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학적으로 더 눈여겨보아야 할 세대갈등은 베이비부머 1세대와 베이비부머 2세대 간의 갈등이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1세대는 1955~64년생, 2세대는 1965~74년생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58년 개띠’와 ‘70년 개띠’ 간의 대결이랄까.
이 두 세대는 인구 크기가 얼추 비슷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중 베이비부머 1세대가 이제 막 은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은퇴와 관련해 노동시장에 만들어놓은 대표적인 작품이 ‘정년연장’이다. 이들은 은퇴가 목전에 닥치자 고용을 안정화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은퇴연령을 60세로 늦췄다. 자신들의 노후를 그렇게 해서 조금이나마 안정시켜둔 것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은퇴는 해야 했다.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면 그다음으로 2세대가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나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우리 2세대들은 어떤 대책을 세울까?
베이비부머 2세대는 1세대보다 인구가 더 많다. 그리고 이들은 공부도 더 많이 했다. 바야흐로 지금 한국사회의 주도권은 이들 2세대가 쥐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베이비부머 2세대라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지금은 기득권을 쥐고 있지만 경기가 어렵고, 자식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도 없다면?
은퇴를 아예 없애면 된다. 은퇴 없이 평생 일하는 신화를 만드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세대는 크기가 작아 힘이 없는 데다 상대적으로 사회생활도 늦게 시작했으니 경험도 많지 않다. 2세대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국가도 좋을지 모른다. 이들이 한꺼번에 은퇴하면 국가가 이들에게 복지정책을 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러니 2세대가 은퇴하지 않는 게 국가로서도 나쁘지 않다. 2세대는 대부분 아직 40대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몇 십 년은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 뒷세대들의 일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들은 정치적 힘이 없으므로 2세대의 계획에 맞서 싸우지 못한다.
오히려 반발은 엉뚱한 데서 온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1세대들이 한마디 한다. ‘뭐야, 왜 너희만 은퇴 안 하고 계속 있어? 너희나 우리나 나이차도 별로 안 나는데. 그럼 나도 돌아갈래.’
- 3장 ‘저출산+고령화, 전쟁 같은 밥그릇 싸움’
1972년, 그 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는 100만 명이 넘었다. 그들이 부모가 된 2000년대 초반, 해마다 태어나는 아이는 50만 명을 넘은 적이 없다. 한 세대 만에 출생인구가 반 토막 난 것이다.
신간 '정해진 미래'는 인구학적 관점이라는 기준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전략을 알려준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이 책에서 저출산 세대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될 미래까지의 전체적인 사회변화상을 보여준다. 반 토막 난 출생인구는 당장 부동산과 가족관계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대형 아파트 수요는 벌써부터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소형 아파트에 수요가 몰릴 테니, 미리 사놓으면 돈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 것인가?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점점 활발해지면서 맞벌이가 보편화될 텐데, 그러면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까? 이 고민은 조부모와의 관계와 사교육 시장에 변화를 불러온다. 그뿐인가. 학생이 점점 줄어들 테니 학교와 교사가 남아돌게 될 것이다. 현재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인 교사는 언제까지 ‘철밥통’일 수 있을까? 지금도 학과 통폐합 등 정원 축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저출산 세대가 성장함에 따라 인구변화의 여파는 가정에서 학교로 그리고 노동시장 등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다. 노동력이 부족해지니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에는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까? 줄어든 인구를 대상으로 기업은 어떻게 상품을 판매해야 할까? 산업구조는 어떻게 변화할까? 다수를 점하게 될 고령층에는 어떤 노후가 기다리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국민연금은?
인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미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며, 설명 가능하다. 그것을 아는가 모르는가가 개인과 사회의 운명에 큰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인구변화가 이끌어내는 미래의 변화된 사회상을 조금이나마 눈에 잡히는 증거와 함께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기준으로 자신의 앞날을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정해진 미래'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비관적 결정론을 설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해진 것은 사회적 미래일 뿐, 개인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저출산·고령화가 그려내는 미래는 분명히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나빠질 미래를 그저 따라가기만 할 것인가? 인구학이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삶이 그 안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성찰한다면, 비록 객관적으로 좋지 못한 여건이라 해도 자신의 미래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역할이다.
책 속으로자, 여러분이 아파트 투자를 고려한다면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매력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면 1~2인 가구가 살기 적당한 작은 아파트를 사야 할까? 인구변화 추이를 보고 작은 아파트를 샀으니, 이 투자는 성공했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자꾸 물어본다는 것은 답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맞다. 실패한다. 왜 그럴까?
