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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11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아우디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서를 접수했다. 임의설정, 즉 배출가스장치 조작에 대한 명시적인 시인을 받지 않은 채 리콜 절차는 개시됐다. 오히려 폭스바겐은 리콜 지연으로 최대 800억 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대기오염 피해를 유발하고도 책임을 면했다.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제시한 리콜을 검증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차량교체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환경부 스스로도 차량교체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폭스바겐처럼 제조사가 뻔뻔하게 리콜 지연전략으로 일관하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배출가스 장치 조작을 둘러싼 정부와 폭스바겐 간의 11개월 줄다리기는 버티기로 일관한 폭스바겐의 판정승으로 기울고 있다.
◇ 끝까지 조작 인정 안한 폭스바겐환경부는 6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전날인 5일에 제출한 티구안에 대한 리콜 계획서를 접수했다. 동시에 리콜이 적정한지를 가리는 검증절차에도 착수했다. 지난해 11월 26일 아우디폭스바겐 차량 15종, 15만6000여 대에 대한 리콜 명령이 내려진지 11개월 만이다.
폭스바겐은 올 초, 단 한 장에 불과한 부실하기 그지없는 리콜계획서를 우리 정부에 제출했다. 환경부는 곧바로 리콜 서류를 돌려보내며 폭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리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개월은 배출가스 장치조작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인 실랑이였다. 폭스바겐은 끝까지 버티기로 일관했고, 결국 환경부가 지난달 30일까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으면 임의설정으로 간주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침묵을 지켰다. 환경부는 이를 폭스바겐이 임의설정(조작)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이후 폭스바겐이 문제차량의 엔진에 '두 개의 모드'가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임의설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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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폭스바겐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작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경우, 향후 형사소송은 물론 차량 소유주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결국 폭스바겐은 명시적으로 임의설정을 인정하지 않아 향후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그저 임의설정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태로 어떻든 리콜 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 차량교체 명령보다는 리콜 받아들일 가능성 더 높아 일단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제시한 리콜 방식(소프트웨어 및 부품교체)으로 결함이 시정되는지 검증에 들어갔다. 리콜 이후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실외 주행에서도 꺼지지 않고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연비도 5% 이상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다.
둘 중에 어느 한 조건이라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환경부는 차량 전부를 바꿔주는 차량교체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일견 강경한 방침으로 보이지만, 실제 차량교체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홍동곤 과장도 "독일에서 리콜이 승인됐고, 연비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독일에 판매된 차량과 우리나라에 판매된 차량은 동일하기 때문에 리콜 검증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홍동곤 교통환경과장. (사진=장규석 기자)
그는 다만 우리나라의 연비측정 방식이 독일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연비 검증에서 탈락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제를 달기는 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아직 차량교체 명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검증을 통과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대략 검증에 5~6주 정도가 걸린다고 하면, 검증을 통과할 경우 다음달 중순, 늦어도 12월에는 티구안을 필두로 리콜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되면 폭스바겐은 1년 가까이 버틴 끝에 임의설정 인정을 안 하고도 리콜을 할 수 있게 된다.
◇ 최대 800억 원 대기오염 피해도 면피…버티기의 판정승더욱이 폭스바겐은 그동안 리콜 지연으로 문제 차량이 계속 운행되면서 발생한 대기오염 피해에 대해서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게 됐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폭스바겐의 리콜 지연으로 연간 339억원에서 최대 801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법률자문에 따라 대기오염 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