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함돈균의 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가 출간되었다. 전작 '예외들' 이후로 4년 동안 집필해온 문학비평을 한데 엮었다. 이 시기 한가운데의 세월호사건이 상징하는 우리 사회의 결핍과 아픔을 끊임없이 사유해온 작가들의 고투가 비평의 시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상기시키며 문을 여는 제1부는, 새로운 상상력을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작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문학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이때 문학적 상상력의 대척점에는 우리 사회의 부재와 결핍이 자리한다. 공감의 부재, 기억의 부재, 애도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인용할 수 있는 사건의 '텍스트'가 부재한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시인은 연옥의 죄인이 된 심정으로 불면의 기도를 올린다.
1964년 김수영은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현대식 교량」)을 보여주는 사랑의 실험자로서 당대 시인의 임무를 규정했다. 1981년 최승자는 시인으로서 제 역할을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이 시대의 사랑」)을 ‘풀어내는’ 일이라고 보았다. (…) 2016년 우리 시대의 사랑은 적을 형제로 만들지도 못한 채 오히려 형제를 적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불행하게 흐느끼고 있다. (…) 이 평론집에 있는 글들이 씌어진 시기에 시인들은 세상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존재라는 시인의 고전적 운명으로 회귀한 듯했다. 그들의 사랑은 불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들의 우주는 실낱같은 구원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연옥’에 갇힌 듯하다.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기점이 된 1990년대 이후, 시인의 사랑이 이렇게 처절한 ‘기도’의 양상을 띠는 경우는 없었다.(6~7면)
특히 세월호사건은 1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여기에는 저자가 지난 두해에 걸쳐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천착한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강, 이영광, 이원, 김행숙, 박진성, 황인찬, 송승언 등 최전선에서 우리 사회의 결핍과 맞서 싸우는 ‘세월호 이후’의 작가들을 맹렬한 관심으로 조명하면서, 사건의 기억과 애도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 하고 있는 것 들을 침착하게 묻는다.
「불가능한 몸이 말하기: 세월호 시대의 ‘시적 기억’」은 한강과 이영광의 작품을 통해 세월호의 ‘증언 불가능성’을 문학의 목소리로 극복한 흔적을 발견한다. 추모와 담론의 근거가 되어야 할 텍스트가 실종된 상황에서 ‘고통받은 자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서 문학이라는 ‘몸’을 입게 되는 ‘성육신’의 현장을 발견한다. 「연옥에서 기도하는 시인들」은 이원, 김행숙, 박진성의 시를 기도의 형식으로 읽어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야말로 속죄가 필요한 지옥의 공간임을 긍정하는 시인들의 “진정한 기도”는 그 자체로 가능성이다.
제2부는 저자의 다양한 관심사를 담아낸 평문들로 묶었다. 전작 『사물의 철학』을 통해 주변의 사물을 관계의 측면에서 읽어낸 바 있는 저자는 「은폐하는 사물, 발기하는 사물, 되돌아오는 사물」에서 문학을 매개로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며 특유의 시각을 내보인다. 또한 「놀이는 어떻게 거룩한 긍정이 되는가」에서는 문학과 놀이, 「공동체(共同體)인가 공동체(空同體)인가」에서는 문학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사유한다.
한편 이창동의 영화 「시」를 문학의 시각으로 참신하게 재구성한 「만약에 미자 씨가 시 쓰기가 아니라 소설 쓰기를 배웠다면」에서는 문학작품에 한하지 않는 비평적 보폭
이 느껴진다.
제3부는 주로 시집의 해설란에 수록된 글들이다. 김승일, 박상수, 김지녀, 김희업, 이영광, 이원 등 우리 시단의 주요 시인들의 작품집을 섬세한 시각으로 풀어내는 평론을 읽다보면 저자가 우리 시대 작가들로부터 신뢰받는 평론가임을 실감할 수 있다. ‘도롱뇽 공동체’ ‘굴욕 플레이어’ ‘흙이 묻지 않는 보법’ 등 작품에서 끌어낸 키워드를 자신만의 비평 언어로 전환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제4부는 개별 작가들을 다룬 작품들을 모았다. 김남주, 김중일, 조말선, 정진규, 김행숙, 박판식의 시편들에 주목해 작가론으로 연결시켰다. 표제가 된 평문인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어떤 애인들의 존재 형식에 관하여」에서는 김중일의 시뿐 아니라 모든 시인들의 ‘쓰기’를 ‘잠들지 못하는 애인’의 고백이자 사랑을 위한 끝없는 싸움으로 바라본다.
문학은 오늘날 잠들지 못한 채 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작가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세상을 재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매달려 있고 붙잡혀 있다.” 마치 세월호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4월 16일의 그 시간에 갇혀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작가들은 잠들지 못하는 ‘자정과 새벽의 시간’에 멈춰 있다.
함돈균 지음 | 창비 | 336쪽 |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