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현대적 해석과 재조명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고운기 교수가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5 - 모험의 권유'를 냈다.
이 책은 수로부인, 거타지, 주몽, 혜통 등등 우리 설화의 주인공이 펼치는 아홉 가지 모험 스토리를 들려준다.
"실로 우리 사는 일 자체가 모험 아닌 바 아니니 살자면 당연 모험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거기서 휩쓸리지 않게 능동적으로 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우리네 도전이다. 이즈음의 젊은 친구들이 그조차 하지 않으려 해서 일종의 권계(勸誡) 삼아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 책은 '삼국유사' 속에 잠들어 있던 150개 이야기 중 아홉 개를 꺼내와 이를 현대에도 충분한 의미와 활용성을 가진 '모험 스토리'로 되살려냈다. 이는 『삼국유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일 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의 원천 소스로도 충분히 활용할 만하다.
9인 9색,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 스토리수로부인. 순정공의 아내이자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 지금껏 모험 주인공으로서 다루어진 적이 없지만, 여성 모험자로서의 모습을 부각해볼 만하다. <헌화가>의 주인공이자, 가는 곳마다 신물이 납치를 할 만큼 빼어난 자태와 미모를 지녔다. 처음에는 납치의 형태로 모험을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적극적으로 즐기며 헤쳐나간다.
거타지. 진성여왕 때의 활을 잘 쏘는 사내. 사신으로 가는 왕자의 호위 무사로 뽑혀 길을 떠난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를 막을 제물이 되어 홀로 섬에 남고 만다. 섬에 사는 서해 신이 거타지에게 자신과 가족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는 뛰어난 활솜씨로 위기를 극복한다. 서해 신은 그 보상으로 자기 딸을 꽃가지 하나로 변신시켜 그의 품속에 넣어준다.
주몽. 고구려의 맨손 창업자. 주몽은 어려서부터 그 재주가 비상했는데, 금와왕의 아들들이 그를 시기해 해코지하려 했다. 주몽은 어머니에게 귀띔을 받고, 오이 등 세 사람을 친구로 삼아 길을 떠났고 고생과 모험 끝에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을 정한다.
혜통. 크게 명성을 떨친 신라의 승려. 어미 수달의 새끼 사랑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 후 당나라에서 무외 삼장을 멘토로 삼아 우여곡절 끝에 가르침을 받는다. 당나라 공주의 병을 고치지만 공주에게서 빠져나온 이무기로 인해 당나라와 신라를 오가는 장대한 스케일의 모험을 펼친다.
탈해. 신라의 왕위에 오른, 용성국 출신의 사내. 알에서 태어난 탈해는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짝에 실려 제 나라를 떠나는데, 아진포의 아진의선이 탈해와 일행을 거둬들인다. 꾀를 내 호공의 집을 빼앗는 것을 보고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아본 남해왕이 탈해를 사위로 삼는다.
무왕. 백제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왕. 어려서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서동’이다. 어머니가 남쪽 연못가에서 용과 정을 통해 서동을 낳았고, 서동은 진평왕의 딸 선화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서울로 간다. 아이들을 꾀어 선화를 위기에 빠뜨려 결국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선화를 통해 금의 가치를 알게 된 서동은 금을 잘 써서 왕위에 오른다.
보양. 운문사를 중창한 승려. 중국에서 불법을 전수받은 보양은 돌아오는 길에 서해 바닷속의 용궁을 방문하고 이목이라는 용의 아들과 돌아온다. 가뭄이 들자 이목이 비를 내리는데 하늘님이 이목의 권한 남용에 노하여 죽이려 한다. 보양이 하늘의 사자에게 배나무를 가리키자, 사자가 배나무에 벼락을 치고 돌아간다.
비형랑. 진지왕의 아들로 반인반수의 캐릭터. 혼령인 아버지 진지왕과 사람인 어머니 도화 사이에서 태어나, 밤에는 귀신과 낮에는 사람과 어울려 산다. 진평왕이 비형의 능력을 인정하여 집사에 임명한다. 귀신 가운데 길달을 데려와 흥륜사 남쪽에 정자를 짓는데 그가 배신하고 도망치자 잡아다 죽인다. 사람들은 비형을 찬미하는 시로 귀신을 쫓는다.