첫째, 그동안 부동산 가격은 대형 아파트가 올려놓고 작은 평수가 따라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대형 아파트 가격이 무너지면 다른 평형 아파트도 같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형 아파트의 몰락과 함께 부동산 불패신화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단순히 가족이 적어진다는 사실만 보아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의 1~2인 가구는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일단 젊은이들은 집을 살 여건이 안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20~30대는 이전 세대의 그 연령대에 비해 구매력이 현저히 낮다. 이전 세대들이 20대 초중반에 경제활동을 시작했던 반면 현재의 20~30대는 구직난 때문에 30대가 되어야 경제활동을 시작하기 일쑤다. 이들이 10년 뒤 30~40대가 되어도 당연히 지금의 30~40대에 비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을 터이므로, 투자를 목적으로 아파트 구매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1~2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노인이고 이 비중이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사회가 고령화되는 만큼 가구도 고령화된다. 2025년이 되면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0%를 차지하고, 1~2인 가구의 65%는 노인인구로 채워질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시장은 사고 파는 사람이 많아야 활성화된다. 특히 부동산은 거래가 계속 있어야 집값이 올라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거래에 수동적이 된다.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사고 파느니 속 편하게 그냥 안 사고 안 팔겠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우리나라에 1~2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소형 아파트 시장이 활황이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이 그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결국 시장이란 수요-공급 원칙의 지배를 받게 돼 있다.
- 1장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삼아라’
2015년에는 한 초등학교에 평균 약 450명의 학생이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학년당 75명인 셈이다. 한 학급 정원은 약 23명이므로, 산술적으로 따지면 2015년 초등학교에는 학년당 3개 남짓의 학급만 있으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교사의 경우 1명당 약 15명의 학생을 지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한 학년에 10~15학급이 있었던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많이 변화했음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선호하는 판단기준인 ‘OECD 국가 평균’ 초등교사 1명당 학생 수는 2013년에 15.9명이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16년의 우리나라 초등학생 규모에 필요한 교사의 수는 16만 5232명이 된다. 이는 2015년 재직 중인 초등교사 18만 2658명보다 1만 7426명이 적은 수치다. 그러면 그만큼 해고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10년 후인 2025년에는 지금보다 교사의 수가 약 2만 2000명 축소되어야 한다. 2015년의 교사 대 학생 비율인 15명을 계속 유지한다고 했을 때 2025년의 적정 교원 수는 16만 명이 안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015년 규모의 12%를 감원해야 나오는 숫자다.
- 2장 ‘저출산 시대, 모든 것이 공급과잉’
미국에서는 매년 인구학회가 열린다. 내가 처음 학회에 참석했던 것은 박사과정을 밟던 2000년이었다. 그때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인구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없었던 당시 한국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던 듯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는 희소성이 있으니 졸업하면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있겠다.’
저출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그럼에도 한국에서 인구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희소하니 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예측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 되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한국에서 연락을 해왔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인구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은퇴한 후 몇 년 동안 후임이 없었는데, 인구학 박사이니 한번 지원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그러고 2015년에 역시 미국인구학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내심 놀랐다. 내게 와서 인사하고 가는 한국 학생이 15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미국 명문대학에서 인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한국의 선배 학자라고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처음에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도 인구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이 졸업하면 뭘 하지?’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은 잠재적 실업자였다. 2000년 당시 나는 잠재적 교수였는데.
내가 학위를 받을 때는 미국의 베이비부머가 은퇴하던 시점이어서, 미국의 교수임용 수요가 많았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그 시장이 모두 닫혔다. 미국도 경기가 좋지 않으면 교수들을 새로 채용하지 않는다. 설령 채용하더라도 학문적 역량이 비슷하다면 백인이나 흑인 여성을 뽑지 아시아 유학생을 우선순위에 놓지는 않는다. 그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미국 대학이 이런 상황이다. 한국은? 이미 말했듯이 정원을 채우지도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 2장 ‘저출산 시대, 모든 것이 공급과잉’
인구학에 ‘이스털린-프레스턴 이론’이 있다.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과 프레스턴(Samuel Preston)은 매우 저명한 미국의 인구학자들인데, 그들이 각기 다른 연구에서 코호트의 크기가 자살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마디로 코호트의 사이즈로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사람이 자살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처럼 코호트 크기가 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입시, 취업, 결혼 등 경쟁해야 하는 시기에 자살률이 높았다.9 그러다 은퇴해서 경쟁에서 벗어난 후에는 다른 코호트보다 자살률이 낮았다. 왜냐하면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노인이 나밖에 없으면 외롭고 힘이 없으니 자살률이 높은데, 나 같은 노인이 많으면 외롭지도 않고 정치적 힘도 세서 요구할 것도 많아진다.
우리나라에 적용해보지는 않았지만, 성립 가능할 것 같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지만 그중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살률이 유독 높다. 이것을 두고 노인의 삶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이론을 적용하면 이는 인구집단의 크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고령자 집단이 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절대적인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 2000년대부터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급격히 늘었다. 안 그래도 노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데 인구 규모는 크지 않고, 혼자 사느라 교류도 없으니 자살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베이비부머들은 은퇴 후에도 혼자 지내기보다는 또래들을 만나고 사회적 활동도 하며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지낼 확률이 높다. 그에 따라 노인의 자살률도 낮아질 것이다. 마치 해외에 나갔는데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처럼, 나밖에 없는 듯한 고립감에서 벗어나면 자살률도 떨어지게 돼 있다. 실제로 일본은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5% 이상인데, 그들의 자살률은 중년층에 비해 낮다.
