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펴보고, 데이터의 속성과 기억의 미래를 전망하고 예측한다.
디지털 콘텐츠 큐레이터이자 문화사학자인 저자 애비 스미스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소장품 전시회를 준비하다가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 세대가 모두 가고 나서 등장할 디지털 시대의 다음 세대는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떠올릴까?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역사의 물리적 증거인 기록물과 유물은 오늘날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며 인류의 기억이 고스란히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확실한(눈에 보이는) 물표다. 5000년 된 설형문자판은 아직도 맨눈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 속 데이터는 몇 년 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지식으로 만들고 IT기술이 가져다 준 혜택이 크지만,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는 너무나 약하다. 만들기 쉽고 저장하기 쉽고 관리하기도 편하지만, 그만큼 데이터가 손상을 입는 경우도 흔하다. UBS 메모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소중한 개인 기록이 날아가거나 업무상 중요한 파일을 열지 못해 낭패를 본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설형문자판 같이 형태가 있는 물체를 관리하는 것으로는 지식을 보존할 수 없다. 오늘날 기억은 코드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기계만이 코드를 쓰고 코드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계를 완벽히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메뉴와 기능을 익혀야 하며, 기계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또 넘쳐나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 어느 것이 장기적으로 가치가 있고 어느 것을 무시해도 좋을지 알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선택하고 폐기하는 이 작업을 실시간으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데이터는 너무나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로 확산되던 1997년 당시 웹 페이지가 바뀌거나 사라지기까지 유지된 평균 시간은 44일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100일에 불과하다.
저자는 디지털 기억의 미래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시선을 과거로 돌려 방대한 인간의 역사를 기록과 기억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한다.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등장하고, 인쇄 시대의 원주민인 몽테뉴가 금속활자 시대를 거쳐 개인의 생각을 기록한 방식이 포함된다. 또 가치 있는 책을 모두 모아 ‘보편 도서관’을 건립할 원대한 꿈을 꾼 책 수집광 토머스 제퍼슨의 야망이 드러나고, 17세기 과학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물론이 세상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이 생생히 그려진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기록되고 응고화하는지 보여 주면서, 소위 기억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작동 원리를 풍부하게 해설한다.
기원전 5세기에 소크라테스는 문자의 발명을 두고 우려했다. 그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쓰는 것을 지식과 기억의 외주화로 보았으며, 이 때문에 인간은 지혜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과 경험을 디지털 메모리에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우려를 소크라테스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인류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문자로 기록해 남겨 왔지만, 그 탓에 지혜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기록과 기억의 속성은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디지털 기억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쟁점은 ‘미래에 누가, 어떻게 우리의 기억을 관리할 것인가’다. 기술은 기억을 무한대로 저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디바이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을 제공하는 구글 같은 사기업은 이윤 추구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2010년, 트위터는 사용자들이 업로드한 대량의 트윗을 기록물로 보고 의회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민간 기업과 공공 기관의 공조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을 보존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판단하고 공공의 이익을 유지하려는 의무감이 있는 주체가 나서야 한다. 저자는 세계 각지의 도서관, 기록 보관소, 박물관, 인터넷 아카이브 등 공공기관과 비영리 기관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거대한 변화의 파도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 충격의 여파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한다고 썼다. 그러나 미래를 절망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혁신의 시기마다 그에 따른 우려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잘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저자는 디지털 신세계에 도달한 인류가 집단 기억을 후세에 잘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를 관리하는 법, 미래 세대를 향해 인류의 대화를 담는 법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책 속으로 종이책이 아니라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것이 우리의 공감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오늘날의 논쟁은 소크라테스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한다. 둘 다 암기를 통해서든 읽기를 통해서든 누군가의 생각과 말을 되새기는 일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것이 사람의 본성을 더욱 고귀하게 발달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사람들은 종이책이 없어진다면 공감 능력을 연마할 수단이 없어질 것이고, 이 혼잡한 행성은 갈수록 우리의 연민을 촉구하는데도 우리는 거기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정신적 기질을 계발할 수단이 없어질 거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매체와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 버리고 있다. 사람들이 지금 소크라테스의 입장에 서서 인쇄 문화를 잃는 것이 우리의 도덕 발달을 후퇴시킨다며 애석해 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28쪽, ‘왜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멀리했을까?’에서
한 개인이 읽었던 책의 원본을 보면, 특히 주석이 달려 있는 경우에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때가 많다. 이는 책 주인의 마음에 돋보기를 비춰보는 것과 유사하다. 여백에 쓴 글, 다시 말해 여백이나 행간을 비집고 힘겹게 끼적인 촌평, 불만, 메모, 낙서를 읽는 것은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책에 맹렬하게 주석을 남겼다. 제퍼슨이 프랭클린에게서 얻은 책 한 권에는 주석이 폐이지를 가득 메우고 양 페이지 사이 가운데 여백까지 채우고 있는데, 이는 책에 기술된 관점의 어리석음과 허위에 분노했던 프랭클린을 열정을 기념하게 해 준다(“무례한 거짓”, “또 다른 허위 진술”, “이건 제일 터무니없는 주장이군” 등).
-182쪽, ‘지식의 자유로운 공유를 허하라’에서
디지털 기억은 생물학적 기억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딱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쉽게 겹쳐 써지고, 일어난 변화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업데이트된다. 디지털 기억을 이용하게 되면서 우리는 고정되고 안정적인 물리적 기억의 결정적인 이점을 한 가지 잃는다. 고정되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로 정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리적 저장의 이점을 디지털 세계 속에서 어떻게 재창조하느냐는 디지털 데이터를 장기간 보존하는 기억 체계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주제다.
-245쪽, ‘디지털 기억의 약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