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을 금지한 소위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고가 메뉴 식당들의 예약은 뚝 끊겼지만, 저렴한 메뉴의 식당은 여전히 예약이 꽉 차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사회 청렴 회복을 위해 공직자·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 그 배우자까지 약 400만 명을 대상으로 식사비 3만 원·선물비 5만 원·경조사비 10만 원 제한을 명시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전 한 고급 식당의 예약현황부. 모두 7팀 24명이 예약돼있다.(사진=김미성 기자)
김영란법 시행 첫날 한 고급식당의 예약 현황부. 모두 3팀 8명이 예약했다.(사진=김미성 기자)
◇직격탄 고급 식당 "대책 없이 시행된 법 원망스러워"28일 오전 관공서가 몰려있는 대전 서구의 한 전복 요리 식당.
이 식당의 경우 전복찜, 전복구이(5~6인분)가 18만 원인데 김영란법에 따라 1인당 식사비 3만 원에 딱 맞거나 조금 넘게 된다. 음료 하나만 시켜도 3만 원을 초과하는 셈이다.
사장 민모(57·여) 씨는 "9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예약이 없는 건 처음이다. 오늘 점심 예약은 3팀이고 저녁은 텅 비었다"며 "우리 가게는 하루 전에 예약을 안 하면 방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약 현황부를 살펴보니 방이 모두 예약돼있던 지난주와 달리 이날 점심 예약은 3건에 불과했고 저녁 예약은 텅 비어있었다.
이어 민 씨는 "김영란법 세트를 만들라고 하지만 5년산 전복을 사용하다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전복을 바꾸면 손님께 내놓을 수가 없다"며 "대책도 없이 법만 시행하면 우리뿐만 아니라 하루 4, 5건씩 연결해줬던 대리기사들과 인근 술집도 다 망한다. 당장 어떡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임대료와 재룟값은 계속 오르는데 식사비 상한선만 정해놓아 폐업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급 횟집도 상황은 마찬가지.
횟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이제는 3만 원에 맞춰 음식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양을 줄이면 손님들이 단번에 알아차리는데 우리가 돈을 덜 버는 수밖에 더 있겠냐"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김영란법 세트를 내놓는 식당이 느는 추세다. 음식의 양을 조금 줄이는 대신 가격을 3만 원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손님이 더 늘지 않을까요?" 1만 원 이하 식당 기대감 고조반면 1만 원 아래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오히려 김영란법이 반가운 분위기다.
6500원에 김치찌개를 팔고 있는 이동원(45) 씨는 "오늘만 예약이 35명 잡혀있다"며 "김영란법으로 인한 피해는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손님이 더 늘 거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처럼 저렴한 가격대의 식당에는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예약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듯 자리를 떠났다.
한식 뷔페를 운영하는 최귀용(48) 씨 역시 "김영란법이 시행됐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라며 "패밀리레스토랑이나 고급 식당들은 한 끼 식사에 3만 원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의 가격이기 때문에 타격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오히려 손님이 더 늘 것 같다"며 기대를 보였다.
이 식당은 6000원에 매일 다른 메뉴의 한식을 판매하고 있다.
법 시행으로 그동안 몰래 이뤄졌던 과도한 접대문화가 개선되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법 규정의 해석과 대응에 대한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