반대로 중년층의 자살률은 점차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20~30대 말이다. 이상한 점은 이들의 자살률은 지금도 이미 높고, 계속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쟁할 시기에는 코호트가 커야 자살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코호트 크기가 작은데 왜 그럴까?
추측건대 세대 간 경쟁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쟁은 대개 같은 연령대끼리, 즉 자신의 코호트 내에서 하게 마련인데 지금 20~30대들은 윗세대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코호트 크기가 너무 작은 탓에 세대 간 경쟁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좌절이 더 큰 것 아닐까.
- 3장 ‘저출산+고령화, 전쟁 같은 밥그릇 싸움’
실제로 OECD 주요국의 경우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은 0.317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여성고용률이 높은 나라가 출산율도 높다는 뜻이다. 저출산 대응에 성공한 사례로 알려진 스웨덴의 경우, 여성 경제활동참가율(2009년 70.2%)과 출산율(2010년 1.94명)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12년 기준 55.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62.3%보다 낮다. 남성의 대졸자 경제활동참가율은 92.4%로 OECD 평균인 91.7%보다 높지만, 여성 대졸자는 62.4%로 OECD 평균인 82.6%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을 보면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참가율이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여성들이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사회활동을 하는데도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참여가 많아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들의 배울 기회와 사회참여를 낮춰 과거로 되돌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발전수준은 이미 그 정도는 넘어섰다. 오히려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와 권리를 주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 여성, 특히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저출산 문제를 푸는 열쇠가 숨어 있다.
- 5장 ‘작고 안정적인 한국을 준비하자’
아이가 없는 내 친구 부부가 3D 심야영화를 보고 와인 한잔씩 했다고 했다. 나도 그 즈음 영화를 보긴 봤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애니메이션(그 또한 3D는 3D였다)을 보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왔다. 내가 친구에게 농담 한마디 했다. 넌 정말 세금 많이 내야 한다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세금 내고 네 연금 부어줄 테니까. 그랬더니 친구가 응수했다.
“지금 네 딸이 교육받는 거, 내 세금으로 하는 거야.”
이것 봐라? 조금 약이 오르면서 말 나온 김에 손익계산을 확실히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세금 내서 우리 아이들이 교육받는 것과, 우리 애들이 세금 내서 네가 연금 받는 것 중 누가 더 이득이냐? 우리 딸은 기껏해야 12년 교육 혜택을 받는데, 너는 65세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받을 거 아냐.”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불합리한 정책 아닌가? 복잡하게 인구학적 관점까지 따질 것 없이, 개인의 입장에서나 국가의 정책에서 보더라도 가장 불합리하게 배분되고 있는 항목이 복지정책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 또한 ‘복지’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인구가 늘거나 줄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전제조건 하에 성립된다. 그래야 수입과 지출이 안정돼 페이고(pay as you go) 원칙이 작동할 수 있다. 최소한 세금을 내는 연령대보다 받는 연령대의 크기가 크지 않아야 한다. 이런 조건이 전제되어야 복지정책이 가능하다. 마치 조로아스터교에서 2000년째 불씨를 살려놓는 것처럼, 불 꺼지지 않게 계속 유지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을 꺼뜨려서도 안 되고, 너무 세게 일으켜서 불을 내서도 안 된다. 적절히 불쏘시개를 넣어가며 유지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인구를 줄여버렸다. 그러고는 저출산 정책을 복지의 차원에서 풀려고 하니 엇박자가 나는 것이다.
- 5장 ‘작고 안정적인 한국을 준비하자’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한 두 번째 이유는 미래에 인구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저출산 흐름은 2002년부터 계속되어 2017년까지는 40만 명대 출산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급격히 출산아가 줄어든 와중에도 15년 넘게 출생인구가 40만 명대로 유지되는 것은 우리나라 아동인구가 매우 안정적으로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인구의 크기가 급격히 변화하면 사회구조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완만한 변화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을 계기로 이전에 비해 사회규모를 크게 줄여야 했고, 그에 따른 진통을 겪는 중이다. 지금의 고통을 다스리며 정부와 기업, 개인의 체질과 전략을 적절히 바꿔나간다면 장기적으로 인구와 경제 그리고 사회구조는 잘 조율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나는 앞으로 출산할 여성이 줄어들 것이므로 출산율이 1.5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출산아 수는 5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지금처럼 1.2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3~4년 내에 출산아 수는 30만 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출산율이 1.3 정도로 올라간다면 한 해 40만 명대의 출산아 수를 앞으로 10년 이상 더 유지할 수 있다. 15년도 적지 않은 시간인데 여기에 10년이 더 추가된다면 인구는 상수가 될 수 있다. 30년 동안 한 해 출생아 수가 90만~100만 명에서 40만 명대로 변화하느라 인구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는데, 반대로 25년간 한 해 출생아 수가 40만 명대로 유지될 수 있다면 인구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작동하게 된다.
즉 우리 사회가 앞으로 약 10년간 앞에서 말한 개념의 다운사이징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 이후 20~30년은 매우 안정적인 경제활동인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 5장 ‘작고 안정적인 한국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