장춘. 가장 비자의적인 모험의 주인공. 가난하게 사는 보개의 아들 장춘은 상인을 따라나섰다가 실종되는데, 난파한 배에서 겨우 살아남아 오나라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신라에서 온 스님이 같이 돌아가자 하여 그를 따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에 도착한다. 어머니가 만장사의 관음보살 앞에 기도 드렸더니 장춘이 홀연히 나타난다.
'쿠쉬나메'의 이야기. 아울러 지은이는 이슬람에게 망한 사산조 페르시아 왕가의 아들이 중국을 거쳐 신라에 이르고, 신라 왕가의 공주와 결혼하여 왕조 복구의 꿈을 안고 귀국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쿠쉬나메』(다르유시 아크바르자데)를 소개한다. 시대적인 배경은 7세기 중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점의 이야기이다. 비록 픽션이라지만 이 책의 저자는 무슨 까닭으로 신라를 배경으로 삼았으며 얼마만큼 신라를 알았을까? 아직 초기 연구 단계지만 신라와 우리 고대사회의 풍경이 두텁게 복원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으로, 연구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 모험 이야기의 넓이와 깊이가 한층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책 속으로최초의 모습은 납치임이 분명하나, 그렇게 시작한 비자발적인 모험의 길을 수로부인은 어느덧 즐기는 듯하다. 이는 세상과 다른 곳에 다녀온, 부인의 옷에서 묻어나는 향기로 증명된다. 용궁의 생활을 밝히지 않았거니와,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나후쿠바와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로부인’ 조는 ‘101화’에 비해 더욱 서사화된 모험 스토리인 것이다. ― p. 107 (제1장 수로부인-꽃을 받은 여자)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모험담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우선 이야기가 여로에서 발생하였다. 거타지는 사신으로 가는 왕자의 호위 군사로 길을 떠났다. 제물로 섬에 홀로 버려진다. 위기이다. 그런 거타지에게 서해의 신이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적대자로서 늙은 여우가 등장하였다. 본격적인 위기이다. 그러나 그는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출중한 활 솜씨의 소유자이다. 성공한다. 당연히 보상이 따른다. 원문에서는 보상으로서 서해의 신이 거타지에게 베풀어주는 조치가 나열된다. 거타지와 서해의 신 사이에는 조력자/수혜자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교차되면서 이어진다. 이제 귀환이다. 여기서 서해의 신은 적극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거타지가 귀국한 다음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는 대목으로 마무리된다.
전형적인 한 편의 모험 이야기이지 않은가. 기실 한 사람의 평범한 궁수(弓手)가 작지만 작지 않은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어쩌면 『삼국유사』의 이야기 가운데 모험담의 진수가 아닌가 한다.
― p. 144 (제2장 거타지-꽃을 품은 남자)
서동 이야기는 무거운 정치 드라마가 아닌 영웅의 모험담으로 시각을 바꾸어 접근했을 때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선화공주로 바꿔놓으면 어떻게 될까?
대체적으로 모험담의 주인공은 그 캐릭터가 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서동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주인공이 서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서동을 주인공으로 본 이야기는 기이한 탄생부터 시작한 탈일상-시험-시련-보상의 모험 이야기 구조에 적합한데, 선화공주를 주인공으로 놓았을 때 또한 그렇다. 둘은 교차하는 주인공이다. 아니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다.
더욱이 선화공주 시점의 이야기는 서동 시점의 이야기보다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먼저 서동은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떠난 것이 탈일상의 원인이지만, 선화공주는 서동이 퍼뜨린 동요 때문에 문란하다는 오해를 받고 비자발적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현대적 모험담의 구조에 더 맞는다.
― pp. 241~242 (제5장 『삼국유사』의 모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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