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투 트랙 민주주의'는 한국민주주의의 변화과정 자체를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분석한 책이다. 이는 기존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이나 사회운동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뛰어넘는다.
저자 조희연은 투 트랙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정치로서의 사회적 정치와 일체화된 적이 없고, 오히려 제도화된 정치와 정당정치 '외부'의 사회적 정치, 그 일부로서의 운동정치와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에게 있어 당연히 정치는 확장된 개념을 갖는다. 통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가 주로 정당, 의회, 선거를 통해서 작동하는 것처럼 상정한다. 이 민주주의의 중심에 바로 정당정치가 존재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중심에 정당이 있다고만 생각하는 많은 정치학자들은 제도정치에 도전하는 운동정치가 다양하게 펼쳐질 때, 역으로 이를 비판하면서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당연히 저자는 이러한 견해에 비판적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체제하에서 정치의 중심을 이루는 제도정치 는 '인민의 정치'의 일부일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시민혁명을 통해 의회민주주의가 출현했다. 이는 인류사의 큰 진전 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 시민혁명은 자기 삶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인민 주체의 정치'의 극히 일부만을 대의민주주의가 공인되는 대표자 정치로 제도화했으며 나머지는 '비(非)정치'로 외부화했다. 근대 시민혁명을 통하여 상층계급에 한정되던 정치가 '인민'에게 개방되고 '인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었지만, 반대로 '인민'이 위임한 대표자 정치가 정치의 전부가 되고 정작 '인민' 자신의 다양한 정치적 행위는 비정치가 되었다.
저자의 시각 에서 보면 제도정치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인민' 주체의 정치는 사회운동, 운동정치, 시민사회운동, 집단행동 등의 형태로 주변화된다. 이것이 협애화된 정치가 된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에서 보면, 서구 역시 민주주의의 정치가 제도정치 혹은 정당정치로 일체화되거나 협애화될 수 없다. 한 사회가 안정적인 시기에는 이러한 '협의의 정치' 모습이 지배적이고 대중들은 그렇게 인식한다.
그러나 협의의 정치가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와 괴리되는 시점에는, 이 협의의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는 무너지고(최소한 정치의 벽은 낮아지고) 협의의 정치에 의해 수용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인민의 정치 혹은 대중의 정치가 제도정치의 경계를 횡단하며 자신의 정치적 요구들을 드러내고 제도정치의 변화를 촉구한다.
당연히 제도정치는 운동정치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며 제도정치 내의 기성정당들 간의 타협적 공존은 해체된다. 그럴 때,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사이에 다양한 '경계정치'가 출현한다. 저자가 보는 경계정치는 바로 제도정치에 의해 배제되지만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사회적 정치가 담지함으로써 대중들이 오히려 그러한 사회적 정치 혹은 운동정치를 광의의 진정한 정치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70-80년대 '재야'나 대만의 70-80년대 당외(黨外)운동, 80년대 동유럽에서의 자유노조운동 등 다양한 반체제 운동 등이 이러한 경계정치의 의미를 갖는다.
이에 맞서 제도정치, 특히 제도정치 내의 지배적 정당이나 집단들은 대중의 불만을 수렴하거나 그 인물을 수혈하는 방식으로 제도정치의 재안정화를 도모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 민주주의의 구성적 각축의 보편적 양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형적 모습과 보편적 모습이 오히려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더욱 선명하 게 드러난다고 본다.
저자는 최근의 한국정치의 상황, 더 나아가 글로벌 신자유주의와 그에 따른 대중들의 삶의 위 기(사회의 위기) 속에서 거의 모든 사회의 정치가 이런 위기적 역동성을 드러낸다고 본다. 당연히 제도정치와 인민 의 정치의 갭 속에서 트럼프 현상이나 브렉시트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제도정치와 대중의 괴리가 커진 상황, 그 근저에 존재하는 사회적 위기는 기존의 제도정치의 위기를 낳고 이는 다양한 '이탈적' 정치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더욱 선명하게 경험해온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이론화하여 서구의 민주주의론을 재검토하고 한국적인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한국 정치사회학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하에,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선도적으로 전개하여 온 최장집 교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투 트랙 민주주의론'을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일종의 '한국 정치 사회학의 누적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그의 일련의 저작들을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뛰어넘는 '한국적' 민주주의론을 정립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좌파 반신자유주의론을 전개하여 온 손호철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는 정치의 공간이 없다는 취지로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이렇듯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손호철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저자 나름의 투 트랙민주주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에 따라 한국현대 민주주의의 부침을 분석하 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나 서구 이론의 적용대상으로 한국사례를 생각하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전통은 존재할 수 없고, 우리끼리 인용하는 관행이 정착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과학의 토착화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경험과 다른 한국 및 아시아적 경험을 '새로운 준거'로 하여 새로운 '한국적 이론화'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투쟁을 단지 '아주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경험이 드러내주지 못하는 어떤 일반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사례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분석 속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핵심적인 특징을 저자는 '민주화의 동학'이 작동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이른바 반독재 민주정부의 집권기인 97년 체제는 '세계화의 동학'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의 동학과 세계화의 동학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가하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반독재세력은 독재와의 저항에서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독재 세력은 역설 적으로 집권세력이 되면서 세계화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고 패배해갔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사의 시기구분을 위해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50년대의 극우반공분단체제, 61년 이후 87년까지의 개발 독재체제,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 2008년 이후의 포스트민주화체제로 나누어, 통사(通史)적으로 한국현대사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저자 스스로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전개과정을 일관되고 총체적으로 파악하 기 위한 연구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조희연교수는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성공회대 교수로서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어 서울교육행정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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