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소란(사진=해피로봇레코드 제공)
“좋은 음악은 결국 알아본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곡이 쏟아지는 가요계 흐름을 감안하면, 무모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밴드 소란(고영배, 서면호, 편유일, 이태욱)은 2009년 결성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믿음을 꺾지 않았고, 꾸준히 ‘좋은 음악’을 세상에 내놨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인디계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지난 17일 서울 서교동 인근 카페에서 만난 소란은 “우리의 성공은 ‘기적’”이라고 했다.
“결성 초기만 해도 맨땅에 계란을 집어 던지는 수준이었어요. 클럽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멤버들과 장난처럼 얘기했죠. 언젠가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출연하자고요.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다 이뤄졌어요.” (고영배)
탄탄한 연주를 바탕으로 한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는 소란은 듣는 이의 귀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즐겁게 하는 음악을 한다. 섬세한 감성은 단연 발군.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여자와 그녀를 위로하는 남자의 시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살빼지 마요’, 토속적인 입맛의 남자와 도시적인 입맛을 가진 여자가 만나 맛의 신세계를 경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의 ‘리코타 치즈 샐러드’ 등의 곡은 여성 팬들에게 특히 큰 지지를 얻었다.
“가사를 쓰는 족족 여성 취향이라 고민도 많았어요. 달달한 노래를 하는 팀이라는 평가가 싫을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받아들이게 됐죠. 그게 바로 저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고영배), “(고)영배 형은 실제로도 굉장히 다정다감해요. 배려심도 많고요. 그 덕분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멜로디와 가사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유일)
곡은 만드는 센스뿐만 아니라 빼어난 입담과 소통 능력도 뛰어난 소란은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 TV,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올 봄 음악 축제 ‘뷰티풀 민트 라이트’가 선정한 최고의 아티스트로 2년 연속 꼽히며 관객과 공연 스태프들이 사랑하는 밴드임을 입증했고, 최근에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절친’ 십센치(10cm)를 디스하며 허물없는 우정을 과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관객들과의 호흡을 중요시해요.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을 알려 드리기도 하고요.”(이태욱), “(고)영배 형의 입담이 워낙 좋아요. 제가 관객이라도 마음을 열고 기분 좋게 공연을 즐길 것 같아요. 물론, 음악도 신나고요.” (서면호), “소란 공연만의 신세계가 있어요. 여름은 조금 약하지만, 봄, 가을은 끝장나죠. 하하. 지금이 딱 제철이네요. 가을 하면 대하, 전어, 그리고 소란이죠.” (고영배)
소란은 이달 초 3년 만에 발매한 정규 3집 ‘케이크(CAKE)’에 그동안 쌓은 내공을 눌러 담았다. 앨범에는 그녀를 향한 귀여운 욕심을 사랑스럽게 녹인 타이틀곡 ‘나만 알고 싶다’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9곡이 담겼다. 오직 CD를 구매해야만 들을 수 있는 보너스 트랙도 넣었다. 자신들의 음악을 들어주는 팬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멤버들은 “모두가 뜯어 말렸지만, 박박 우겨서 신곡으로 꽉 채운 정규 앨범을 만들었다”며 웃었다. 음원이 빠르게 소비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좋은 음악은 결국 알아본다”는 소란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1집 때는 뭣도 모르고 시작했고, 2집 때는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이번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죠. 우리도 행복하고 듣는 사람도 행복한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번 트랙부터 9번 트랙까지 ‘정주행’하는 게 가장 좋은 감상법입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한 바퀴 더 들어주세요. (웃음).” (고영배)
다음은 타이틀곡 ‘나만 알고 싶다’를 제외한 멤버별 추천곡.
편유일
편유일(드럼) : 4번 트랙 ‘여기에 서서’
“발라드곡을 워낙 좋아해요. 기존 소란 앨범에 수록된 발라드곡이 어쿠스틱한 감성이었다면, 이 곡은 30대가 듣기 편안한 정통 발라드곡이죠. 곡 작업을 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들었는데, 얼마 전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렸어요. 아련한 감성이 잘 녹아든 곡이죠.”
고영배
고영배(보컬) : 5번 트랙 ‘시험기간 책상정리’
“시험 기간이 되면 괜히 책상정리를 하곤 하죠. 그러다 헤어진 여자친구 사진을 꺼내보게 되고,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 설레고요. 그런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지금 한창 시험 기간이라서인지 SNS에 ‘내 방에 CCTV 달아놨냐’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매년 시험 시간 사랑 받는 ‘신개념 시즌송’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서면호
서면호(베이스) : 8번 트랙 ‘타인이 되어’
“소란이 처음 시도해본 보사노바 장르의 곡이에요. 이별 뒤의 집착과 후회, 그리움을 주제로 한 딥한 감성이 담겼죠. 도입부 아련하게 깔리는 아코디언 소멜로디가 기가 막혀요. 이 멜로디에 (고)영배 목소리가 더해지면 어떨까 싶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고요.”
이태욱
이태욱(기타) : 9번 트랙 ‘잠들 때까지’
“힘든 하루를 보낸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곡이에요. 곡의 밑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겨울에 어울리는 이별 노래를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꿨죠. 기존 소란 곡들과는 조금 다른 면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