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사드 발사 테스트 (사진=미국방부)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결정을 놓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던 야권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사드배치 결정 직후 당론으로 반대를 외쳤던 국민의당은 대북 압박 실효성을 위해 사드문제를 활용해야한다는 조건부 반대론으로 선회했고, 당대표 경선에서 사드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로 사드배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신중론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대북제재 중국 참여 '지렛대' 꺼내든 안철수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19일 "중국이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에 응한다면 우리는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협상카드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 미래일자리특위의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방문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재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협상카드가 사드"라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제재가 필요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사드배치를 전략적 협상 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드는 미국 내에서도 성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실전 운용에 요구되는 신뢰성이 아직 부족하다. 수조원의 비용을 결국 우리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7월10일), "사드배치는 비핵화와 통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다"(7월11일)며 사드배치 반대 국민투표까지 제안했던 과거 발언에서 한발짝 물러난 발언이다.
지난 7월 사드 배치가 쟁점으로 불거지자 반대 당론 채택은 물론 지도부가 사드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를 직접 방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것과도 거리가 있다.
안철수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대북 제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뜨뜻미지근한 중국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고 대북 제재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협상카드로 사용해야한다는 의미"라며 "현재 당론이 반대인 것은 맞지만 당 주요 지도부와는 (발언 전)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 방미 기간 중 국민의당을 이끌고 있는 주승용 직무대행도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느닷없이 사드 배치는 물론 성주 후보지까지 발표해 당론으로 반대입장을 정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국회비준처리 과정에서 찬성이 나오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호남이 지역구인 이용호 의원 역시 "지역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우병우 수석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는데 사드 때문에 되살아나고 있다'는 말을 한다"며 "사드반대 입장 철회 요구가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전날 "청와대가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을 계속 거부하는 마당에 당론을 변경하지 않더라도 이 문제를 의총에서 한번 더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사드배치 반대 입장 고수가 안보정당을 표방하는 국민의당에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당은 박지원 위원장이 귀국한 뒤 오는 22일 오전 전체 의원총회를 열어 사드배치 반대 당론 수정을 포함한 대응 전략을 고심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사드배치 반대 입장에서 이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시점에 돌입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당론반대 공약 걸었던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 유지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사드배치 반대 당론화'를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더민주는 사드배치가 안보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의 외교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전문가 간담회와 당내 의견 수렴을 거쳐뒤 의원총회에서 최종 입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추미애호 출범 이후 20여일이 흘렀지만 이렇다할 간담회 한번 열지 못한 데다 당장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당론 결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추 대표 개인적인 소신으로는 여전히 사드 반대를 견지하고 있지만 당론을 정하는데는 절차를 거쳐야한다는 점에서는 입장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마 전문가 간담회와 무관하게 당내 절차는 국감이 끝난 뒤에야 진행하는게 현실적이지 않겠냐"고 말해 사드배치 반대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에 최근 더민주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산하 국방안보센터가 "현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한 안보상황 하에서 번복은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와 일방적인 사드배치 결정 등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3단계 배치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한다"는 의견서를 지도부에 전달한 것도 사드배치 반대 당론결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북한의 제5차 핵실험으로 안보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안 제시없이 무턱대고 사드배치 반대만을 외칠 경우 자칫 '발목잡기 정당'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작용하면서 신중론으로 선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