어촌'이라는 것은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년간 다양하게 이용되면서, 오히려 그로 인해서 자연의 순환과 재생이 유지되고 나아가 생물다양성이 증가한 바다'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처음에는 서양 자연과학자들의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에 균형과 다양성을 가져다주는 것은 자연이지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연을 결정자로 상정한 '일신교적 발상'에 사로잡혀 있어서, '인위적으로도 자연 속에 균형과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자의 집단인 그들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증거를 통해 생각을 바꿨고, 현재 '어촌(里海, SATOUMI)'은 '산촌(里山, SATOYAMA)'과 함께 전 세계 생태학자들의 상용어가 되었다. '인간도 자연 속 일부이며, 인간의 행동도 자연의 순환 속의 한 요소로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조금씩 생태학의 세계를 바꾸고 있다. '어촌자본주의'는 어떤 새로운 '유일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힘의 결집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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