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요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리거나,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퓨전 요리를 내는 것.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수많은 '햄릿'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햄릿'이 등장했다.
서울시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창작극 '함익'은 햄릿을 현재로 각색한 작품도, 번안한 작품도 아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퓨전 요리이다. 그 맛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도발적이고 방자하다.
김은성 작가.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3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함익'의 대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햄릿'은 인류의 고전으로 우리가 아끼고 잘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함부로 갖고 노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용기를 내봤다"고 고백했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 누가봐도 완벽한 삶을 사는 그녀지만, 내면은 곪아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됐다고 의심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처럼 살아왔다. 그룹 산하 대학교에서 연극학과 교수로 일하던 중 학생들의 '햄릿' 공연 지도를 맡게되고,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학생 연우를 통해 잠겨 있던 내면의 빗장이 조금씩 풀린다.
'함익'이라는 이름은 김은성 작가가 '햄릿'을 한국식으로 만든 것이다. 김 작가는 "5년 전 장난 삼아 '햄릿'을 우리 이름으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라는 고민에서 '함익'을 생각해냈다고 했다. 한자 이름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굳이 붙이자면 '날개 익(翼)'을 써, 날아간다는 의미로 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함익'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핵심은 '고뇌, 갈등'이다. '함익'은 고전 '햄릿'의 복수라는 서사를 배후로 밀어냈고, 행간에 숨어 있던 햄릿의 심리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을 현재로 불러냈다.
서울시극단 창작극 '함익' 컨셉 사진. (사진=세종문화회관 제공)
'고뇌, 갈등'하는 햄릿은 특별한 인물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에 대한 고뇌가 아니다.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다시 말해 '살아있는 채로 살 것인가, 죽어 있는 채로 살 것인가'이다.
가면을 쓴 인형처럼 살았던 '함익'에게 이 질문은 계속 인형처럼 살 것인지, 가면을 벗을 것인지를 고뇌하게 한다.
배우들 역시 '함익'을 통해 그런 '햄릿'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연우 역을 맡은 배우 윤나무는 "햄릿을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며 "새로웠다. '햄릿'은 우리 옆에 있는 똑같은 보통사람이었구나"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함익 역의 배우 최나라는 "고독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는데, '함익'을 연습하면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결단하기까지 고뇌하고 두려워하고 갈등하는 것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뇌와 갈등이 '함익'으로 대표된 셈이다.
서울시극단의 예술감독이자 2016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김광보가 연출을 맡았다. 이날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며, 세종문화티켓과 인터파크를 통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은 2만원~5만원.
문의 : 02-399-1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